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국책銀 민영화 위해 완화”
범여권 ·학계 “연기금 이용등 방법 있어”
단계적·장기적으로 진행될 예정인 국책은행의 민영화 추진을 놓고 정계와 학계가 신속하게 진행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해 그 귀추가 주목된다. 내년 3월로 예정됐던 우리금융지주의 매각 시한을 최근 지주사법 개정으로 삭제함으로써 사실상 민영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현정부의 행보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16일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한국금융학회 주최로 열린 ‘신정부의 금융비전과 정책과제’ 심포지엄에서 학계와 업계, 언론계, 정계 등의 대표들은 특수은행의 민영화 추진과 관련해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다만 민영화 과정에서 그 범위나 방법에서의 차이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민영화 속도와 시점이 중요
금융시장의 확대, 효율성 제고 더 나아가 정치권의 조정을 벗어나기 위해서 등 민영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유는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신속하게 민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제발표를 한 최흥식닫기최흥식광고보고 기사보기 연세대 교수는 “특수은행들은 현재 은행시장의 안정성을 훼손하거나 업종간 규제 차익이 발생할 여지가 높다”며 “따라서 우리금융지주, 산업은행, 농협 등의 금융기관들이 10~15년 후에나 민영화를 이루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 역시 농협의 예를 들면서 민영화 과정의 기간을 너무 길게 잡고 현재의 소유구조를 가진 채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기업은행의 경우 시장구조적 특성과 민간은행의 중소기업대출에 대한 유인을 감안해 민영화가 더욱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간은행의 역할이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벤처캐피탈, 사모펀드, 투자금융의 확대에 민간기능의 활성화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행의 중소기업지원 정책부문은 산업은행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
채수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빠른 시일내에 기업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하되 중소기업지원 등 정책적인 부문은 산업은행으로 이전을 하고 시장과 마찰이 되는 산업은행의 역할은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헌닫기윤석헌광고보고 기사보기 한림대 교수는 산업은행을 지주사 형태로 키워 대우증권 등 금융투자회사,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탈 등으로 나눠 매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 재점화 되는 금산분리 논쟁
하지만 금산분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되는 입장을 나타내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흥식 교수는 “산업자본에 의한 은행소유는 내부거래에 대한 견제기능의 축소와 산업자본에 의한 시장 지배력 확대, 산업과 금융의 동반 부실 가능성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며 “금산분리 완화를 100%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윤석헌 한림대 교수 또한 “금융기관의 핵심기능은 실물을 지원하거나 통제하는 것인데 소유관계로 양자를 통합하면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금산분리의 완화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산분리 논의를 대선의 쟁점으로 삼은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윤건영 한나라당 의원은 “금융시장을 확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영화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금산분리제도를 고수하는 한 우리금융지주를 비롯 대규모 국책은행의 원활한 민영화는 어렵다”며 금산분리 완화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특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원천적으로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를 막기보다는 은행법에 의해 회계 등을 철저히 감독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즉 사전적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사후 감시와 감독을 강화함으로써 금산분리 정책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국유 은행의 민영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채수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산업자본의 범위를 축소 시켜 국민연금 등 연기금 등을 이용해 국책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며 “방법은 찾으면 여러 가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최흥식 교수도 연기금이나 정부소유기관의 경우 감사 및 내부통제기능이 일반기업에 비해 체계화되고 활성화 돼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투자에 대한 유인이 높아 금융자본의 육성 또는 전략적 투자자의 유치 등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자본의 범위를 소극적으로 해석해 연기금이나 정부소유기관의 경우 은행에 대한 소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하자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 전문인력 확충 길게 봐야
‘금융산업=인력산업’이라는 말이 통할 만큼 개별 인력의 역량에 의해 움직이는 금융산업의 특성상 전문 인력에 대한 인프라 구축 역시 시급한 과제로 제기됐다.
금융지식의 축적뿐만 아니라 실무경험 기회의 확대에 중점을 둬야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시장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병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당장 업무를 위한 내부영업 측면의 인적확보보다는 글로벌 금융인재를 양성하는 중장기 관점에서 이루어져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전문인력에 대한 자격증제도의 운영을 국제적 기준을 적용하는 등 인력의 양성 및 육성체계를 국가적 차원의 중장기 정책과제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교육 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금융시장에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환경적 요인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카이스트나 전문기관에서 아무리 실력 있는 전문인으로 양성하더라도 현재 은행권의 노사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우수인재들은 다 빠져나갈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에서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노사문화를 개선해 우수한 인재를 시장가격으로 유치할 수 있게 과감한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교육 주최기관과 관련해 윤석현 교수는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이 출범했고 일부 경영대학원이 금융에 특화하고 있지만 급속히 늘어나는 시장의 금융전문인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재벌기업들이 금융교육에 투자한다면 한국의 금융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 금융당국 신뢰 쌓기 시급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특히 금융당국의 비효율성·비전문성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다. 금융당국의 조직적인 문제에서 인력들의 자질문제까지 대두되면서 전반적으로 신뢰성을 얻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흥식 교수는 “금융당국은 신용카드수수료 문제, 론스타 문제 등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즉각적으로 나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며 “별로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소속된 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금융기관에서의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채 입사 시험만을 치룬 후 기관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현장 감각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연수원 강철준 교수는 “금융기관은 전문성 제고가 가장 중요한데 금융당국은 조건과 상황만을 따진 채 전문적인 지식으로 대응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금융감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더 나아가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금융회사의 전문가들을 금융당국의 중간 간부급으로 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을 마련해 금융당국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은행법을 비롯 각종 금융관련 법을 개정 중에 있지만 법이 바뀌어도 감독당국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금융감독의 독립성 및 공정성 제고를 통한 신뢰도를 높이고,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획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헌 한림대 교수는 “금융감독체제가 정책기능과 집행기능이 분리 돼 감독업무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1999년 이후 문제가 된 금융감독기구 통합 문제를 이제는 마무리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흥식 교수 역시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현행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이원화돼 있는 구조를 단일체계로 통합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금융감독기구를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정책당국과 독립된 특수법인으로 개편하고, 감독기능의 책임 강화를 위해 국회에 대한 보고의무와 감사원에 의한 감사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최 교수는 특히 “법률 개정 등 금융정책과 관련되는 내용은 재경부에서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16일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학계, 언론계, 정계의 대표자들이 모여 신정부의 금융비전과 정책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배규민 기자 bk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