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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환율 ‘공포팔이’는 악마의 유혹

이성규 기자

lsk0603@fntimes.com

기사입력 : 2025-12-15 05:00

외환위기 비교 억측…달라진 경제환경이 원인
환율 고공행진 장기화, 국내 경기활성화 절실

▲ 이성규 기자

▲ 이성규 기자

[한국금융신문 이성규 기자] “우리나라 경제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인가?” 한 지인에게서 온 메시지다.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묻자 돌아온 답은 “‘경제 유튜브’에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었다.

해당 영상들을 직접 확인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시점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실제 위기가 발발했을 때뿐”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정부와 금융당국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과거 외환위기 직전에도 ‘안전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해외투자 확대를 원·달러 환율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몰아가며 책임 회피론까지 내세운다.

댓글란에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 진실을 소신 있게 알려주는 유튜버”라는 식의 찬양 분위기마저 감돈다.

겉으로 보면 그들의 논리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자본시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주장이 지나친 ‘공포팔이’이거나, 음모론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문제는 ‘가용 외환보유고 부족’이었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커 보였지만, 그중 상당 부분이 외화채 발행 등 부채성 자금이었다. 즉 원화 매도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 달러 보유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후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 구성을 IMF 기준에 따라 공표하기 시작했다. 외환보유고 구성 자체를 숨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과거처럼 ‘은폐’가 불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수치상 충분한 통화 완충력을 보유한 국가다.

또 하나 사실이 왜곡된 부분도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개인들의 해외투자만을 원·달러 환율 상승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아니다. 기관과 기업의 해외투자도 주요 요인으로 언급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본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된 이슈가 미국·중국 간 무역전쟁과 공급망 재편에 따른 불안 심리였다.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증가한 배경이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 즉 ‘리쇼어링’ 정책이 본격화한 시점과도 맞물린다.

글로벌 경제 구조 변화로 인해 달러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던 때였고, 당시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였다. 중요한 점은 과거 주요 이벤트 발생 시 환율 변곡점이 1400원이 아니라 1200원대였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상황에 1400원 기준을 끼워 맞추는 것은 무리다.

또 과거 환율 급등은 대부분 일시적 ‘스파이크’ 현상에 그쳤다. 지금처럼 고환율 흐름이 장기화된 사례는 드물다. 과거 기준으로 현재 환율 수준을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관세 부담 역시 기업의 해외투자를 부추긴 결정적 계기였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이는 한국이 아닌 미국의 GDP 상승에 기여한다. GDP가 높아질수록 해당 국가 통화 수요는 늘어난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자본시장에서 우려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공장이 현지에 있는데 굳이 국내에서 생산해 가격 경쟁력을 잃을 이유가 없다. 자연히 수출을 통해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는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 활동에는 달러가 현지에 남아 있는 편이 이득이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원·달러 환율과 국내 주식시장 간 상관관계 변화다. 전통적으로 국내 증시는 환율과 반비례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주식시장은 당연히 급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최근 사례들을 되짚어보면 오히려 비례 관계를 보인다. 이는 국내 증시와 환율의 상관관계를 결정하는 요인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의미다.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주식시장은 대외 위기에 가장 민감한 시장이다. 아무리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밀어붙여도 국가가 위기 수준에 직면하면 주식시장은 즉각 폭락한다.

그런데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국내 증시는 상승하고 있다. 이는 국내 대표 기업들의 실적은 개선되고 있으나,

이들이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지 않아 과거와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이 뛰어들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며 문제 소지가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환율 한쪽 쏠림을 방지할 의무가 있을 뿐, 이를 ‘은폐 목적의 동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우리나라는 외환시장 개방 이후 원·달러 환율이 장기적으로 꾸준히 상승해왔다. 이 기간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격차는 좁혀졌고, 최근에는 오히려 역전됐다. 기업과 투자자는 성장률이 높은 곳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미국 달러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당장 파산하거나 위기 직전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해외 자본 유치와 국내 경제활성화가 시급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활동에 좋은 환경을 갖춘 나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분명 강점과 약점이 공존한다. 이를 정확히 구분하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한 ‘공포팔이’로는 일시적 관심은 얻을지 몰라도 결국 남는 것은 ‘외면’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성규 한국금융신문 기자 lsk060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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