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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조된 국민-주택銀 합병 양해각서

송훈정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00-12-27 22:46

“실제로 합의된 내용은 하나도 없어”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체결한 합병 MOU(양해각서)가 구체적 내용이 없고 급조됐다는 지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노조 파업사태에 직면, 두 은행의 등을 떠밀어 급하게 합병을 선언하게 하느라 빚어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정부와 두 은행의 조치는 결국 자충수로 작용, 두 은행의 합병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두 은행이 합병 논의가 구체적으로 오고간 지 얼마 안돼 정부 고위관계자가 합병설을 유포해 두 은행 노조가 강력 반발, 결국 초유의 파업사태까지 야기했고 급기야는 합병 반대 총파업을 시작한 상황에서 두 은행장이 졸속으로 합병 선언을 하게 만들어 직원들의 반발이 더욱 커졌다는 주장이다.

합병을 발표한 22일 전날까지도 국민 주택은행은 존속법인과 행명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설립연도나 브랜드가치로 보나 둘 다 양보할 수 없다는 국민은행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분위기였다. 이때 주택은행쪽에서 존속법인과 행명중 하나만을 택하지 않으면 합병이 어렵다는 최후의 카드를 던져 국민은행은 이를 놓고 고심중이었다는 후문.

그러나 두 은행 노조의 파업사태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정부는 합병 발표를 서둘렀고, 이에 두 은행장은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 제대로 합의도 못한 채 ‘제3의 은행 신설’이라는 전대미문의 합병 선언을 하게 됐다는 것.

‘제3의 은행’에 대해서도 두 은행 협상 실무진들이 심도있게 논의하지 못해 결국 “합병추진위원회에서 두 은행이 합의할 경우 이를 바꿀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언제든지 다시 존속법인 및 행명 등에 대해 재논의할 수 있게 했다.

한편 국민 주택은행은 정부에 등을 떠밀려 합병 선언을 하느라 합병 MOU 문구조차 매끄럽게 작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략적인 초안만 잡아놓고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수작업으로 고쳐 최종 사인을 했다는 후문이다.

일례로 합병비율을 시장가치(국민은행 주장)로 하느냐 시장가격(주택은행 주장)으로 결정하느냐로 막판까지 대립하던 두 은행은 MOU에 ‘시장가치’로 일단 표기했다가 다시 수작업으로 ‘치’자를 ‘격’자로 수정, ‘시장가격’으로 합병 비율을 산정한다고 합의했다. 합병비율을 시장가치로 하느냐, 시장가격으로 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나며 합병시 존속법인과 행명이 주도권 싸움의 대상이라면 합병비율은 금전적인 문제다. 이 같은 주요한 합병 조건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한 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합병 선언을 했다는 지적이다.

일면 주가위주의 합병비율을 주장하던 주택은행의 주장대로 된 것 같으나 이 조항에 또 ‘자산 부채 실사후 시장가격과 현저히 차이가 날 경우 합추위에서 이 조건을 수정한다’는 조건을 달아 두 은행 사이에 최종 결정이 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합병비율 기준일에 대한 두 은행의 입장 차이도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합병 MOU에는 ‘합병비율 기준일은 합병 선언 발표 전날인 12월21일로 한다’고 된 부분에 대해 주택은행 쪽에서는 그 날 두 은행의 주가를 비교, 합병 비율을 결정한다고 이해했으나 국민은행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국민은행은 합병비율 산정 기준일을 21일로 잡되 이전의 30일 또는 60일 등의 주가를 평균해 결정하는 것이 상식적이며 며칠을 평균할 것인지는 추후에 결정할 예정이라는 주장을 펴 한때 실랑이를 벌이기고 했다.

결국 두 은행은 노조파업사태에 직면, 급하게 합병 발표를 하느라 양쪽이 제대로 합병 조건에 대해 의사소통도 하지 못한 채 합병 선언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상적인 합병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같은 행동은 다시 노조와 직원들을 자극, 일산 연수원의 합병 반대 열기를 달구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제3의 은행 신설방식도 두 은행이 합병 조건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급하게 합병을 발표하느라 급조된 방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들고 법적인 제한이 많아 합병은행을 탄생시키는데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아마도 합추위가 구성되면 다시 존속법인 및 행명에 대해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은 처음부터 이상한 모양새로 출발해 앞으로 합추위를 제대로 구성,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두 은행장이 주장하듯 이번 합병이 국내 은행산업에서 갖는 긍정적 의미를 인정한다 해도 졸속 MOU 체결에 따른 대가를 단단히 치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송훈정 기자 hjso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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