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나 식사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또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한국에서는 식사를 같이한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뜻에서 가족을 먹을 식자에 입구자, 식구라고도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저와 한 식구입니다. 한 식구를 대하듯 저의 경제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경제는 이미 세계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이제 세계경제에 대한 책임과 기여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입니다.
21세기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은 글로벌 시대에 적응하고 경쟁하는 선진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모든 정책의 기본을 원칙과 신뢰, 자율과 분권, 그리고 사회적 통합이라는 민주적 가치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이 담보되어야 하고, 대화와 타협의 민주적 절차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이 같은 민주적 가치와 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예컨대 군부독재하에서는 민주화 투쟁을 했고, 민주화 시대에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주장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눈앞의 이익 보다는 가치와 원칙을 중시하는 삶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한국은 지금 다양한 정보 인프라가 급속히 발전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지식정보화 사회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선진사회로의 출발입니다.
이제 한국경제의 기본틀도 선진국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 행정규제, 외국인투자, 노사관계등에 대한 지속적인 개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흔히 유기체적 생물에 비유되는 경제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시간, 폭이 적정하게 배분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미 경제개혁의 방향을 자율성, 투명성, 공정성 확보에 두고 장기적, 점진적, 자율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습니다.
경제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여 시장이 예측가능성을 갖도록 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가 살아 숨쉬도록 하겠습니다.
경제의 질서와 원칙이 준수돼야 합니다. 시장지배력이 남용되거나 약자와 이해관계자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어선 안 됩니다. 불공정한 시장에서는 효율도 정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는 이러한 질서와 원칙이 준수되는 사회, 효율과 정의가 공존하는 사회를 뜻합니다.
시장의 공정성,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 나가겠습니다.
지난 5년 동안 회계 투명성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국제적 기준에는 미흡합니다. 형식적인 기준을 기업관행으로 실질적으로 정착시켜야 합니다. 회계감사도 중립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해 놓은 제한된 범위에서의 증권관련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조속히 추진하겠습니다. 집단소송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룰입니다. 우리가 도입하려는 집단소송제는 분식회계, 허위 공시, 주가조작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결코 무리하거나 충격적인 정책이 아닙니다.
시장경제가 진정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지배구조가 중요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사외이사제도 등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연구·보완할 분야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시장의 공정성과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되, 행정규제는 대폭 풀도록 하겠습니다.
경제활동을 위한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은 각 경제주체의 몫입니다. 관치경제의 잔재로 남아있는 규제, 내용이 애매한 법규조항, 근거가 희박한 준조세 등을 과감하게 폐지하겠습니다.
특히 각종 규제가 부패와 비리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규제 전반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해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환경보전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사회적 규제는 더욱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율은 보다 엄격히 해 나가겠습니다. 공정한 법률 집행을 일상화하여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외귀빈 여러분!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투자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노사관계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장 소망스러운 노사관계는 노사가 서로 협력하는 관계입니다. 협력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대화·타협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신뢰는 투명성을 바탕으로 쌓이게 됩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노사관계에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미흡합니다. 노사관계의 조정 경험을 가진 사람도 적습니다.
공정한 규범과 신뢰의 토대 위에 노 사 정 대화를 통해 노사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수준을 높여 나가면 노사관계가 안정될 수 있습니다. 노 사 정 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을 조정하여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로 이끌겠습니다.
저는 노사 협력문제에 대해선 항상 자신있게 말해왔습니다. 과거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파업, 삼성자동차의 르노매각 등 노사분규 현장에서 노사의 목소리를 함께 듣고 중재를 이끌어냈습니다. 노사 양측의 신뢰를 확보하면 중재가 가능하다는 경험을 축적한 바 있습니다.
중재에는 원칙과 신뢰 등 민주적 가치와 절차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노사협력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는 협력적 노사문화를 형성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절감된 사회적 비용을 성장에너지로 집결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세금을 납부하는 외국인투자기업은 외국기업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기업입니다.
현재 외국인투자기업은 우리 총국민소득의 10%를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 주식시장의 36%는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EU는 우리나라 전체 외국인투자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역규모도 30%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그 주역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많은 경제자유지역에서는 행정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하고, 외국투자가들의 불편을 덜어드리겠습니다.
특히 의료와 자녀교육문제에 대한 애로가 크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한해 우선 의료와 교육을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또한 기본적인 노동권은 엄격히 지키되, 노사분규는 일어나지 않도록 특별하게 배려하는 방안도 강구하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로 만들어 나가고자하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북아는 전세계 생산의 1/5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도 한국은 거대경제권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울에서 반경 1,200km 안에 7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 EU의 전체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또한 한국은 고급 두뇌와 생산기술, 세계선두 수준의 정보화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천신공항, 부산항, 광양항등 충분한 물류기반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진전되어 남북횡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등과 연계시키면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고, 한국은 그 시발점이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시베리아의 가스를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공급하는 가스관 건설사업도 추진하겠습니다.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앞으로 청와대안에 이 사업을 전담하는 팀을 구성하여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 낼 것입니다.
이 사업은 남북한 평화협력체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해서도 이 사업은 긴요합니다. 동북아 평화는 주변국 뿐만 아니라 미국, EU 등의 이해에도 직결됩니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침체를 겪고 있는 세계경제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과정에 함께 동참하고 혜택도 같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전쟁도 붕괴도 한반도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북한 핵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하고, 풀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러한 방향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저는 취임 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미국을 방문하여 부시 대통령과 이 문제에 관해 협의할 것입니다. 또한 일본·중국·러시아·EU 등과도 긴밀히 협의하여 핵포기를 설득해 나가겠습니다. 최근 여중생 사망과 관련한 촛불시위에 대하여 적지않은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국과 다수의 EU 국가들은 많은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가 한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한시도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촛불시위를 반미로 오인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촛불시위는 SOFA개정이 주된 요구였으며,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보다 성숙한 한·미관계 발전을 바라는 목소리입니다.
한미 동맹관계는 과거에도 소중했고 현재에도 소중하며, 미래에도 중요할 것이며, 저는 미국이 앞으로도 우리의 우방으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내외 귀빈여러분,
여러분들과 우리 국민들은 한국호(Ship of Korea)라는 한배에 타고 있는 공동운명체입니다.
선장인 저는 고객인 여러분을 편안하게 모셔 다음에도 계속 이 배를 이용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호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저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일했기 때문에 믿어도 괜찮은 선장입니다.
우리 모두 한국호가 자유, 평화, 번영이란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항해할 수 있도록 서로 힘을 합쳐 나갑시다. 그리하여 여러분도 성공하고 한국경제도 발전하는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