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신청
  • My스크랩
  • 지면신문
FNTIMES 대한민국 최고 금융 경제지
ad

골목마다 쌓인 문화예술의 시간…성북동을 걷다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⑤]

조범형 기자

chobh06@fntimes.com

기사입력 : 2026-10-12 00:00

재개발로 달라진 대학가…골목 곳곳엔 옛 흔적
가파른 길 끝 심우장…되짚는 한용운 삶·문학

▲ 서울 성북구 심우장 내부 벽면에 한용운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과 시 ‘심우장(尋牛莊)’이 붙어 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머문 마지막 삶터다. 방문객들은 툇마루에 앉아 한용운의 삶과 작품, 심우장에 담긴 의미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공간을 둘러봤다. 사진 = 조범형 기자

▲ 서울 성북구 심우장 내부 벽면에 한용운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과 시 ‘심우장(尋牛莊)’이 붙어 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머문 마지막 삶터다. 방문객들은 툇마루에 앉아 한용운의 삶과 작품, 심우장에 담긴 의미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공간을 둘러봤다. 사진 = 조범형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조범형 기자] [공익 콘텐츠]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협찬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서울의 지역자산은 과거의 흔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잘 보존된 공간은 관광과 교육·일자리와 도시재생 등 새로운 지역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금융신문은 이번 기획에서 서울 10개 자치구를 찾아간다. 지역의 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주민과 행정은 이를 미래의 가치로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가 미래의 자산이 되는 서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나오자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익숙한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한때 자주 오갔던 길이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걸어보니 느낌은 달랐다. 달라진 풍경을 찾는 재미와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를 발견하는 반가움이 번갈아 찾아왔다.

요즘 같은 날씨라면 조금의 여유와 체력만 있어도 서울 어느 골목을 걷든 나들이가 될 법했다. 이날은 여기에 오래전 기억까지 더해졌다. 목적지는 성북동 심우장이었지만 곧장 향하지 않고 익숙했던 길을 따라 한성대학교 쪽으로 먼저 걸어보기로 했다.

역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거리 한쪽에 자리한 소녀상은 일상의 공간 속에 역사의 기억이 함께 놓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 성북천 주변으로 들어서자 골목은 분주했다. 성북천 골목형상점가 마당에서는 지역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사람들이 오가고 물품을 정리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주민과 상인들이 지금의 지역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성북천을 뒤로하고 한성대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다시 걸어보는 길이었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니었다.

추억 속 대학가 대신 공사장…달라진 한성대 등굣길

학교로 향하는 길에서는 롯데건설이 시공하는 ‘창경궁 롯데캐슬 시그니처’ 공사가 한창이었다. 내년 준공을 앞두고 아파트 동의 외형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춘 상태였고, 현장에서는 남은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골목의 모습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 학생들이 수업 전후 끼니를 해결하고 시간을 보내던 음식점과 상점들이 있던 자리에는 대규모 공사 현장이 들어섰다. 익숙했던 대학가 풍경 상당 부분이 사라졌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움과 낯섦이 동시에 느껴지는 길이었다. 기억 속에서는 분명 익숙한 곳인데 실제 풍경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새로운 주거단지가 들어서는 도시의 변화 뒤편에서 대학가의 일상과 추억이 담긴 공간도 함께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다시 한성대입구역과 삼선교 방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드라마 촬영으로 인도 한쪽이 통제돼 있었다. 촬영 관계자와 장비가 자리를 잡으면서 평소 시민들이 오가던 거리는 잠시 촬영장으로 변했다.

한성대입구역을 중심으로 짧은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여러 시간이 겹쳐 보였다. 한쪽에서는 정비사업으로 오래된 골목이 사라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역축제를 준비했다. 평범한 거리는 드라마의 배경이 됐고 그 사이에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소녀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한성대입구역 쪽으로 내려온 뒤 성북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이날의 주요 목적지인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을 찾아갈 차례였다.

골목마다 쌓인 문화예술의 시간…성북동을 걷다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⑤]이미지 확대보기

골목마다 쌓인 문화예술의 시간…성북동을 걷다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⑤]이미지 확대보기

“여기에 있다고?”…가파른 골목 중턱에서 만난 심우장

심우장을 처음 찾아가는 길은 예상과 달랐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공간인 만큼 차량 접근이 어렵지 않고 주변도 비교적 한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찾아가 보니 예상은 빗나갔다.

성북로에서 북정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경사는 가팔라졌다. 평지에서 걷듯 가볍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골목과 계단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했다. 일부 구간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편하게 접근하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걷는 것이었다.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 덕분에 걷는 기분은 좋았지만 경사가 이어지자 몇 차례 숨을 고르게 됐다. 가벼운 산책 정도로 생각하고 찾아온 사람이라면 예상보다 가파른 길에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직접 걸어보니 이곳에서 말년을 보낸 한용운의 생활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은 길이 정비되고 안내판과 지도까지 갖춰져 있지만 당시의 교통과 생활 여건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렵다. 한용운 역시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이 가파른 언덕에 자리한 집에서 보냈다.

