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판단은 현실적으로는 수긍이 간다. 이해당사자간 첨예한 이해대립을 조율하기가 어렵고 무엇보다 증시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금감원의 연기 배경설명 또한 설득력이 있다. 물리적으로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나 생보사 상장안처리 과정을 곱씹어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지적할 것은 생보사 상장안은 언젠가는 결론을 내려야 할 문제임에도 다시금 보류함으로써 엄청난 사회적 비용낭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거론된 상장안 문제로 생보사는 물론 시민단체등이 참여한 숱한 공청회를 거치면서 지불한 무형의 비용은 막대하다.
금감원이 수억원의 비용을 들여 외국 컨설팅회사인 어네스트영에 용역을 의뢰했고, 삼성생명 또한 M&R에 의뢰해 수억원을 들여 기업가치평가작업을 벌인 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돈이 들어간 경우이다.
결국 헛 돈을 쓴 셈이 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의 신뢰도 훼손이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부임후 얼마 안돼 금년중에 생보사 상장안을 확정짓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데 불과 한달 전에 자신이 한 말을 뒤집었다. 한달전과 지금과 생보사 상장을 둘러싼 외생변수들이 큰 차이가 없음을 염두에 둘 때 도대체 금감위원장의 말바꾸기는 납득하기 어렵다.
한달전에는 무슨 생각에서 상장안을 확정짓겠다고 했는지, 그리고 이번에 보류를 결정하게 된 배경은 또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상장안을 보류함으로써 수년후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를 하게되면 그때 또 비슷한 규모의 엄청난 추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사실 지금까지 공론화과정에서 결론 도출이 어려웠던 것은 기술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이해대립’이라는 현실적 부담 때문이었다. 가능한 방안은 이미 모두 도출된 상태에서 결단, 즉 정책적 판단만을 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수년 후라고 해서 달라질게 아무것도 없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상장안을 보류한 것은 정책당국이 증시상황을 빌미로 무소신 내지는 책임회피를 드러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게 억울하다면 적어도 판단의 경솔함에 대한 지적은 면키 어렵게 됐다.
더욱 한심한 것은 금감원 스스로가 자료에서 지적했듯이 연초 생보사 상장문제가 표면화된 배경을 삼성자동차 부채문제와 연관이 있었다고 해놓고 상장안 보류이유로는 말을 뒤집어 상장문제와 자동차부채문제는 무관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인 점이다. 명백한 자가당착이요, 상장안이 왜 표류하고 있는지를 웅변하는 대목이다.
이양우 기자 su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