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에게 담보 위주의 여신관행에서 벗어나 신용대출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용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신용 우량자를 대상으로 신용한도를 확대하거나 대출 대상 고객을 새로 발굴해야 하지만 어느것 하나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비 심리위축 현상이 발생하고 실업률까지 높아지면서 신용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희박하다는 것이 금융계 중론이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정부가 은행장들에게 신용대출 활성화 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은행들은 시장상황과 은행의 경영전략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신용대출 확대는 지난해말부터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영업전략으로 정부의 지시가 아니라도 은행의 경영판단에 따라 확대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
대부분 은행들이 기존 거래 고객은 물론 신규거래 고객중 신용이 우량한 고객을 대상으로 신용한도를 사전에 부여하는 ‘신용한도 사전부여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미, 조흥, 한빛은행 등은 은행 고객의 10%에 달하는 고객에게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한도를 설정해 통지하고 있다.
신용한도를 채우지 못한 고객이나 신용한도 사전부여제를 실시하지 않는 은행의 경우 급여이체 대상자 대출, 주거래 고객 사은 행사 등을 통해 자신의 신용도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대출을 받고 있다는 것이 대출 담당자들의 주장이다.
결국 신규 고객 창출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신용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연체율 증가 등 위험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에서는 신용평가 기준과 심사기법 강화하면 된다는 논리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여기에 최근 들어 소비 심리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대출 발생의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많은 연구기관들이 미국 테러사태 이후 국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다는 연구물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실시한 가계소비심리를 조사한 결과 주요 체감경기 지수들이 올 3분기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반전했다.
경기·소득·소비지출에 대한 가계생활지수는 지난해말을 기점으로 상승하다가 3분기 들어 전분기 대비 9.0 하락해 73.4로 떨어졌다. 6개월 후의 경기전망을 나타내는 경기예측지수도 전분기 103.2에서 75.5로 급락했다.
이와 함께 경기둔화와 계절적인 요인으로 내년 3월까지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의 경기둔화와 노동시장의 고용동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수출과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며 내년 1분기까지 고용 사정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하던지, 아무리 완벽한 심사기법과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갖춘 은행일지라도 신용대출의 절대 규모를 확대한다면 부실발생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게 금융계 중론이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