<1차 단계에서 왜 실패했나>
한빛은행이 당초 스케줄대로 지난 주말 10억달러 DR 발행에 실패한 것은 로드쇼가 진행됐던 지난 한달간 국내외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하나같이 악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국내외 총부채 80조원의 대우사태 발발, 한국금융기관들의 추가부실 가능성을 지적한 S&P 보고서,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북한 미사일 위기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같은 외부요인으로만 한빛은행의 1차 DR발행 실패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빛은행은 정부가 상장사 재무관리규정만 고쳐주면 주당 8천5백원선에서 10억달러의 DR발행이 가능하다고 주장, 지난 29일자로 금감위와 재경부가 규정까지 고쳐줬는데도 30일 최종 뚜껑을 열어 본 결과 6천5백원 선이 아니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여졌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계의 중론이다.
이같은 해프닝이 야기된 데는 일차적으로 주간사를 맡은 레만측에 책임이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금융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관계자들은 "주간사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레만이 큰손들에만 의존, 개미군단을 끌어모으지 못한 사실이나 유럽시장쪽 실적이 부진했던 점, 로드쇼 초기과정에서 8천5백원이라는 프라이싱이 미리 노출된 점, 최고경영자를 원온원미팅까지 내 몰았던 사실 등에서도 일부 입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과거 한일은행 시절에 30억달러 외자유치를 위해 만들었던 스킴을 레만이 큰 수정없이 그대로 사용한 것도 실수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1차 DR발행 실패에 따른 책임은 근본적으로 한빛은행의 몫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주간사 선정문제에서부터 로드쇼 과정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측하는 것까지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은 발행은행이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 두 대형은행이 합병한 한빛은행에 그렇게 인재가 없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삼성차나 대우그룹문제는 오래전부터 불거진 것이었는데도 확실한 대응논리 없이 낙관론으로 일관하는 주간사 말만 믿고 국제금융시장 휴가철인 7월에 무리하게 발행에 나선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
한빛은행은 투자가들과의 재협상을 통해 4일까지는 딜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금감위도 상장사 재무관리 규정에 구애받지 말고 가격불문하고 DR발행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어 어떻든 한빛은행의 10억달러 자본금 확충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으로 헐값매각 논란을 불식시키고 금융당국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프라이싱을 잘해야하는 문제가 남는다. 투자가들이 요구하는대로 6천5백원선에서 결정된다면 DR발행에 성공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날 수 있다. 한빛은행 주식 시가를 대략 9천원수준으로 본다면 20%를 할인한다면 7천2백원 수준이 된다. 대우사태라는 국가위기 상황을 감안해도 DR발행가가 시가의 20% 이상 할인된 가격에서 결정된다면 문제가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DR 발행기업에 악재가 발생, 할인을 하더라도 5%내외에서 결정되는 것이 상례다.
<다른은행 DR발행엔 어떤 영향 줄까>
금감위 이헌재위원장이 가격불문하고 DR발행 재추진을 지시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은행의 DR발행이 실패할 경우 국제시장에서 대우사태에 따른 충격이 증폭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한빛은행을 비롯 외환 조흥은행등의 DR이 잇달아 좌절될 경우 당장 연말에 엄청난 금액의 공적 자금을 다시 투입해야하는데 예금보험공사의 재원이 바닥난 상태에서 이는 보통일이 아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금감위의 결단을 높이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문제도 적지않다. 외국은행 관계자들은 이번 한빛은행 DR발행 재추진도 전형적인 한국식 발상이고 한국식 문제해결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금감위가 한빛은행을 마지막으로 은행 DR발행을 끝내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시황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점을 솔적히 인정하고 철수하는 것이 다음에 나갈 외환은행, 조흥은행 등의 바게이닝 파워를 약화시키지 않는 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