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집계된 기업금융과 부실채권 움직임은 감독당국이 택한 저강도 해법으로는 닥쳐 올 난국 타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선제적 부실 반영, 추세 안정화 됐다”는 판단은 적정한가
지난 8일 금융감독원은 상반기 말 국내 은행 부실채권비율이 1.75%로 급증했다고 발표하면서도 잠재부실을 현실화 시킨 결과일 뿐 지난해 같은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금감원 관계자는 “2010년 상반기 잇달아 구조조정에 들어갔던 성동조선 등의 여신분류를 ‘요주의’에서 ‘고정’으로 현실화 한 결과 일시적으로 부실채권비율이 올랐을 뿐 추세적으로는 하향세로 돌아섰다”고 주장했다. 다수의 전문가들 역시 신용위험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여건을 종횡으로 복합 분석하면 이같은 판단에 섣불리 동의하기란 쉽지 않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일부 조선업체 선수금 환급 보증(RG)들을 고정으로 재분류 한 것을 빼면 부실채권비율이 1.38%일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 은행 연체율이 상반기 말 기준 18개월 만에 1% 미만으로 처음 떨어졌다는 점 등이 낙관론의 대표적 근거다. 맹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실채권 절대 규모가 24조 9000억원으로 2011년 상황으로 되돌아 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조선업과 기타 재분류 분이 3조 9000억원이어서 빼고 계산하려는 시도에 대해 은행권 한 고위관계자는 “그렇게 하려면 무엇 하러 재분류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25조원 부실채권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 고생하던 2011년 1분기와 비슷하다. 상반기 새로 발생한 부실은 재분류 분 3조 9000억원을 빼더라도 15조 2000억원이나 되는데 부실채권 정리 실적은 10조원에 그쳤다. 2011년을 빼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은행이 정리에 성공한 부실채권 규모보다 새로 생겨난 부실이 더 많은 상황이 지속됐던 점도 심상치 않다.
2011년에도 정리실적이 고작 4000억원 더 많았을 뿐이고 2009년 6조원, 2010년 13조 2000억원, 지난해 2조 4000억원에 이어 올 상반기 7조 7000억원 만큼 새로 생긴 부실이 더 많았다. 게다가 은행의 본원적 이익인 충당금적립전 이익은 2011년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더니 올해 상반기엔 지난해보다 반토막 나고 말았다. 충전이익이 많아야 떼인 돈을 상각처리하고 충당금을 많이 쌓을 수 있는데 그럴 여력이 크게 줄었다는 건 불편하지만 직시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이다.
◇ 순익 급감 반전시킬 에너지 부족하고 악천후는 지속
은행 주가가 올라야 흥이 나는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이 낙관론에 동조하고 있지만 은행 순이익이 크게 회복될 개연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애널리스트들은 이자마진이 바닥을 치고 다시 커질 것이라는 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여신 성장이 꾸준히 이뤄지고 하반기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과 연결 지으며 이익하향국면이 마무리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부쩍 키우는 모양새다.
이 분석틀에는 중대한 불안요인이 포함돼 있지 않아서 우려스럽다. 은행 대출 성장의 핵심이 중소기업 대출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중소기업 대출은 17조 1831억원이나 늘었다. <그래프 참조> 이 기세대로라면 2011년 약 38조원보다는 적겠지만 지난해 약 27조원보다 훨씬 많이 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상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위험을 안고 있다.
우선은 신규 부실 발생이 중소기업 주도로 진행 돼 왔다는 점이다. 글로벌 위기 직후 2009년 30조 7000억원 가운데 18조 7000억원이던 것을 비롯해 2010년 35조 4000억원 중 23조 7000억원, 2011년과 이듬해에도 절반 넘는 비중을 차지했으며 올해도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대출을 늘리면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이자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위험이 상승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올 상반기 기업은행 대손비용이 적잖이 늘어난 까닭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주요 은행마다 대손비용이 줄어든 까닭은 충당금을 덜 쌓고 부실채권 정리도 덜 했기 때문이지 부실이 줄어들어서가 결코 아니다.
기업은행은 상반기 충당금으로 4932억원을 더 쌓고 부실채권 상각처리 규모가 3942억원에 이른다. 덕분에 부실채권 대비 충당금적립비율은 166%로 은행 중에 선두권으로 올라서는 등 선제적으로 손실흡수력을 높인 것이다. 중소기업 자금공급을 선도하는 기업은행의 선택은 대형 시중은행들이 따라야 할 일이지만 전체 은행 충당금적립률은 상반기 말 약 125%로 지난해 말 159%보다 크게 낮아졌다.
벌어들이는 이익은 반토막 났는데 대내외 경기 불안요인 가운데 무엇 하나 터져 나면 당장 흡수할 여력이 없는 상태인데 낙관론을 펼 수 있는 근거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