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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금융의 그늘, 고신용자·성실상환자 ‘역차별’ [금융 잡는 이재명 정부]

김성훈 기자

voicer@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6-29 00:00

중저신용자 금리↓·우량차주 금리↑…금융원칙 흔들
포용금융 성과 이면 형평성 논란·성실상환자 박탈감

포용금융의 그늘, 고신용자·성실상환자 ‘역차별’ [금융 잡는 이재명 정부]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김성훈 기자]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은 정부가 원금을 없애주고, 열심히 갚으려고 노력한 사람은 지원을 제대로 못 받는 게 말이 되나요?”

한 채무자의 한탄이다. 정부의 포용금융 정책은 분명 장기연체자와 취약차주의 채무부담을 덜어주는 성과를 내고 있다. 새도약기금은 지난해 10월 출범 이후 장기연체채권을 빠르게 매입하며 ‘오래된 빚’에 묶인 채무자의 재기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성과의 이면도 뚜렷하다. 취약차주의 부담을 낮추는 과정에서 신용위험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는 금융의 기본 원칙은 약화되고 있다. 연체하지 않고 빚을 갚아온 성실상환자는 충분한 금융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신용자는 오히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구조가 나타나면서 ‘역차별’ 논란도 커지고 있다.

포용금융 성과는 분명

금융위원회가 내세우는 포용금융 성과는 수치상 명확하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새도약기금을 출범시키며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개인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 또는 채무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새도약기금을 통한 장기연체채권 매입 규모는 16조4000억원, 수혜 인원은 113만4000명으로 추정됐다. 상환능력이 없는 경우 채권을 소각하고, 상환능력이 부족한 경우 원금 30~80% 감면과 최장 10년 분할상환, 이자 전액 감면, 최장 3년 상환유예를 제공하는 구조다. 집행 속도도 빨랐다.

금융위는 올해 5월 국민주권정부 출범 1주년 금융분야 10대 핵심성과를 발표하며 새도약기금이 장기연체채권 8조4000억원, 66만명분을 매입했고 이 가운데 사회취약층 1조8000억원, 20만명분을 우선 소각했다고 밝혔다.

금융권과 채무자 사이에 방치돼 있던 장기연체채권을 정리하고 과도한 추심을 멈췄다는 점에서 정책 효과는 상당하다.

실제 장기연체자는 정상적인 금융거래와 경제활동 복귀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추심 중단과 채무조정은 개인의 재기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완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억원닫기이억원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최근 포용금융 토론회를 통해 “포용금융은 일회성 민생대책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구조개혁 과제”라고 언급했다. 취약계층 대상 상품 확대 등 금융 지원과 신용평가체계 고도화, 관련 규제 합리화를 통해 금융소외자가 발생하는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취약차주 금리부담, 우량차주에?

취지 자체는 훌륭하지만, 문제는 포용금융 확대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신문이 4대 은행의 가계신용대출 금리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25년 6월부터 2026년 5월까지 750점 초과 우량·준우량 차주의 평균 금리는 5.04%에서 5.53%로 0.50%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750점 이하 중저신용 차주의 평균 금리는 8.13%에서 7.57%로 0.56%포인트 하락했다. 신용등급별 금리 격차는 3.10%포인트에서 2.03%포인트로 1.06%포인트 축소됐다. 금융의 기본 원칙은 위험에 따른 가격 책정이다. 신용도가 낮고 부실 가능성이 높은 차주는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신용도가 높고 상환 가능성이 큰 차주는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그러나 최근 1년간 4대 은행 금리 흐름은 이 원칙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포용금융 확대 시기와 맞물려 우량차주 금리는 오르고 중저신용 차주 금리는 낮아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강력한 기조로 포용금융 관련 비용이 커지고, 취약계층에 대한 금리 혜택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신용평점 중상위 차주에 대한 금리 부담이 커지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신용자와 성실상환자 입장에서 이 같은 현상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기간 연체 없이 이자를 납부한 차주는 금리 인상 부담을 지지만, 장기연체자는 채권 소각이나 원금 감면 기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도약기금이 별도 신청 없이 협약 금융회사로부터 대상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구조라는 점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재기 의지를 입증하기보다, 일정 기간 장기연체 상태에 놓이면 정책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될 경우 상환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

한 금융권 영업점 직원은 “채무의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실하게 이자를 갚아온 사람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며 “차라리 이자를 안 냈으면 나라가 원금을 없애줬을 것 같다며 허탈해 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전했다.

정부도 인정한 도덕적 해이·형평성 우려

정부도 이 같은 부작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는 올해 4월 신용정보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설명하며 새도약기금과 새출발기금 등 정부 채무조정기구가 상환능력 심사 과정에서 예금, 증권 등 금융자산과 가상자산 보유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원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가도록 해 도덕적 해이와 성실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제도에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이 존재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 정부의 채무조정 정책에서도 비슷한 논란은 반복됐다. 2022년 출범한 새출발기금 역시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을 목표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지원대상 심사 강화와 가상자산 재산심사 반영 필요성이 제기됐다. 금융위도 새출발기금에 대해 가상자산 등을 포함한 면밀한 재산심사를 통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현장 담당자들은 일부 취약계층에서 이미 도덕적해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버티면 나라가 갚아준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상환 능력이 있어도 현금만을 사용하며 이자를 내지 않거나, 배 째라 식의 태도를 보이는 민원인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포용금융, 성과만큼 비용도 계산해야

포용금융은 필요하다. 장기연체자와 취약차주를 방치하면 금융채무 불이행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고용, 불법사금융, 추심 비용 등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확산된다. 그러나 포용금융이 반복될수록 정책의 경계도 분명해야 한다.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것과 상환능력이 있음에도 갚지 않는 차주까지 지원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사회안전망이지만 후자는 금융질서 훼손이다.

특히 정책금융과 시중은행의 역할이 뒤섞이면 금융의 가격 체계는 더 흔들릴 수 있다. 취약차주 지원을 위해 중저신용자 금리를 낮추는 것은 정책적으로 설명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량차주와 성실상환자의 금리 부담이 커진다면 형평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금융권에서는 포용금융의 축소가 아니라 정밀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하고, 성실상환자에게도 실질적인 금리 인하와 신용회복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권을 압박해 무조건 적으로 금리를 낮추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규제 합리화를 통해 고신용자에 금리 부담이 전가되지 않고 신용위험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은 복지와 달리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 시장이다. 포용금융이 금융배제를 줄이는 데 성공하더라도 신용과 상환의 가치까지 약화시킨다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포용금융이 진정한 재기 지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갚지 않은 사람’뿐 아니라 ‘끝까지 갚아온 사람’도 함께 보호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김성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voice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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