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전산망은 국가 기간시설에 해당하는 중요 정보보호 시스템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공동망이라는 결제 네트워크가 있어 한 은행의 장애가 다른 은행들의 결제 일정이나 서비스에 혼란을 일으킨다.
이런 전산망을 다운시키면 형사상 처벌을 받게 되지만 노조원들은 이를 감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실행 가능성 50% 내외
합병 반대 때문에 은행 전산시스템이 중단될 뻔한 위기는 98년, 99년에 두 차례 있었다. 지난 98년 6월 29일, 퇴출이 결정된 동화 동남 경기 등 5개 은행의 전산부서 직원들이 시스템 가동에 필요한 패스워드를 가지고 사라져 한동안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했다. 당시 신한 한미 국민 등 인수 은행 전산 직원들이 퇴출 은행의 전산센터에 투입되면서 이 사태는 단기간에 큰 위기없이 해결됐다.
지난 99년에는 옛 국민은행 전산부서 직원들이 국민-주택은행 합병에 반대하며 잠적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나 시스템 중단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 조흥은행 전산시스템 전면 중단의 실현 가능성은 반반이다.
노조 관계자가 “시스템이 다운되면 고객 예금 인출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신한은 껍데기뿐인 은행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을 내비친 것처럼 조흥은행 직원들 사이에는 ‘독자생존 외길을 위한 투쟁’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반면 은행권에서는 조흥은행 노조원들이 전산시스템 중단으로 인한 파국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섣불리 행동에 옮기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5일은 자금결제일이 집중되는 시기로써 개인 고객의 불편은 물론, 기업 부도로 인한 국가 경제 대란까지 일어날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과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조흥은행 노조원들이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전산망 전면 마비 가능성은 ‘Zero’
조흥은행 노조원들이 전산망을 완전히 내리건 안 내리건 일단 은행 전산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될 가능성은 없다.
전산망 가동을 전면 중단하려면 시스템 전원을 일시에 내리고 노조원들이 전산센터를 점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노조원이 아닌 차장급 이상 직원들과 용역 인력이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 있다.
조흥은행은 총파업으로 인한 전산시스템 중단에 대비, 이미 전산부서의 핵심 인력을 확보했으며 다른 은행의 전산인력도 지원받는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금융감독원은 자체 IT인력 10여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노조원들이 시스템 스위치를 일제히 끄고 전산센터를 점거해 버리는 최악의 경우, 정부는 곧바로 공권력을 투입하게 된다.
조흥은행 노조가 단계적으로 전산시스템을 다운시키며 협상에 나서게 될 여지도 있다. 총파업을 시작하면 일단 전국 영업점의 셔터는 내리되 자동화기기와 인터넷뱅킹 정도를 한시적으로 가동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전산시스템을 다운시켜 버리면 위의 상황처럼 별 효과도 없이 노조원들만 다치게 되기 때문이다.
조흥은행 노조관계자도 “시스템 중단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어 정부의 태도 변화에 따라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미선 기자 u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