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12월, 외환위기로 인한 국내 경제의 총체적 위기로 한국 정부는 총 55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구제금융 합의서 서명 이 후 IMF에서 195억달러, 세계은행(IBRD)에서 70억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37억달러를 지원 받아 국가부도를 면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축소, 물가 억제, 수입선 다변화제도 폐지, 외국인 주식취득한도 확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대폭적인 기업 구조조정 등 IMF의 계속되는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결국 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이다. 즉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국제 금융기관인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것이지만,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까다롭기로 유명해 엄격한 재정긴축과 가혹한 구조개혁이 뒤따라야 했다. 따라서 금리 상승과 경기 악화, 실업률 상승 등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한국은 IMF로부터 차입한 단기성 고금리 차입금인 보완준비금융(SRF) 135억 달러를 99년 9월에 조기 상환하고, 60억달러의 대기성차관자금(SBL) 역시 2001년 1월부터 상환하기 시작해 같은 해 8월 23일 모두 상환함으로써 IMF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로써 구제금융 신청 이후 3개월마다 한 번씩, 모두 11차에 걸쳐 실시해야 했던 IMF와의 정책협의도 예정보다 3년 정도 앞당겨 종식됐다.
■ 금융실명제 실시
93년 8월 12일 20시를 기해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의해서 금융실명제 실시가 발표되면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정상화와 합리적인 과세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로 은행예금이나 증권투자등 대부분의 금융거래를 할 때 실제 명의로 해야 함을 의무화한 제도이다.
금융실명제가 본격 도입됨에 따라 조세부담 형평성 제고, 지하자금 노출, 부정부패를 근절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일시에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금융경색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또한 저소득층의 소득원이 과다하게 노출됨에 따라 조세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있었고, 지하자금이 제도권으로 흡수되지 않고 부동산등으로 몰려 ‘거품’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 저금리 시대 본격 개막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행된 고금리 정책을 끝으로 지난해부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저금리 시대를 맞게 되었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는 개발경제 시대의 상징인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왔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경제개발의 결과로 발생한 물가불안을 해소하고 시중자금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지난해부터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시장의 자신감과 구조조정의 영향, 개발경제에서 지식산업으로의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등은 시장금리를 사상 최저로 유지하게 되었다.
저금리 시대의 도래로 국내 주식시장등 자본시장이 발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고 금융시장의 선진화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넓게 확산되었다.
반면 저금리 기조의 정착과정에서 신용카드업 초호황 및 가계대출액 급증등 부작용도 속출, 적절한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저금리에 따른 대출자금 수요가 폭증해 신용불량자들이 양산되고 자금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 급등→ 담보가액 및 대출가능 한도액 증가→가계대출 잔액 증가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은행대형화 급진전
국민 주택 합병은행이 2001년 11월1일 공식 출범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은행간 합병이 대부분 부실화된 은행을 처리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합병 국민은행은 대형 우량은행간 단행된 최초의 합병으로 은행권의 판도를 뒤바꾸는 큰 사건이었다.
합병 국민은행의 출범으로 우리나라는 자산규모 세계 60위권 초대형 은행을 갖게 되었으며, 대형 선도은행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돼 은행간 경쟁이 더욱 더 격화되었다.
■ 벤처열풍 & 벤처거품
99년 말부터 시작된 벤처열풍. 일부 대기업의 부도로 촉발된 외환위기를 벤처기업이 다시 살려 놓았다. 벤처열풍으로 우수한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몰리면서 우리 경제를 지배해왔던 대기업 중심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IMF시절 10% 이상 치솟았던 실업률을 4%대로 낮추어 놓은 것도 다 벤처기업이다. 또한 외환위기로 실직한 수많은 금융인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서울 테헤란밸리에서 시작된 벤처밸리의 광역화는 이제 전국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밸리만 전국에 40개가 넘고 지난해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은 일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에 비해 매출액 증가율, 매출액 경상이익율, 고용증가율, 수출증가율과 같은 국민경제지표에서 월등하게 높게 나타나면서 미래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벤처열풍에 따른 휴유증도 만만치 않다. 벤처거품이 걷히면서 진승현 정현준 이용호 게이트로 이어진 벤처비리 사건은 정쟁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 은행금리 및 보험가격 자유화
지난 96년 한국의 OECD 가입을 전후해 금리 자유화가 본격화됐다. 91년 정부와 한국은행이 4단계 금리자유화 추진계획을 수립함에 따라 지난 10년간 여신금리는 단기금리부터, 수신금리는 장기금리 및 단기시장성 금리부터 자유화됐다. 95년까지 3단계에 걸쳐 대부분의 금리가 자유화됐으며 97년 7월에는 3개월 미만 저축성 예금 금리도 자유화됐다.
현재는 은행의 요구불예금 등 일부 초단기 수신금리와 재정자금 대출금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금리의 자유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금리 자유화에 힘입어 손해보험사들의 가격 자유화 제도도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금감원은 손보사 일반 보험에 이어 자동차보험료를 완전 자유화했다. 여기에 올 4월부터 장기보험료가 자유화되면 명실공히 모든 손보사 보험상품 가격이 자유화된다.