힘들게 골목을 오르고 나서야 심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숨을 고르며 올라왔던 길과 달리 심우장 안에는 고요함이 흘렀다. 작은 한옥과 마당, 나무가 어우러졌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햇볕을 받으며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기 좋았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급하게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보다 마당에 잠시 서서 집을 바라보고, 툇마루와 방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머문 마지막 삶터다. ‘님의 침묵’을 남긴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이곳에서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일반적인 한옥과 달리 북향으로 자리 잡은 것도 특징이다. 한용운이 조선총독부가 있던 남산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집의 방향 하나에서도 그가 일제강점기를 어떤 태도로 살아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골목마다 쌓인 문화예술의 시간…성북동을 걷다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⑤]이미지 확대보기

골목마다 쌓인 문화예술의 시간…성북동을 걷다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⑤]

골목마다 쌓인 문화예술의 시간…성북동을 걷다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⑤]이미지 확대보기

툇마루에 둘러앉은 방문객들…해설 따라 되짚은 한용운의 삶

이 같은 심우장의 특징은 현장 해설에서도 주요 소재가 됐다. 문화관광해설사는 북향으로 지어진 이유와 한용운의 삶을 설명한 뒤 방문객들에게 관련 질문을 던졌다. 설명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용운의 작품과 심우장에 담긴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방문객들은 앞서 들은 설명을 떠올리며 하나둘 답을 내놓았고, 주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한용운의 삶과 작품세계를 연결하는 질문에서는 방문객들이 서로의 답을 들으며 생각을 보태기도 했다. 해설사는 답이 나올 때마다 당시 시대적 배경과 한용운의 독립운동, 문학세계를 차분하게 덧붙였다. 처음에는 설명을 듣기만 하던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면서 작은 툇마루는 잠시 한용운의 삶과 작품을 함께 되짚어보는 공간이 됐다.

방문객들도 설명을 듣고 곧장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마당을 거닐거나 툇마루와 방을 바라보며 한동안 머물렀다.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가파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심우장을 나와 다시 언덕을 내려가면서 이날 걸었던 길이 하나씩 떠올랐다.

오랜만에 다시 걸어본 대학가는 대규모 정비사업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성북천에서는 사람들이 지역축제를 준비했고 삼선교에서는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성북동의 가파른 골목 끝에는 한용운이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작은 집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바뀐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오래된 가게와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일상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모든 과거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공간은 남아 있기 때문에 현재의 도시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준다.

한성대입구역에서 한성대와 삼선교를 거쳐 심우장까지 걸었던 길에서는 사라지는 공간과 남아 있는 공간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 오래전 기억 속 거리는 달라졌지만 한용운의 마지막 집은 가파른 골목 끝에서 여전히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변화하는 도시와 보존된 역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북의 골목에서는 달라지는 도시의 풍경과 오래된 흔적이 불과 몇 걸음 사이에서 함께 이어지고 있었다.

조범형 한국금융신문 기자 chobh06@fntimes.com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경제·시사 다른 기사

1 골목마다 쌓인 문화예술의 시간…성북동을 걷다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⑤] [공익 콘텐츠]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협찬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서울의 지역자산은 과거의 흔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잘 보존된 공간은 관광과 교육·일자리와 도시재생 등 새로운 지역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금융신문은 이번 기획에서 서울 10개 자치구를 찾아간다. 지역의 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주민과 행정은 이를 미래의 가치로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가 미래의 자산이 되는 서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지하철 2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도쿄도와 데이터·AI 행정혁신 교류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 지난해에 이어 일본 도쿄도 디지털서비스국 대표단과 디지털 행정 혁신 사례를 공유했다.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하 개발원)은 8일 오후 1시 일본 도쿄도 디지털서비스국 공무원 대표단이 개발원을 방문해 양 기관의 주요 디지털 정책과 추진 사례를 공유했다고 밝혔다.이번 방문에는 도쿄도 디지털서비스국 총무부 도네 도시키(TONE Toshiki) 디지털 인사전략과장을 비롯한 대표단 5명이 참석했다.도쿄도 대표단의 개발원 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에는 미야사카 마나부 도쿄도 부지사를 비롯한 대표단이 개발원을 찾아 한국의 전자정부 및 지방정부 디지털 행정 사례를 살펴봤다.이번 교류에서는 양 기관이 추 3 용산구의회, 윤리심사자문위 출범…외부 전문가 7명 위촉 용산구의회가 의원들의 윤리의식과 의정활동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용산구의회(의장 장정호)는 8일 제2회의실에서 윤리심사자문위원회 위원 위촉식을 열고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설치되는 법정 자문기구다. 앞으로 2년간 의원의 겸직과 영리행위 등에 대해 의장에게 자문한다. 의원의 윤리강령 준수 여부와 징계 양정에 대해서도 윤리특별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한다.특히 윤리특별위원회는 의원 징계 심사에 앞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의원 징계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됐다.구의회는
ad
ad

한국금융 포럼 사이버관

더보기

FT카드뉴스

더보기
[그래픽 뉴스] ‘순대’가 경제용어라고? 순(純)대외자산, 한국의 진짜 해외자산은 얼마일까?
[그래픽 뉴스] ISA 대개편! 나에게 유리한 계좌는?
[그래픽 뉴스] 미국 증시 새로운 키워드 'MANGOS'
환전·로또·육아휴직까지 하반기부터 달라지는 제도 TOP11
[그래픽 뉴스] 은퇴후 30년 부모님 세대의 생존전략

FT도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