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부각됐던 금융지주사, 더 정확하게는 은행지주사를 놓고 성과부진은 물론 당초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이 봇물을 이룬 바 있지만 관쪽의 책임을 명확히 진단하지 않고서는 처방 또한 제대로 내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출범 13년이나 이르지만 도리어 부정적 평가에 압도돼 있으면서 체계적이고 입체적 원인 진단 없이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17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 공청회를 앞두고 이처럼 훨씬 더 큰 틀과 활동범위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금융산업의 발전, 그리고 금융산업의 주력 산업화 비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그룹을 형성하는 모델 가운데 금융지주사 모델로 전환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는 선진국들은 연결감독과 통합감독을 동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금융부처와 감독당국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큰 실책이라고 꼽고 있다.
◇ “정부와 감독당국 잘못 빼놓고서는 진단 불가”
한동안 우리 나라 지주사 제도의 거의 전부나 다름 없는 은행지주사를 놓고 장마철 소나기 퍼붓듯 비판적 진단이 잇따른 바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도의 당초 취지는 퇴색되고 지주회사가 최고경영자(CEO)의 권한 강화 수단으로 이용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금융 수장의 비판이다. 같은 틀에 기반한 비판은 지난 이명박 정부 중반 이후 지속돼 왔던 것이다.
이같은 류의 논리는 나중에 ‘4대 천왕의 전횡’논란 등으로 확산하면서 △은행지주 회장의 과도한 권한 행사 △은행비중이 압도적인 지주사조차 예산, 조직, 인력이 비대화하면서 비효율성 및 주력은행 경영진 또는 노조와의 마찰 빈발 등 일선 은행지주사 경영진 잘못으로 몰아가는 구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멈춰 서지 않고 원인 규명 범위를 넓혀 제대로 처방을 마련해 보자는 지적이 선풍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특히 한성대 김상조닫기

지난 정부 당시 관치 낙하산 논란 속에 취임한 일부 금융지주 회장 권한과 책임의 비대칭 현상 등 금융계 경영진 잘못과 동시에 이같은 상황이 지속된 배경에는 정부와 감독당국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김 교수는 청와대-정부-감독당국 등이 먼저 법규와 정책을 제시하지 않는 상태에서 민간 금융계가 먼저 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한 지주사 선진화 방안에 앞서 나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든 근원적 책임 또한 있다는 논지를 폈다.
◇ ‘부실금융기관 인수 때문에 출범’론에 대한 반발 정서
정부-당국의 인식과 민간 사이의 엄청난 시각차가 존재할 뿐 아니라 현재의 시각차 때문에 ‘신관치 금융’ 논란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요인 또한 존재한다는 지적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 위원장은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을 설명하면서 우리금융 출범 의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신 위원장은 이달 초 “어차피 태생적으로 시너지를 위해 지주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공적자금을 쏟아 붓다 보니 (부실해진 금융회사들을)묶을 게 필요해서 만들었을 뿐”이며 “지주사가 과연 시너지를 내고 있느냐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극히 부정적 진단을 내놨다.
금융지주사 1호로 13년 째 접어든 대표 금융지주가 부실 금융사 인수용에 불과했고 13년 동안 제 몫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로 받아들이는 금융인과 전문가가 적지 않다. 당연히 비판적 정서와 시각들이 돋아나지 않을 수 없다. A대형은행지주 고위관계자는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부실기관의 경영 정상화에 우리금융지주 출범이 큰 기여를 한 게 사실이긴 하지만 금융정책당국 수장의 평가로는 매우 부적절한 견해”라고 반론을 폈다. 그는 “적어도 지난 정부까지 정치권력 핵심부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은 CEO 인선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데 경영진들이 제 역할을 못해서 시너지가 나지 않고 성과가 지지부진했다는 지적은 남탓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 연결감독 통합 리스크 평가 등 지주감독 왕초보
익명을 청한 민간 연구기관 B전문가는 “근원적으로 미국과 다른 경제시스템을 지닌 유럽에서도 큰 은행들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걸 보면 제도 또는 모델의 유용성은 크다는 뜻”이라며 “지주사 역할과 자회사와 관계설정을 민간 스스로 헤쳐나가려 해도 일부 지주사의 경우 CEO 임기조차 3년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될 정도로 연속성과 지속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그 책임은 정부 당국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 경제지는 IMF와 세계은행이 평가한 결과 우리 나라가 지주사 방식의 금융그룹의 위험을 통합감독할 역량이 부족하고 법률체계 또한 국제기준에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은 은행지주 13년째에 7월이면 지주사가 11 곳으로 늘고 은행, 증권, 보험 뿐 아니라 2금융권 소비자금융 부문으로 영업범위를 확장했지만 감독업무는 감독총괄국 1개 팀이 맡고 있다. 게다가 검사업무는 주력 은행 검사를 나갈 때 일반은행검사국 인력이 함께 투입되며 은행과의 연결 기준 중심으로 검사가 이뤄지고 있어 통합 위험과 비은행 권역 자회사에 대한 세밀한 파악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금감원이 수집해서 공개하는 금융회사 통계정보에 담긴 금융지주사 경영정보는 상장 금융지주사나 은행이 공개하고 있는 경영정보조차 포괄하지 못한 채 현저히 적은 항목과 내용만 담고 있으며 자회사별 경영정보와 연결성도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개별 금융사와 권역별 감독은 철저하지만 지주사 형태의 그룹 감독과 검사에는 사각이 존재한다는 반론을 면키 어렵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