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불안으로 인해 국내 은행들의 외화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 은행들이 갚아야 할 외채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들의 단기 및 중장기 외화자금은 약 361억 달러규모다. 특히 자금조달 비용 상승 등으로 국내은행들이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의 자금 재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외화자금 유동성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국내 은행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무디스는 ‘아시아 은행시스템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은행들이 높은 예대율과 외화유동성 문제로 인해 신용등급 전망이 아시아에서 가장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지난 16일 국내 7개 금융회사를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S&P는 “현재 글로벌 유동성 경색이 한국 은행들의 외화 자금조달을 위협해 은행의 전반적인 신용도를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부정적 신용평가의 영향은 가뜩이나 어려운 외화자금 조달여건을 더 어렵게 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은행의 외화 자금조달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모럴헤저드’를 거론하며 외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들이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도 그간 ‘외화 유동성 확보’에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사실”이라며 “신용평가사의 부정적 견해가 발표되기 이전에 특단의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간 국내은행의 외화유동성에 대해 우호적으로 판단해 왔다. 기획재정부 등은 최근까지 “은행부문은 외화부채보다는 많은 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외화자산 매각을 통한 외화자금확보에 어려움이 없다”며 “9월말 현재 은행들의 7일, 1개월 갭비율, 3개월 외화유동성비율을 살펴보면 모두 지도비율을 상회하는 등 엄격한 외화유동성 비율 규제로 미스매치 없이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들의 계속되는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고, 외화유동성 경색으로 인해 은행채의 국고채에 대한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S&P는 “다른 국가들은 은행간 대출보증 등 매우 광범위한 금융지원책을 발표했는데, 한국 정부는 그렇치 못하다”며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급기야 ‘국부유출’, ‘금융시스템 붕괴 위험’ 등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외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은행간 외환 거래보증’ 등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17일 청와대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병원 경제수석,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여해 ‘거시경제정책협의회’를 열고 ‘정부의 국내 시중은행의 지급보증에 직접 나서는 방안’ 등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논의했다.
강 장관은 “필요하다면 미국의 금융시장 기본조치인 금융기관 증자, 은행간 대출거래 지급보장, 예금보장 한도 확대 등에 대해서 필요한 기관과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와 함께 한은도 20일부터 ‘경쟁입찰방식 스왑거래’ 제도를 도입해 모든 외국환은행(외환업무 취급이 가능한 은행)에 직접 달러를 공급키로 했다.
기존 한은의 ‘스왑시장 참여 거래’제도는 한은이 스왑거래 대행은행과 거래를 하고, 공급된 달러를 대행은행이 2차적으로 일반 외국환은행과 거래하는 방식이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에 도입되는 제도는 달러가 필요한 모든 외국환은행이 경쟁입찰에 참여해 낙찰금액, 낙찰금리 등을 제시한 후 이를 통해 결정된 조건에 따라 달러를 직접 빌려가는 방식”이라며 “이번 제도 도입으로 외화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외국환은행에 대해 효율적으로 외화자금을 공급해줌으로써 외화자금 시장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하성 기자 haha7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