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속가능경영, ‘참칭’인가 아닌가](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31110211238127815fnimage_01.jpg&nmt=18)
최근 만난 비은행 금융사 책임자급 직원이 전해 준 말이다. 객관적으로 알려진 연봉 수준이 그렇고 근무여건이 그러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것. 임원 직함 얻지 못하면 알아서 물러나야 하는 연령이 50대 초반에 형성되기도 하는 2금융권 현실에 비춰 은행원들은 조금 더 길지 않느냐는 이유도 잇대었다.
상대적으로 나은 형편이면 부러움과 시샘을 감내해야 하는 게 숙명이라서 은행원들은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 이 논리를 거부하고픈 유일한 집단 역시 은행원 뿐인 것으로 보인다. 형편이 더 나은 집단에선 제 몫의 일이 아니니까.
이른바 자폭 통장이니 하는 영업목표 할당이 횡행했던 사례 정도로는 통하지도 않는다. 시장이 어려우면 어렵기 때문에 위험이 적은 은행으로 뭉칫돈이 몰리고 시장이 좋으면 좋은 대로 은행이 수신고를 채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반면에 막상 대출이 필요해서 은행 문을 열고 들어 갔다가 적정한 대접을 받았다고 느끼는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서민들에게 넘을 수 없는 문턱이요, 중산층이나 이른바 안정적인 전문직업군일지라도 정보 비대칭에 따라 자기가 무는 금리가 적정한 수준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불만 어린 여론에 압도되기 십상이다.
감독기구 수장이 수수료 현실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금융회사 수익기반 정상화 플랜이 자취를 감추게 된 배경 역시 상대적으로 부유하며 ‘갑’의 위치를 점유한 은행이 영원한 ‘을’인 서민 주머니를 야금 야금 털려고 한다는 거부 정서에 기인했던 것 아닌가.
다수의 은행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에서 멈춰 서곤 한다. 맞다. 은행과 은행원에게 사회가 맞춰 주는 대접은 자업자득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 맞는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되돌아 보면 은행권에서 유행했던 경영 슬로건이나 담론들의 실체가 사상누각에 견줄 만한 상황임에는 1997년 외환위기 전이나 후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길거리 모집인까지 투입해 주민등록증이 있어 약간의 심사만 받으면 대학생에게 신용카드를 내 줬다가 시장위험이 급팽창 결국 카드대란을 불렀던 과정에 은행들의 책임이 없지는 않았다.
그 직후 부쩍 부각됐던 고객만족경영이니 CRM이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이라느니 한 차례 물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이에 고객제일주의를 앞세운 기업문화를 표방한 은행이 있었고 말로는 고객 최우선 영업을 부르짖지 않은 은행장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을 눈 앞에 두면서 떠올랐고 지금까지 유효한 담론 ‘지속가능경영’이 곁에서 숨쉬고 있다. 은행 경영진 치고 ‘단기업적주의’라는 말에 정색하지 않은 사람도 거의 없다. 단기업적주의는 ‘지양’하고 고객본위 영업에 매진을 하노라는 설명이 당연히 쌍을 이룬다.
그 결정판으로서 외래 담론 지속가능경영이 자리를 꿰어 찼다고 하면 지나친 지적일까? 실제 은행 일선 현장에서 작동하는 진짜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가만히 응시해 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최근 만나 머리를 맞대어 본 전문가 중 한 사람은 “4~5년은커녕 2~3년 뒤를 생각하는 경영진이 소수로나마 존재해야 하는데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 은행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심정을 털어 놓았다.
지점장들이야 당면한 영업목표에 집중해야 할 테니 빼고 본점 부서장은 외환위기 전과 달리 권한이 크게 축소됐으니 괜한 월권을 자초할 수 없으니 빼면 누가 남나. 영업본부장과 본점 본부장? 연간 업무 목표에 쏠리기 딱 좋게 임기 1년짜리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름 상으로 넘버 2로 볼 만한 부행장들이?
불행하게도 특유의 용병술과 단기적 추진력과 아이디어를 발휘해 영업실적을 끌어올리는 데는 수준급의 역량을 지닌 분들은 즐비하지만 기획통, 전략통, 재무통 등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성 보유자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결국 돌고 돌아 연간 실적 하나로 모든 게 귀결된다. 지속가능경영은 그러는 사이 대외 표방용이며 사회공헌 활동, 메세나 활동 등과 연관해 운위될 따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르는” 것을 ‘참칭’이라고 한다. 정말 소비자 감동 극대화를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 구현 의지와 노력이 넘쳐나는 데 현재의 사회적 평판은 억울한 노릇이라고 하소연 할 은행이 과연 있을까. 은행 비즈니스는 어쩔 수 없는 구석이 있다며 합리화하는 그 많은 관행들이 모여서 시중의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2~3년 뒤를 내다 보며 이런 상품을 내고 이런 영업을 추진하는 조직을 만들어 봅시다요 서슴 없이 제안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고서 지속가능경영 담론은 지속가능할까?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