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외환보유액 가운데 일부를 스왑계약을 통해 민간은행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통화스왑은 거래 당사자끼리 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하고 일정기간 후 원금을 재교환하는 거래를 말한다. 교환기간 중에는 교환한 통화에 대한 이자를 상대방에게 지급한다.
◇외환보유액 민간에 빌려준다
이번에 검토 중인 통화스왑은 한은이 민간은행의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대여해주는 방식이다. 한은은 리보 이자를 받는 대신 코리보 이자를 지급한다.
민간은행과 통화스왑이 체결되면 한은으로선 통안증권 부담을 한결 덜어낼 수 있다. 그동안 한은은 외환시장 개입으로 풀린 돈을 통안증권으로 흡수해왔다. 이런 식으로 지난 5월까지 통안증권이 159조8000억원어치 쌓였고 작년 한해동안에는 5조6000억원이 이자로 나갔다.
그러나 통화스왑 계약이 체결되면 통안증권을 발행하지 않고도 민간은행이 보유한 원화 여유분을 흡수할 수 있다. 외환시장 개입으로 풀린 돈이 은행을 거쳐 스왑형태로 한은에 예치되기 때문이다.
민간은행으로선 한은으로부터 빌린 돈을 해외유가증권 등에 투자하거나 기업에 장기 시설투자자금으로 대출을 해줘 수익을 올릴 기회를 잡게 된다. 특히 제너널모터스(GM) 사태 등으로 해외차입 여건이 악화됐을 때 외환보유액은 자금조달 비용을 절약하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지난달 국민은행 등 시중은행 10개 은행장들이 한은에 외환보유액 활용방안을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기시 회수 방안 있나
그러나 위기상황에 빠졌을 때 은행에서 소중한 달러를 회수하기 곤란한 문제를 낳는다.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은은 민간에 빌려준 외환보유액을 회수하지 못해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렀다.
이에 대해 박 총재는 "당시에는 시중은행이 마음대로 쓰고 외환위기 때 한은이 다시 달라고 하니 못갚았다"며 "그러나 그때는 예탁이었고 이건(스왑)은 그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외화를 빌려주는 대신 원화를 담보로 잡게되니 회수가 안될 가능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르다. 환율이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급등하는 국가 위기상황이 되면 은행들이 한은에 담보로 잡힌 원화를 달러와 유로, 엔화 등 해외 통화로 바꿔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도 "원화를 담보로 받더라도 여러 은행이 한꺼번에 도산할 정도로 위기상황이 발생한다면 은행에 빌려준 달러를 회수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안전성보다 수익성을 우선하는 민간은행이 신용등급이 낮은 해외채권 등에 투자할 때도 문제가 생긴다. 외환보유액이 국제적인 신용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이는 한국은행이 미국 국채와 정부기관채 등 안전성이 뛰어나고 유동성이 풍부한 외화자산에 투자하는 것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운용규정 등 엄격해야
박 총재의 국회 발언에도 불구하고 한은내에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광주 한은 국제국장은 "지금은 그냥 아이디어 차원일 뿐이라 뭘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활용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다른 한은 관계자도 "민간은행과 통화스왑 계약을 맺는 문제는 아직까지 검토단계"라며 "이와 관련된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의 민간활용방안을 강구하기에 앞서 엄격한 규정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환보유액을 회수하지 못해 발을 동동구르던 지난 97년 사태가 재현될 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국내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은행에 빌려줬던 돈을 회수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한은이 아무런 조건없이 민간은행에 외환보유액을 빌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은의 허가나 동의 없이 위험한 채권을 사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올해 6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왑계약을 시작으로 국민연금과 지금까지 약 16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했다. 통안증권 누증문제 해결과 외환보유액 민간활용에 점차 탄력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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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