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 빚 규모가 사상최대치를 꾸준히 갈아치우면서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을 내놓으며 증가세 억제에 나섰지만 채무불이행 관련 움직임은 부정적 추세가 본격화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실물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 일색이다. GDP증가율 등 경기 지표가 좋은 상황에서도 부채 규모가 줄지 않고 늘어난 마당에 경기가 나빠지면 채무 상환능력이 더욱 악화돼 빚을 제 때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 고소득층 개인워크아웃 등 신청 급증
빚을 갚지 못하고 연체 늪에 빠진 지 90일이 넘는 바람에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신용회복위원회(위원장 이종휘)의 도움을 청하는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가운데 저소득층 비중이 줄었다.
지난 27일 신용회복위가 밝힌 개인워크아웃 신청 추이를 보면 월소득 150만원 이하 저소득층 신청자는 지난 2010년 6만 8038명으로 88.01%에 이르렀다가 지난해엔 6만 5323명으로 숫자는 물론 84.95%로 비중이 줄었다. 반면에 월소득 150만이 넘고 300만원 이하 신청자는 2010년 8893명으로 11.50%였으나 지난해엔 1만 1036명에 14.36%로 늘었다. 월소득 300만원이 넘는 신청자도 377명에서 480명으로 27.3%나 늘어났다. 빚 연체 기간이 30일 이상 90일 미만으로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될 위기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프리워크아웃’ 신청 동향은 가계부채발 위기 확산 징후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월소득 150만원 이하 저소득층의 프리워크아웃 신청은 2010년 5015명에서 지난해 9766명으로 늘어났으면서도 이들 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68.87%에서 67.36%로 소폭이긴 해도 되레 줄었다. 상대적 고소득층의 신청 증가세가 저소득층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소득 150만원 초과 300만원 이하 프리워크아웃 신청자는 2054명에서 4324명으로 더욱 가파르게 늘면서 그 비중이 28.21%에서 29.83%로 불어났다. 소득 300만원 초과 신청자는 213명에서 302명으로 41.8%나 급증했다.
◇ 연체규모 5000만원 넘는 워크아웃 신청 급증
가계부채 위기가 고소득층으로 빠르게 옮겨가다 보니 워크아웃 신청자가 신용회복 지원을 원하는 액수가 거액화하고 있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가운데 빚 규모가 5000만원 넘고 1억원에 못미치는 사람은 2010년 4809명에서 지난해 5261명으로 9.40%의 증가율을 보였다.
빚이 1억원 넘는 사람은 1406명에서 1695명으로 20.55%나 늘었다. 빚 규모 역시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한 경우가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잘 드러냈다. 프리워크아웃 신청자 가운데 5000만원이 넘고 1억이 안되는 부채 상환에 도움을 청한 신청자는 2010년 924명에 그쳤으나 지난해엔 1916명으로 무려 107.36%나 늘었다. 1억원이 넘는 부채 상환 구조를 요청한 사람도 678명에서 916명으로 35.10%의 증가율을 보였다.
◇ 가계 신용 위험 빠르고 폭 넓은 악화 우려 증폭
이같은 움직임을 놓고 일부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상황이 예상보다 더 빨리 악화할 가능성을 알려 주는 것일 수 있다는 조심스런 진단을 내놓고 있다. 가계부채 해결에 대한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자를 충분히 감당하면서 빚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가 지금보다 더 낮고 경기가 좋았던 2009~2010년에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금리 수준이 더 높고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금융연구원 이병윤 선임연구위원은 “실물경제 여건이 나빠지고 경기 지표 전망이 당초보다 하향조정하기도 하는 마당에 가계부채 문제가 호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열쇠는 소득에 있다고 입 모아 지적해 왔지만 소득 수준 향상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의 질을 높이고 자산 시장의 견조한 흐름을 유지해야 하는 등 장기간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 장·단기+신·구 처방과 노력 망라해야
이 때문에 단기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을 병행하면서 장기플랜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상대적 고금리 부담을 낮춰 주려는 노력과 더불어 국내 금융기관들이 지금 당장 손댈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상환기간을 장기화 하는 방식으로 상환부담을 늘리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고 말했다.
특히 박 위원은 “주택 소유자가 역모기지론으로 유동화하는 것처럼 실물자산, 심지어 전세자금의 월세전환을 통한 악성부채 등의 감축 노력이 활발해 질 수 있도록 관계 부처의 종합적인 정책적 지원이 긴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경기 하강기라고 어려워만 말고 중장기 처방과 실효성 높은 단기 처방을 동원하되 기존 아이디어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까지 망라한 대응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