이로 인해 손보사들은 자사 손해율을 근거로 보험가입자의 실제 위험도에 따라 보험료를 산출, 적용하게 된다. 이로인해 보험회사 간에는 물론 보험가입자의 연령이나 차종, 보험가입자의 경력기간 등에 따라 보험료가 차등을 보여 실질적인 가격 및 서비스 차별화가 가능해졌다.
■ 금융 구조조정 寒波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계에는 퇴출 및 P&A, 합병이라는 초유의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쳤다. 대동 동남 동화 강원 충북등 5개 은행이 P&A로 사라졌으며, 상업-한일 합병에 따른 한빛은행, 하나-보람은행의 합병, 국민-장기신용은행의 합병이 잇따랐다.
이러한 여파로 현재 제일-하나, 신한-한미 등의 합병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또한 서울은행을 우량은행에 합병시킨다는 방침이어서 IMF 이후 계속되어온 은행간 합병이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증권업계도 5대 증권사중 하나였던 동서증권과 고려증권이 모회사의 경영 위기로 퇴출됐다.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산업증권 등 5개사가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며 쌍용증권 등이 외국계 자본에 인수돼 굿모닝증권사로 개명됐다. 또한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은 공적자금을 지원 받아 운용사와 증권사를 설립했다. 국민투자신탁도 현대그룹으로 인수돼 현대투신으로 재탄생했다.
보험업계에서는 국제, 태양, BYC, 고려생명 등 4개 생보사가 퇴출됐으며 2000년 2차 구조조정을 통해 동아, 태평양, 국민, 한덕, 조선생명 등 5개 생보사가 금호, SK, 동양생명에 인수합병 돼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또한 2001년에는 현대, 삼신생명이 대한생명으로 계약이전(P&A)됐으며 현재까지도 대한, 대신, 한일생명 등 3개사가 매각작업을 진행,강도 높은 추가 구조조정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IMF 이전 30개에 달하던 종합금융회사가 현재는 3개사만이 정상 영업중이며 2000년 말에는 영업정지에 들어간 영남, 한국, 중앙, 아세아종금 등이 우리종금에 P&A방식으로 이전됐다. LG, 동양종금은 각각 그룹내 증권사와, 한외, 현대종금은 각각 외환은행, 조흥은행과 합병했다.
■ 인터넷뱅킹과 사이버트레이딩의 출현
90년대 말 인터넷뱅킹과 사이버트레이딩이 출현하자 기존의 금융권 업무 관행과 비즈니스 형태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인터넷뱅킹은 은행의 수십개 점포와 영업점 창구 직원들을 대신하면서 저비용 고효율의 고객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고심하던 은행권에 여러모로 큰 가능성을 열어줬다.
사이버트레이딩의 경우 빠르고 안정적인 매매체결 서비스 덕분에 투자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주식거래에 접근할 수 있게 돼 전체적으로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는 등 주식거래 활성화에 기여했다. 반면 제도권 증권사들과 사이버 증권사들이 저렴한 거래 비용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주식매매 체결 수수료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놨다.
인터넷뱅킹과 사이버트레이딩은 출현한지 약 2년만에 폰 서비스 이용률을 앞지를 정도로 대중적인 채널로 자리잡았으며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부동산 등을 아우른 컨텐츠를 기반으로 종합금융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 카드시장, 440兆 규모로 급팽창
지난 10년동안의 카드업계를 뒤돌아 볼 때 가장 큰 이슈는 카드업의 ‘양적팽창’이다. 69년 신세계백화점카드를 효시로 70년대 후반의 은행카드 88년 삼성, LG 등 재벌계 카드로 이어지는 신용카드 시장은 440조원 규모로 급팽창했다. 더욱이 최근 2~3년간 유래없는 정부의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은 신용카드 시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신용카드 공화국’으로 대변될 만큼 신용카드는 이제 온 국민의 지갑속 필수품이 됐고 국민 1인당 카드보유수가 3.5매에 이를 정도의 과열양상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황금시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신규업체들의 진입도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카드시장의 급팽창은 104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양산 및 무분별한 카드발급 등의 부작용을 낳았고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10년동안의 소극적 규제에서 탈피, 신용카드 시장의 질서를 잡기 위한 칼을 들었고 이같은 규제는 올해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상호신용금고, ‘상호저축은행’으로 改名
상호신용금고업계의 오랜 숙원중 하나였던 상호변경 문제가 지난 3월1일자로 ‘상호저축은행’으로 전환돼 해결됐다. 상호신용금고가 설립된 지 30년 만에 ‘은행’ 상호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사금융의 양성화를 위해 지난 72년 12월 출범한 상호신용금고는 그 동안 은행 이용이 어려운 서민, 중소기업 등을 위한 금융기관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00년 각종 벤처 게이트 등과 연계돼 업계 상위사를 포함해 20여개사가 퇴출되면서 신뢰도 제고를 위한 상호변경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이에 지난 2001년 3월 상호신용금고법을 ‘상호저축은행법’으로 개정하고 금년초 시행령을 개정, 3월1일자로 일괄 상호저축은행으로 전환하게 됐다.
또한 지난 2월4일 신협, 새마을금고와 함께 금융결제원 회원으로 가입, 각종 공과금 등 지로수납, 타행환 송금, CD공동망 이용, CMS 업무 등 폭넓은 금융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상호신용금고연합회의 명칭도 ‘상호저축은행중앙회’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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