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같은 상황을 우리보다 빨리 겪은 일본의 경우 실물 경제는 장기 복합불황에 시달렸고 은행권이 1997년부터 7년 연속 적자에 이어 2008년 글로벌 위기 때 다시 적자로 곤두박질 치는 양상을 빚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경기 패턴과 금융계가 직면할 상황이 일본이 갔던 길에 비춰 볼 때 우리도 여러 부문과 요소에서 흡사하거나 방향만이라도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위험의 선제적 관리와 수익원 발굴 및 수익구조 다변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 부채조정 속 저성장 미래불안 대처 방식 닮아 가
일본 1990년대 장기복합불황기의 특징으로는 자산가격 하락과 장기성장률 저하로 인한 미래 불안 때문에 소비를 크게 줄이고 미래 대비 저축이 늘었다는 것이 대한민국 금융계로선 주목할 만한 요소로 꼽힌다. 인구 고령화가 진전되는 사회에서 빚을 잔뜩 짊어진 채로 성장을 질주하던 경제가 경기가 나빠지면 자산가격이 떨어지고 소득이 주는데 더해 부채조정 부담이 겹치게 되고 미래 위험 비축은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패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부채조정·잠재성장 저하·고령화 일본형 소비침체의 그림자’란 보고서를 통해 그나마 한국 사회가 나은 점이 있다면 “부동산 가격 급락 가능성이 크지 않고 성장률 하락 정도도 일본보다는 낮은 편”이라는 점이라고 위무했다.
그렇다고 큰 흐름이 다르지는 않아서 소득감소에다 채무조정과 부채부담 등 3대요인에 따른 소비증가세 저하는 이미 현실화됐다고 주장했다.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평균 민간소비증가율은 3.8%였는데 2011년부터 최근까지 평균은 1.6%로 낮아진 요인 분해를 시도한 결과다.
소득증가가 둔화된 탓에 2005~2007년 소득수준이 소비증가에 대한 기여율이 2.6%였던 것이 지난해 이후로는 1.4%로 1.2%포인트나 줄었다고 분석했다. 대출증가에 따른 영향은 2.3%에서 1.5%로 0.8%포인트 깎여 나갔고 부채부담에 따른 소비기여율은 -1.1%에서 -1.3%로 더 악화됐다는 것이다.
◇ 조달규모에서 대출을 빼니 200조엔 남아도는 남의 나라 이야기?
비록 이들 흐름은 거시경제 요인이라 금융인들에게 덜 직접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은행권이 처한 대차대조표(B/S)상의 격변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겪을지 모를 ‘기사(奇事)’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이슈분석 보고서 ‘저금리 시대 은행의 대응: 일본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대기업 대출수요 감소와 함께 신용위험이 높은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대출태도는 엄격한 상황이 지속됐고 예수금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남아도는 자금(잉여 자금)이 대거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90년대 초 예대율 95~98%로 예금으로 들여 놓은 돈의 대부분을 대출로 내주며 활발했던 자금중개기능이 활력을 잃고 지난해 70%선을 밑돌고 있다고 정중호 연구원은 전했다. 심지어 예수금 규모에서 대출을 뺀 남아도는 자금 규모가 지난해엔 200조원을 웃돌았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전했다. 원인은 LG경제연구원이 간파한 것처럼 노후와 경기불안에 대비하느라 저축을 늘리는 유인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덕분이다. 대규모 자금 잉여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나라라고 대출급감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와 관련 국책은행 한 간부는 21일 한국금융신문과의 통화에서 “(국내은행들도) 당분간은 대출을 늘려서 이자수익 규모를 유지하려 들겠지만 실물경제가 더 나빠져서 한계기업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은행 경영이 적자로 돌아설 수 있고 그런 상황에 몰리면 대출을 쉽게 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부실채권매각과 채권회수 노력에 집중해도 모자를 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거시 정책으로 낙수효과, 금융계는 신규 수익기반 확대
거시경제 차원에선 “고용창출을 통한 소비여력 확대, 규제완화와 인프라 확충을 통한 내수산업 확충, 고소득층 소비유도(를 통한 낙수효과)”등의 대응에 나서 마땅하다고 LG경제연구원은 권고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단기적으로는 자산 확대를 지양하고 리스크관리를 강화”하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수수료 수익 확대책을 일감으로 꼽았다.
또한 소비자금융사 등의 비은행 금융사와 합작 또는 제휴로 중위험 대출시장에 진출해 틈새를 파고 드는 동시에 해외 대출 및 투자증대를 통한 포트폴리오 분산과 자금운용처 발굴에 나서는 방법을 제시했다. 앞서 금융연구원은 새해 경영과제로 제시한 △운용자산의 투자 유니버스 확대(고수익 투자처 발굴) △트렌젝션뱅킹 등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을 내놓은 바 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