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현실에 미치는 불합리한 정치논리를 꼬집는 말이다.
경제적 효율성이나 적합성보다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판단을 한다는 의미이다.
난데없이 이런 황당한 말을 꺼내는 것은 최근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우리금융지주회사의 기능재편과 관련한 대선주자들의 발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 후보가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중 하나로 편입돼 있는 경남은행 처리와 관련해 독자생존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는가 싶더니 당시 한창 진행중이던 한나라당의 경선과정에서도 주자로 나선 4명의 후보가 모두 이구동성으로 같은 목소리를 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99년 구조조정차원에서 조흥은행과 충북, 강원은행을 합병할 당시 예보와 조흥은행이 체결한 MOU의 자구안에는 조흥은행 본점을 충청도의 특정지역 즉, 대전이나 청주로 옮긴다는 내용이 삽입돼 있었다.
이런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 정치논리가 작용했다는 것은 금융권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당시 정치적 역학구도는 자민련과 현 집권당의 전신인 새정치 국민회의와 정책공조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였고, 같은 맥락에서 자민련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도 지역으로의 은행이전이 거론됐던 것이다.
물론, 한때 수도를 대전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공론화 됐던 적이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덩치 큰 은행 하나를 지방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정치논리의 산물로만 인식하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흥은행의 합병파트너가 충북은행만 있었던게 아니고 강원은행도 있었던 점을 생각하고 당시 정치상황 즉, 자민련과 국민회의 양당간 공조체제를 감안한다면 정치논리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도 어려운게 사실이다.
각설하고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우리금융의 기능재편의 적절성 여부를 제대로 꿰뚤어 보자면 우리금융의 탄생배경부터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우리금융’은 한마디로 부실화된 은행구조조정을 위한 수단으로 생겨났다.
그러니까 정부가 고심끝에 한빛, 평화, 광주, 경남은행을 한 묶음으로 만들어 처리하자는 발상을 했고, 그 결과물이 우리금융지주회사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능재편에 대한 마뜩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데 있다.
선진사례를 보면 금융지주회사에 동종업종 금융기관이 수평적으로 독자적 위상을 지닌 케이스는 거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원론적으로는 현재의 독립법인체제를 유지하기보다는 통합을 통한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이는 금융의 겸업화와 대형화, 그리고 금융업종간 계열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지주회사의 설립목적과도 부합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금융에 편입돼 있는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이 각각 거대한 지역경제권을 지닌 지방은행인데다 최근 경영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는 점 때문에 이같은 원론을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규모가 이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말처럼 이들 은행이 독자법인체로 존립하면서 지역은행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큰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을 포함, 독자생존론을 주장하는 의견을 무조건 잘못됐다거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부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금융이 해답을 찾기 위해 수십억원의 비용을 투입해 실시한 AT커니의 경영컨설팅 결과이다.
사실 기능재편문제가 막연한 정책판단만으로 결론내리기 어려운 사안인데다, 더나아가 집단이기주의나 정치논리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었기에 경영컨설팅을 실시했고, 그래서 그 결과는 존중돼야한다. 절대적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마땅히 참고사항으로 존중돼야한다고 본다.
그런데, AT커니의 컨설팅 결과는 이들 두 은행이 독자생존 능력이 없어 한빛은행과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것도 8월이전에 합병을 단행하지 못하면 시너지효과도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원론적인 지주회사제도의 틀을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필자는 이 대목을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독자생존론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국제적인 공신력을 지닌 컨설팅사가 ‘분명한’, 그것도 지주회사제도의 개념과 부합되는 결론을 제시한 것을 무시하거나 등한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러쿵 저러쿵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며, 그럴 입장도 아니다.
다만, 이 문제와 관련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잘못된 과정과 절차가 바로 그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금융 기능재편문제는 처음부터 잘못 꼬인 일종의 ‘그릇된 방정식’과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사안의 특성상 마뜩한 합의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애당초부터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금융탄생시점에서 난상토론을 거쳐서라도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도출했어야 한다.
그게 도저히 쉽지 않아 미뤄진 것이라면, 적어도 컨설팅결과에 대한 구속력에 대한 합의는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당연한 수순을 등한시 했기에 이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고 해결은 어려워졌다. 결국 현재의 논란은 자초한 셈이 됐다.
아무튼 어느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우리금융기능재편이 합리적으로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제발 조용히 있기를.
<이 양 우 편집국장>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