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산에 대한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그러나 정작 리스크관리의 최전선에 있는 여신 심사역의 역할과 위상은 미흡하다는 지적의 소리가 높다.
심사역들의 기업평가에 따라 여신 실행여부가 최초로 판단되고 향후 자산 건전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말이다.
한국금융신문은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심사역의 전문성 제고와 위상강화를 향한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은행산업에서 리스크관리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데 반해 여신을 심사하고 이에 대한 대출여부를 판가름하게 하는 심사역들에 대한 투자·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개의 은행이 체계적인 교육 및 양성프로그램 조차 갖추지 않고 있으며 전문직군으로의 인식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
자연히 전문성 또한 쌓기 어렵기 마련이다. 이는 곧 은행 자산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리스크관리 중요성 말로만 강조하는 꼴
양성프로그램 부실해 전문성 기약 못해
인력 상경계 편중돼 기업분석 한계 봉착
◇ 채용 때부터 설 자리 없어 = 현재 심사역으로 뛰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은행에 들어온 뒤 영문도 모른 채 심사역으로 발령이 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장기적인 인력양성 프로그램에 따라 심사역이 된 경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조흥은행 여신지원본부 김재유 부행장은 “심사역이 고도의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금융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며 “이는 심사역 역시도 하나의 순환보직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채용 또한 타 부문과 별반 다를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은행이 채용 때 전문직군을 분리해 뽑는 경우는 드물다. 계약직과 정규직을 분리하거나 최근 들어 기업금융과 가계금융을 나눠 채용하는 정도다. 하나은행만이 최근 들어 따로 채용하고 나섰을 뿐이다.
게다가 외부에서 전문인력을 채용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신한 하나 기업 산업은행 등은 현재 심사인력 중 외부 전문가를 채용한 사례가 없으며 조흥은행만이 딱 한 명 있다.
금융연구원 지동현 선임연구위원은 “전기 전자 등 이공계 전문기술 관련 분야는 경력있는 전문인력을 중간 채용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개별 은행 심사역들의 80∼90%, 혹은 그 이상은 상경계열 출신으로 구성됐다. 기업분석이 재무제표 분석 등의 회계지식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심사역의 대부분이 회계, 경제, 경영 등의 상경계열 출신이다. 따라서 산업 및 기술에 대한 분석은 은행권의 대표적 취약점이 됐다.
A은행 한 심사역은 “기업분석은 과거 정보인 회계정보 분석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이공계 출신 채용을 통해 미래의 기술력 등 전향적인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 체계적 양성프로그램 전무 = 하나은행 심사부 박광진 부장은 “최선의 방법은 채용때 관련자를 뽑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훈련시키는 것”이라면서도 “대부분의 국내 은행들은 이 두가지 모두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C은행 심사팀장은 “은행 내부에 자체 연수프로그램이 있어도 일년에 1~2번 일회성 교육일 뿐 체계화되거나 풀이 구성되어 운영되는 것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체이스맨하튼 등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크레딧 애널리스트 업무를 20년 이상 해왔던 김재유 부행장도 “심사역의 교육, 훈련, 전문성 등은 외국계의 반도 못미칠 정도로 질이 낮다”고 꼬집었다.
심사역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나 교육·연수 등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에 대부분의 심사역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기껏해야 금융연수원의 신용분석 여신심사 여신법률 기업회계 등 기본프로그램과 신용분석사 과정 등 몇 개 프로그램이 유일하다는 것. 이에 따라 은행들은 금융연수원에 이들 교육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금융연수원 강의 경험이 있는 김 부행장은 “연수원에서 심사역 전체 필요 인원의 소수만 양성하고 있어 은행권의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사는 개별 은행이 부실경험으로부터 노하우를 쌓아오며 생기는 고유 문화의 반영”이라며 “이를 표준화된 모델로서 제공하는 연수원에만 맡기는 것은 퀄리티 통제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B은행 고위관계자는 “은행들이 전문가 육성에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심사역에 대한 교육, 투자에 소홀한 건 사실”이라며 “이는 심사역들의 전문성과 직결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