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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권 발행과 세뇨리지(seigniorage)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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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6-12-27 21:54

이상묵 상무 삼성증권,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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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사행성 게임인 ‘바다 이야기’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그때 불거진 비리는 상품권 발행과 관련된 것이었다. 게임에서 이기면 상으로 상품권을 지급했는데, 그 상품권의 발행자격을 따기 위해 로비가 벌어졌다고 한다.

상품권 발행자는 발행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수수료는 상품권 인쇄비 등 관리비 지출에 대한 실비 보상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큰 돈이 되지 않는다. 상품권 발행 자격을 따는 것이 로비의 대상으로 될 만큼 이권이 큰 사업인 이유는 상품권 발행과 관련해 숨어 있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상품권이 발행자에게 지급청구되기까지는 일정한 기간이 소요되며 그 기간 동안 발행자는 무이자로 돈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발행된 상품권 잔액 중 일정 비율은 소지자의 부주의로 멸실되거나 서랍 속에 방치되는 등의 이유로 영원히 지급청구되지 않는다.

이런 금액만큼은 발행자의 순수입이 된다. 더욱이, 나쁜 마음을 가진 발행자는 상품권을 잔뜩 발행해 놓고 야밤에 도주함으로써 큰 돈을 챙길 수도 있다.

금화나 은화가 아니라 숫자가 표시된 종이에 불과한 지폐를 받고 자신이 소유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꺼이 제공하기 시작한 일은 인류의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초기에 유통된 종이 화폐는 은행권(bank note)이었다. 지금은 통상 중앙은행만이 지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지만 초기에는 국가로부터 자격을 부여받은 복수의 은행들이 지폐를 발행했다. 발권 은행들은 은행권의 소지자가 요구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은행권을 금으로 교환해주어야 했다. 결국 그 당시 지폐는 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일종의 상품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은행들은 발행된 지폐가 즉시 금의 인출 요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은행 금고에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보다 훨씬 많은 은행권을 발행함으로써 오늘날의 상품권 발행자와 같이 숨은 이득을 누렸다. 이러한 이권에 대한 대가로 국가는 은행권 발행 자격을 부여할 때 일종의 세금을 거두었는데 이를 세뇨리지(seigniorage)라고 한다.

발권은행을 중앙은행으로 한정하고 금으로의 태환의무를 폐지하면서 오늘날 이러한 세뇨리지는 국가가 독점적으로 향유한다.

한국은행 총재의 도장이 찍힌 한국은행권의 발행에서 발생하는 이득은 한국은행법에 의해 국고로 귀속되게 돼있다. 달러에는 연방은행 총재가 아니라 재무부 장관의 서명이 인쇄돼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법화인 달러의 발행권자가 보다 직접적으로 국고를 관장하는 재무부 장관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상품권은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달러다. 달러야 말로 미국이 생산하는 상품 중에서 최고의 히트 상품이자 수익성이 가장 높은 상품일 것이다. 막대한 규모의 달러가 세계인의 지갑과 금고 속에 들어있다. 세계인의 지갑과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는 달러의 양이 커질수록 미국 정부가 누리는 세뇨리지도 커진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지폐 중에서 최고 금액권은 만원권이다. 만원권만으로는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른 거래 수요를 원활하게 뒷받침하기 어렵기 때문에 십만원권을 발행해야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그러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지금껏 십만원권의 발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십만원권이 발행되면 사람들의 씀씀이가 헤퍼져서 인플레가 야기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뇌물을 주기가 쉬워져서 부정부패가 조장될 것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십만원권 한국은행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십만원권 은행권인 수표를 대신 이용하고 있고 백달러짜리 미국 재무성 발행 달러를 이용하고 있다. 십만원권이 발행되면 인플레가 야기될 것이라든지, 부정부패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한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주장이다.

십만원권 한국은행권이 발행되지 못하는 사이에 십만원권의 발행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누릴 수 있는 세뇨리지는 십만원권 수표를 발행하는 은행들과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 정부가 누리고 있다.

십만원권 한국은행권 대신 시중은행이 발행한 수표가 사람들의 지갑에 들어있는 만큼 대한민국 정부가 누릴 세뇨리지를 시중은행들이 누린다. 십만원권 한국은행권 대신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백달러짜리 달러가 뇌물로 오고가는 만큼 대한민국 정부가 누릴 세뇨리지를 미국 정부가 누린다.

10년 이상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고액권 발행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사회의 불합리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앵무새처럼 계속하는 사람들, 그러한 주장을 받아주고 확대재생산하는 언론, 그로 인해 고착화된 잘못된 인식과 정서, 그에 끌려 다니는 정치인과 정부, 그 사이에 사라지는 실리.... 고액권 발행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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