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봉투”를 돌리는 과정이 단순한 “상호 이해의 증진과 확인”의 자리였는지 아니면 “작전명령의 일방적 하달”이었는지는 아마도 당사자만이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어디 일이년 살았던 사람들인가. 어떤 일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아는 경우도 있다.
이번 카드사 대책도 그런 요소가 농후하다. 따라서 이정재 금감위원장이 정말로 “공무원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관치금융”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4·3 카드 대책을 거두고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4·3 카드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앞에서 설친 사람들을 철저하게 문책해야 한다.
카드사 문제의 해법은 이미 다 알려져 있다. 카드사에 대해 적기시정조치를 발동하여 자구노력을 명시적으로 강요하고, 이와 관련하여 카드사에 대한 자금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한 후에 자금지원의 절차를 밟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현재의 대책은 비공식적으로 카드사에 대한 금융기관의 자금지원을 아무런 근거없이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매입대상이 되는 카드채의 가격책정 역시 과연 공정하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산관리공사가 과연 여기에 인심좋게 돈을 투입해도 좋은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관치금융의 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산업합리화 조치때부터 대우사태와 하이닉스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금융기관의 일상적 업무와 관련한 관치금융의 위력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명시적인 검사권과 감독권을 가지고 있던 과거의 재무부와 현재의 금감위는 그 권한을 해당 금융기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곳에만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무원들은 감독권과 검사권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일신상 안위를 보장하는 데 더 급급했던 측면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또 하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소위 “낙하산 인사”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금융기관과 그 유관단체의 주요 자리는 퇴임 공무원들로 채워지곤 했다. 금융기관의 감사 자리는 거의 언제나 공무원의 차지였고, 금융기관의 장 자리도 재경부나 금감위 등 소위 상부기관의 눈치나 언질 없이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과거였고, 초라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관행이 오죽 심했으면 구 재무부를 미국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단에 빗대어 지칭했을까.
물론 이런 관행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재무부나 한국은행에서 독립된 금융감독기구를 만들자는 발상의 중요한 논거중의 하나가 관치금융의 청산이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의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은행장 선출과정의 민주화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책임경영도 가능하다는 항간의 주장도 관치금융의 청산과 직접적으로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최근의 사례를 보면 이런 노력은 별로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작년에 한 때 국민은행의 감사 자리를 두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 그 좋은 예다.
올해에도 이런 식의 오해를 살만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이나 우리은행의 경영진에 대한 여러가지 논란들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금융감독기관이 감독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재량권을 보유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또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직된 법규정을 가지고 연체동물처럼 변신하는 금융행위를 제대로 규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량권을 보유한다는 것과 무소불위의 심술을 부리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감독당국이 그 아슬아슬한,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경계선을 잘 구별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 나라의 감독관행도 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