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전문가들은 최근 증시흐름과 관련 단순한 기대감보다는 한국증시, 한국 경제에 대한 전반적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내수침체속에서도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한국 경제의 향방이 달라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란 시각이다.
이를테면 펀더멘털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속에서 외국인들의 바이 코리아 행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시중 부동자금이 점차 증시로 유입되고 있는 현실도 이 같은 진단과 무관하지 않다.
적립펀드열풍도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돈을 묶어뒀던 이른 바 부자고객들이 이미 증시 한복판으로 들어왔다는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요즘 각 증권사 VIP담당자들은 부쩍 늘어난 거액계좌를 중점관리하기 위한 비책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을 정도다. 또 새로 터지는 신규 계좌로 유입되는 고객예탁금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A증권사 광화문 인근 지점 관계자는 “시중 얘기처럼 떼돈이 한꺼번에 유입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해 하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거액계좌가 유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각 영업직원별로 거액고객을 집중적으로 상담하기 위해 고객성향분석을 통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많이 부족’한 프라이빗뱅커 = 대중경제(Macro Market)속에서 프라이빗뱅킹(PB)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PB시장 선점을 위한 각 금융기관의 마케팅도 뜨겁다. 핵심 상위 고객만을 위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 또한 속속 시장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은행PB와 달리 증권PB는 그러나 아직 갈길이 멀다. 시장규모와 수요에 부응하는 전문 PB시스템 또한 부재한 현실이다. 파이는 커지고 있는데 유기적 마케팅전략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 증권사는 전 영업점을 자산관리화 점포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다수 증권사는 PB시장의 수익성과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은행 중심의 PB’라는 고식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PB고객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는데 증권사 PB영업시스템은 VIP영업형태에 머물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문PB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시점이다.
서너개 PB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한 증권사 강남권 지점장은 “증권사마다 PB고객을 위한 전략적 마케팅을 준비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식 외에 또 하나의 대안으로 금융상품을 권해주고 있는 수준”이라며 “PB고객만을 위한 다양한 상품개발 능력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고 특히 수준 높은 프라이빗뱅커 육성 프로그램도 부재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새 금융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PB라는 전문시장을 리드하기 보다는 한 발 뒤에서 따라가는 수준이라는 진단이다. 이 같은 현실은 증권업황의 특수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른 바 시황산업이라는 증권업의 경우 ‘석달 벌어 1년 경영수지를 맞추고, 대세상승장 1년이면 3년 불황을 버틸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PB시장 선점을 위한 구체적 연구작업도 없고 특히 PB고객 만족도 제고를 지원할 유능한 전문인력 육성에도 힘을 쏟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 좋을 때 자연스레 찾아오는 큰 손을 위한 차별화 정보나 우량주, 배당주 제안만이 전부인 셈이다.
증권사 PB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한 증권맨은 “은행PB와 달리 증권PB에서 고객을 위해 제안할 만한 특화아이템이 별로 없다”며 “부동산이나 세테크, 재테크 상담 능력은 당연히 은행PB가 앞서 있는 게 현실이고 특히 최근 인기가 높은 펀드상품 역시 은행권에서 모두 취급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증권PB가 어떤 차별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증권PB의 단면이다.
◆ ‘작지만 알찬 가능성’= 현재 PB점포나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증권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몇 안되는 증권사만이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 기존 증권사중에서는 한화, 한투, 삼성증권 등이 PB센터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합병 증권사인 동양종합금융증권과 굿모닝신한증권 등이 가세하고 있다.(표 참조)
한투증권은 지난 2001년 2개 PB센터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강남과 강북으로 나눠 PB고객 대상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주식, 국내외 수익증권, 채권 등이 주력상품이다. 지난해말 기준 취급고는 4천억원 규모, 1억 이상 PB고객수는 900명선이다.
한화증권 역시 2개 PB센터를 갖추고 있다. 모두 강남권에 편재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PB戰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해말 취급고는 1천300억원 규모였으나 연초 증시활황에 힘입어 현재 3천300억원으로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해외펀드 및 외평채 등 해외 고수익 채권 판매확대로 매출신장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한화증권은 또 현재 브로커리지와의 공조차원에 머물고 있는 PB영업시스템을 개편해 전문PB점포로 승부한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합병증권사의 시너지 구현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동양종합금융증권과 굿모닝신한증권 역시 이 분야에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일반 증권사와는 차별화된 상품구색과 운용노하우를 바탕으로 시장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브로커리지 영역 외에 종금사만의 특화된 금융상품 설계, 운용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객의 리스크 수용도를 철저히 분석해 안정지향형 고객에게는 CMA등 종합금융상품 위주로 포트폴리오전략을 수립해 제공하는 한편 고수익 선호형 고객을 위해서는 주식이나 해외펀드를 추천하고 있다. PB점포는 강남권 2곳, 강북권 1곳을 운영하고 있다. 취급고는 2조4천억원대. 증권사 PB실적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 회사 관계자는 ‘선택적 포트폴리오 전략’이 주효했다고 귀띔했다. 차별화상품인 CMA와 발행어음의 경우 은행의 정기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 상품경쟁력이 있었고 고수익추구형 투자신탁상품까지 구비해 투자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설명이다. 2월 현재 동양종합금융증권의 1억이상 PB고객수는 2천명선이다.
지주회사 계열 굿모닝신한증권은 지점 1곳, 영업소 4곳 등 5개 PB센터를 확보하고 있다. 강북권과 강남권, 그리고 분당 등에 점포를 배치했다. 지주회사의 시너지추진전략에 따라 센터장은 은행에서, 팀장은 증권에서 차출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소수의 유망고객을 대상으로 최고 수준의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PB전략을 펼치고 있다. ‘금융자산 최소 10억원 이상’이라는 가입기준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테면 양질의 소수 PB고객만을 위한 스페셜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굿모닝신한증권은 1:1 전담PB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주회사체제에 걸맞게 ‘은행+증권’ 복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한편 최초 여성PB지점장을 탄생시킨 삼성증권은 전략적 조직개편을 통해 PB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삼성증권은 현재 리테일부문을 PB체제로 전면 개편하는 등 이 시장 석권을 위해 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리테일사업부를 아예 PB사업본부로 이름까지 바꿔 달았다.
◆ 현실인식이 중요하다 = 증권PB의 현위상은 걸음마단계다. 경쟁력있는 상품기획력과 전문PB 역량 확충이 시급하다. 더불어 규모의 확대 또한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다. 대내외변수에 의해 종합주가지수는 꺽어질 수 있지만 PB고객의 투자의지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수익원다변화로 연결된다.
문제의식은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증권PB시장의 성장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한국 증시의 저평가문제가 해소되면 이전과는 다른 증시행보를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관행에 익숙해진 영업행태와 의식구조를 바꿔야 하는 이유다. 특히 저금리기조에 지친 PB고객들이 소리없이 증시로 모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문PB영업 인프라 확충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되는 대로’식의 영업행태가 아니라 ‘되게 하는’ 시스템을 기획해 시장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은행PB는 크는데, 증권PB가 안될 이유는 없다. 공동보조로 파이를 키우고 증권시장만의 전문 서비스로 이 시대 ‘부자’를 잡아야 할 시점이다.
<국내 금융기관 PB현황>
(자료:각 은행, 2005년 1월 기준)
(자료:각 증권사, 2005년 2월 기준)
김찬훈 기자 custar@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