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용성 산업총괄국장
네이버 출신 하정우 AI미래수석을 비롯해 LG그룹 AI 개발을 주도했던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에 임명된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네이버 대표를 맡았던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도 눈에 띈다.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AI 강국’이란 무엇인가. 그저 챗GPT 유료 사용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고 AI 강국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동차 강국은 좋은 자동차를 잘 만들고 관련 산업 생태계가 잘 구축된 나라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AI 강국이란 글로벌 경쟁력 있는 AI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혁신을 일으키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AI 강국이 되기 위한 요건으로 세 가지를 생각해 봤다. 기술적 주도권, 사회적 수용 능력, 그리고 제도적 기반이다.
먼저 기술적 주도권을 살펴보자. 우리에게 미국 오픈AI, 구글, 메타처럼 초거대 AI 모델을 자체 개발하는 기업이 있는가? 고성능 반도체·클라우드 등 인프라에서 아마존, 엔비디아 수준 기업을 확보하고 있는가? 아직 우리 실력은 이런 질문들에 자신 있게 답할 정도가 아니다.
사회적 수용 능력은 어떨까. AI는 교육, 의료, 법률, 금융, 제조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파괴적 혁신을 몰고 올 것이다.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획기적 성과를 내겠지만, 전통적 직업 구조를 뒤흔들면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AI 개발과 활용에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는 와중에 사람들은 더 많이 소외되고 수많은 일자리가 가혹하게 사라지고 있다. 사회적 불균형을 더욱 구조화하는 ‘AI 디바이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적·윤리적 기반이다. AI는 데이터를 원료로 작동한다. 양질 데이터가 풍부할수록 AI 성능은 더 우수하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는 우리 사회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처럼 통제 기반 사회가 AI 개발에 오히려 더 유리한 이유다.
AI 시대 개인정보 보호는 단순한 기술 이슈가 아니라, 민주주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는 개념이 ‘소버린 AI(Sovereign AI)’다. 독자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국 데이터, 인프라 등으로 개발한 자주적 AI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김치는 한국이 원조’라고 답하는 AI다.
국내 기업들이 돌연 소버린 AI 개발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기 시작했다. 다들 한 목소리로 ‘한국어 처리에서 특화한’ 모델임을 강조한다.
LG그룹은 구광모닫기

LG AI연구원은 지난 3월 국내 최초 추론 AI ‘엑사원 딥’을 공개하며 글로벌 무대에 화려한 신고식을 올렸다. 엑사원은 미국 스탠퍼드대학 선정 ‘주목할 만한 AI 모델’에 오르기도 했다. LG그룹은 전자·화학 바이오 등 그룹 주력 산업에 특화한 AI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포털 사업자답게 한국어에 최적화한 AI 모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진작부터 강조해 왔다.
글로벌 빅테크에 맞서 국내 데이터 위주로 학습한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버X’, 데이터센터 ‘각’ 등 서비스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중동, 동남아 시장에 대한 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최근 추론 능력을 강화한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 씽크’를 공개했다.
SK텔레콤, KT 등 통신회사들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제휴와 자체 AI 개발이라는 ‘투트랙’으로 소버린 AI 시대를 맞고 있다.
최근 SK텔레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어 처리 능력을 가진 거대언어모델”이라며 ‘에이닷 엑스(A.X) 4.0’을 오픈 소스로 공개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제휴 전략에 집중하던 KT도 얼마 전 국내 자체 데이터에 특화한 AI 모델 ‘믿:음2.0’을 선보였다. 1.0 공개가 지난 2023년 10월이었으니 약 1년 9개월만에 후속 모델을 선보인 셈이다.
다시 질문은 ‘AI 개발 역량’으로 돌아간다. 독도와 김치도 잘 알아야 하지만, 시키는 일도 척척 해내는 AI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현재 개발 중인 우리 AI는 글로벌 빅테크 상품에 비해 데이터 양도 부족하고, 인프라도 빈약하다. 어떤 기업은 외산 AI를 들여오면서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포장한 뒤 ‘한국형 AI’라고 광고한다.
소버린 AI 개발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떨어지는 성능을 ‘애국심’으로 메울 수는 없다. 글로벌 AI와 단절된 ‘갈라파고스 모델’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AI를 개발해 놓고 ‘신토불이’라며 정부, 공공기관에 사용을 의무화하는 발상은 나쁜 전략이다.
AI 강국은 자동차 강국이나 반도체 강국과는 다른 개념이다. AI는 신박한 테크놀로지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I로의 전환에는 속도와 함께 방향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소버린 AI가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도 유능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 실용주의에 기대를 걸어본다.
최용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cys@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