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호랑이는 대개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동물의 세계를 호령하는 존재이자 위엄과 권력의 상징이다.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대표적이다. 현대의 호랑이 그림에서도 날카로운 눈빛과 이빨, 거친 몸짓이 화면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맹수라면 응당 위엄과 긴장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10월 1~4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꽃전시관에서 열리는 ‘PIATE 2026 국제아트페어’에 초대 작가로 참여하는 한국화가 김명신의 호랑이는 다르다.
그의 화면에는 산중왕 호랑이의 거친 포효가 없다. 맹수 특유의 사나움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다정하고 평온한 삶의 온기가 스며 있다.
김명신 작가는 한지 위에 먹을 칠하고 번지게 하는 전통적인 한국화 기법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여기에 현대 회화의 다채로운 안료를 더하는 시도를 한다. 수묵의 단아함과 현대적인 색채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방식이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동물의 외형만이 아니다. 동물에게서 느껴지는 ‘생명력의 잔상’이다. 자유로운 붓질이 지나간 자리에는 털 한 올 한 올의 질감이 살아난다. 은은하게 번진 먹의 농담 사이로 동물의 깊은 눈동자가 드러난다. 그 눈동자가 관람객의 감각을 조용히 깨운다.
김 작가는 인간과 동물을 뚜렷하게 나누지도 않는다. 동물의 움직임과 시선을 통해 인간이 잊고 지내던 본능과 감정을 다시 끌어낸다.
그동안 김 작가는 고양이와 호랑이 등 동물을 한국화의 수묵 기법으로 꾸준히 그려왔다. 그에게 동물은 단순한 그림의 소재가 아니다. 거창한 의인화나 전통적인 상징의 대상도 아니다. 감각과 힘이 교차하는 에너지이자,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다.
포효 대신 일상의 온기를 담은 호랑이
10월 1일 개막하는 PIATE 2026은 고양 가을꽃축제와 함께 열리는 아시아 7개국 마스터피스 특별전이다. 아시아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보여주는 국제적인 무대다.김명신 작가는 이곳에서 최근 작업한 신작 15점을 선보인다. 그동안 고양이 연작을 통해 보여준 자신의 미학적 세계를 이번에는 호랑이라는 대형 맹수로 확장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올해 완성한 〈호형호제〉(76×53cm, 한지에 먹과 채색)다.
화면에는 두 마리 호랑이가 나란히 누워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맹수의 위압감은 없다.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형제처럼 서로에게 익숙하다. 상대의 습관과 허물까지 알고 있는 친구처럼 편안하다.
두 호랑이는 나른한 자세로 누워 무심하게 화면 밖을 바라본다. 날카로운 긴장감 대신 일상의 친밀함이 화면을 채운다.
둥근 눈매와 오묘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인간의 삶이 겹쳐 보인다. 가까운 가족이나 오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작가는 이처럼 소박한 관계의 풍경을 통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문다. 맹수의 힘을 강조하기보다 그 안에 깃든 친밀함과 생명의 온기를 보여준다.
호랑이가 관람객을 바라보는 순간
〈응시Ⅰ〉, 〈응시Ⅱ〉, 〈응시Ⅲ〉 연작도 주목할 만하다. 각 41×50cm 크기의 2026년 작품으로 한지에 먹과 채색으로 완성했다.이 작품에서는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관계가 뒤집힌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작품은 관람객의 시선을 받는 대상이다. 하지만 김명신의 〈응시〉 앞에서는 이 익숙한 관계가 흔들린다.
어두운 숲과 강렬한 먹의 붓질 사이로 호랑이의 노란 눈동자가 번뜩인다. 그리고 그 시선은 화면 밖 관람객을 정면으로 향한다.
그림을 보러 온 사람이 오히려 호랑이에게 관찰 당하는 듯한 순간이다.
화면 속 호랑이는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다. 관람객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살아 있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시선과 시선이 맞부딪히면서 관람객은 한지라는 평면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에서 ‘대화하는 그림’으로 바뀐다.
호랑이의 힘과 고양이의 온기
〈시선Ⅰ〉, 〈시선Ⅱ〉, 〈시선Ⅲ〉 연작 역시 놓치기 아깝다. 김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고양이의 섬세한 세계가 담겨 있다.고양이 특유의 예민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정교하고 유연한 필선으로 표현한 털의 질감과 오묘한 눈동자의 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건드린다.
호랑이 연작이 묵직한 생명력을 전한다면 고양이 연작은 섬세한 온기를 건넨다. 서로 다른 두 감각이 한 전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김명신 작가는 묵묵히 자신만의 한국화 세계를 넓혀왔다. 2020년 서울 어반플루토 기획전 《오합지졸》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서울 이랜드 스페이스에서 개인전 《고양이의 세계》를 열었다. 이어 서울 홍익대 미술관(HoMA) 단체전 《지나온 점, 다가올 점》에도 참여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이번 PIATE 2026 전시는 그의 작업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만하다. 전통적인 수묵채색화의 기법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국제박람회재단과 PIATE 2026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태국 치앙마이 아트뮤지엄이 PIATE 2026 조직위와 공동주관하는 이번 전시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미술 관계자와 컬렉터들이 참여한다. 아시아 7개국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국제 아트페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가을이 깊어 가는 10월 초, 고양 꽃전시관을 찾는다면 김명신 작가의 전시 부스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보는 것도 좋겠다.
먹향이 번진 한지 위에서 호랑이와 고양이의 눈을 마주해 보면 어떨까. 맹수의 날카로운 포효 대신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뜻밖에도 삶의 온기와 생명력일 수 있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리는 시간도 될 것이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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