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업무를 지속하자니 등기임원을 선임하는 등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간접투자상품, 외국계 펀드 등의 운용을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
은행들은 임원의 범위를 집행입원까지 확대해 줄 것과 수탁회사의 준법감시의무를 완화해줄 것 등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이런 은행들의 의견은 무시된채 자산운용법 시행령이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현재 법제처 심사가 진행중이며 오는 3~4일 중으로 심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시행령의 윤곽이 이번주 중에 결정될 것으로 전망되며 은행들도 결정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이미 국회서 법제정시 결정된 사항으로 바꾸기는 힘들다”고 일축해 은행들의 건의 수용여부에 부정적임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향후 은행들의 결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신탁 포기냐 지속이냐
“신탁업무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이게 어디 하라고 만든 법인가요”
은행권 관계자의 항변섞인 목소리다. 위원회 신설, 등기임원 선임, 운용전문인력 확보 등에 따른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금융권에선 이번 시행령에서 은행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등기임원이 많은 기업은행과 농협 정도만 신탁업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농협의 경우 은행업무를 담당하는 임원은 신용대표이사 한명 뿐. 따라서 신탁업무만을 위해 별도로 임원을 선임하는 것은 조직의 특성상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 하나은행 등 대부분 은행은 시행령이 원안대로 나오면 신탁업무를 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 은행의 경우 국은투신운용, 농협CA투신운용, 신한BNP 등 자산운용 자회사를 갖고 있어 직접 안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 포기 하면 고객이탈 우려
그러나 이 경우 은행에선 신탁업법에 의한 특정금전신탁만을 취급함에 따라 신탁의 급속한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 신탁 담당자는 “때에 따라서 특정신탁 혹은 불특정신탁이 나을 때가 있는데 특정신탁만 취급하게 되면 고객에게 선택기회를 부여하지 못함에 따라 특정신탁도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신상품을 전혀 내놓지 못함에 따라 고객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계 펀드 운용도 불가능하며 부동산간접투자 시장과 퇴직연금시장에도 참여할 수 없다.
시장 전체적으로 봐도 신탁부문에서 빠져나온 수탁고 중 일부는 투신사에 흘러들어가겠지만 일부는 부동자금화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시장불안요인으로 지적된다.
◇ 수탁 과점체제 예고
수탁은행들은 자산운용법에 따라 자산운용회사에 대해 준법감시의무(Compliance)를 수행해야 하며 손해배상책임까지 지도록 규정돼있다. 반면 수탁 수수료는 0.03 %정도다.
즉 책임과 규제는 많아지는데 반해 수입은 얼마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수탁은행들은 간접투자재산예탁 및 결제시스템 구축 작업에 대한 참여를 보류한 상황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행령이 확정되면 그 결과에 따라 사업철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만일 사업을 포기할 경우 이미 보유하고 있는 수탁재산도 다른 곳으로 이관해야 하는 처지에서 시스템 개통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건의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수탁 규모 상위 3~4개 은행만이 수탁업무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탁규모가 작은 은행에는 자산운용법이 새로운 진입장벽인 셈. 이 경우 과점시장이 형성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 장기적으론 Out-House 검토
은행권 관계자는 “30여개 투신사의 자산을 몇개 수탁회사가 수탁하고 감시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이는 펀드 감시기능 강화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법 제정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올해 당장 신탁업무를 포기하든, 진행하든 장기적으로는 아웃하우스 형태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 내부에서 신탁업무를 하기에는 규제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현재 자회사 형태로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대체로 규모가 작은 편이어서 일부 시중은행들은 일단 인하우스 체제에서 환경변화에 대한 ‘디딤돌’ 역할을 수행토록 한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은행별 임원현황>
*농협은 일반 시중은행에 해당하는 은행업무를
신용대표이사 1명이 총괄하고 있음
<은행별 수탁규모>
(단위 : 억원)
원정희 기자 hggad@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