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책을 보다가 창조와 관련되어 흥미로운 인터뷰를 접한 적이 있다. 한양대, 홍성태 교수가 쓴 국내의 대표적인 경영자 12명과 가진 인터뷰를 정리한 <앞선 사람들의 앞서가는 생각>이란 책이다.
이 책에는 아트디렉터 출신으로 드물게 광고대행사를 창업해서 CEO가 된 ‘크리에이티브 에어’ 최창희 씨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창의성이란 것이 개발된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최 사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 그림을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입시 위주로만 교육하다 보니까 미술시간 자체가 없어지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는 교육부터 바로잡아야 된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정답 찾기 교육이 문제이지요.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무엇이든 암기해야 하고,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를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근본 원리를 익히고 자기 생각을 다듬기 보다는 요령이 우선되고 모든 것은 시험으로 연결되어버린다.
이런 교육 과정을 착실히 밟아나가다 보면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기가 무척 어려워지게 된다.
이 대목을 읽다가 불현듯 연산군이 생각난다. 역사 속의 과거 시험도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다. 성리학의 각종 책들을 읽고 그것을 잘 암기한 다음에 나온 문제에 대해서 답을 하는 형식으로 치뤄졌다. 조선 역사에서 이런 틀에 박힌 과거 시험에 최초이자 최후로 손을 댄 사람이 연산군이다. 그는 성리학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시를 잘 짓는 사람도 과거에 오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물론 성리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음을 물론이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을 집필한 신동준 씨는 고루한 성리학에 맞서 시를 중시하였던 연산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연산군은 명분을 내세우며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는 성리학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처세와 같이 풍요를 구가하는 시기에는 성리학에 얽매인 무미건조한 인물은 관료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가 과거시험 제도를 논술에서 시문 작성으로 바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성리학적 소견에 입각해 각종 시국문제를 논하는 이른바 대책(對策) 대신 시를 짓는 것으로 과거시험제도를 바꿔 놓았다. 이는 성리학을 불변의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당시 상황에서는 엄청난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시대가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사실에 대한 지식보다는 개인의 창의성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는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저항을 일으키게 된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 추세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갈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편 최창희 사장은 창의적인 인물을 어떻게 뽑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명답을 내놓는다. 물론 실천하는데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깊이 새겨 들어둘 만한 지적이다.
“경력사원은 히스토리가 있으니까 쉽죠. 신입사원이 문제인데 저희같은 경우에는 정상적인 사람은 안 뽑죠. 지난 번 신입사원 후보 중에 한 명이 자신이 직접 그린 만화책을 가지고 왔더군요. 그냥 뽑았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게 아이디어가 없이는 안되거든요. 중요한 건 아이디어입니다. 저희 나름대로의 기준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을 뽑는다는 겁니다.”
단 몇 퍼센트라도 꾸준히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 인재를 뽑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들이 기대한 만큼 선전한다면 차차 비중을 늘릴 수도 있는 일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시간을 두고 기다릴 수 밖에 없다면 후자의 것은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지 않겠는가.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