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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은 왜 위험기피적인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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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6-03-19 20:44

이상묵 박사, 삼성증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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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탄저균 소동이 벌어졌던 적이 있다. 탄저균이 들어있는 백색 가루가 소포로 배달되고 있다는 뉴스로 미국 전역이 공포로 떨었다. 밀가루를 탄저균으로 알고 격리조치를 하는 법석을 떠는 일도 일어났다. 일본에서도 사린가스가 지하철에서 발견되면서 유사한 경험을 한 바가 있다.

냉정하게 보면 이러한 소동은 분명 과민반응이다. 탄저균이나 사린가스가 치명적이기는 하나 특정한 사람의 입장에서 실제로 탄저균이나 사린가스를 사용한 테러의 표적이 되어 희생될 확률은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확률이나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 보다 훨씬 낮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리스크에 대해 과민 반응하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 소고기 파동을 야기한 바 있는 광우병 사태, 한동안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업계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사스 파동 등이 모두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리스크와 관련된 사람의 심리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리스크의 본질과 크기에 대해 잘 모르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리스크를 실제 크기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리스크가 측정하고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든 피하고 보아야 하는 막연한 불안감의 대상으로 변질된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자본의 행태는 매우 보수적이다. 외국자본이 인수한 은행은 기업대출, 특히 중소기업 대출을 축소하고 부동산 담보대출과 소액 가계대출에 치중하는 행태를 보인다. 투기자본이 인수한 제일은행이나 외환은행은 물론이고 전략적 투자자라고 하는 시티은행이 인수한 옛 한미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반 기업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인 주주들은 자신이 주주로 있는 기업이 모험적 투자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아이템의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는 몰라도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나 새로운 업종에 진출하는 데에 현금을 쓰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금이 쌓이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에게 배분하기를 종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이 그 본질이나 크기를 잘 모르거나 통제하기 어렵다고 보는 리스크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리스크의 크기를 과대평가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은행을 인수한 외국계 자본의 본국에 위치한 본부에서 보는 한국의 기업은 너무나 불확실한 존재이다. 웬만한 기업은 처음 들어본다. 이름을 발음하기도 힘들다. 생산하는 제품이 제대로 팔리는지, 경영자가 자질이 있는지, 외상을 준 업체가 상환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하기 힘들다. 한국어로 되어 있는 공시자료를 들여다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속된 말로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일 뿐이다. 리스크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불안하다.

외국계 자본의 본부에서 느끼는 이러한 불안감은 대출심사를 담당하는 은행의 직원과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존재한다. 임직원의 업무능력이 충분한지, 도덕성은 있는지, 기업 대출에 수반되는 위험을 체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준법감시 체계는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이 불안하기만 하다.

본국에서 선임한 대리인을 은행장으로 한국에 보냈지만 그 대리인이 은행을 제대로 장악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한국인들을 상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질이 낮은 한국인 직원들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이러한 불안심리는 리스크 기피로 나타난다. 미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기업이 아닌 한에는 가급적 기업 여신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다. 일정 금액 이상의 여신을 하는 경우에는 본국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다. 철저한 포트폴리오 분산을 통해 통계적 대수의 법칙으로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소액 가계대출로 승부를 보라는 경영방침이 하달된다.

한국인 은행원들 스스로도 행태가 보수적으로 변한다. 한국말로 설명해도 제대로 설득하기 힘든 대출건을 영어로 설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현재는 별 볼일 없으나 성장잠재력이 있어 보이는 중소기업에 대출을 하자는 보고서를 쓰는 은행원들이 멸종 위기로 몰린다.

외국 자본이 인수한 우리나라 은행에서는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 자본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키고 행태를 보수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은행을 외국자본에 넘긴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감독당국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실현시키지는 못했으나 사외이사의 과반수를 한국인으로 선임하게 하도록 제도를 고치려했었다. 최근에는 본국의 경영간여를 줄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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