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걸출한 ‘장사꾼’인 김정태닫기

최근 메리츠 증권은 은행 합병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국민은행이 급격한 인원감축 대신 점진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단기적인 효율성 개선 대신 직원 융합에 우선한 것, 비슷한 직급 체계, 기업문화가 직원들의 합병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해 별다른 잡음 없이 성공적인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또 국민은행의 합병은 비용절감보다는 시장 지배력 획득을 위한 공격적인 합병으로 지금까지는 금리 결정력 등 지배력 확보 역시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규모의 성장은 타행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고 있다.
통합 직전인 2001년 9월 185조원의 총자산은 2002년 9월말 현재 204조원을 넘어섰다. 총수신 역시 2002년 10월말 140조원을 돌파하면서 현재 2위 은행인 우리금융지주회사(총자산 94조원)와 3위인 신한금융지주회사(총자산 65조원)를 합쳐도 국민은행 규모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 만큼 앞서가고 있다.
반면 아직까지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다.
국민은행은 2002년 9월말 시중은행중 최대 규모인 1조512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지만 통합 이전인 2001년 9월말에는 1조627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었다.
게다가 지난해 하반기 가계대출과 카드시장 악화로 4/4분기 순이익 규모는 2001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다.
또 국민은행은 2001년 9월말부터 2002년 9월말까지 가계대출 증가율 26.4%를 기록, 우리은행(124.4%), 조흥은행(94.1%)등에 크게 뒤진 것은 물론 은행권 평균인 47.3%에도 미달했다.
타행들의 가계대출 비중이 국민은행에 비해 크게 낮았다는 점과 국민은행이 통합작업에 분주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주택은행의 모기지론과 국민은행의 신용대출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가계대출 시장을 독점하리라는 당초 예상은 일단 빗나간 셈이다.
일산 총파업 2년의 산고(産苦)
국민은행 직원들은 지난 2000년 일산벌에 모여 2만여 구 국민 구 주택은행 직원들이 한목소리로 합병반대를 외쳤던 기억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며 또 가장 아쉬운 기억으로 꼽는다.
2000년 연말 금융계를 뒤흔들었던 국민 주택 총파업 당시 일산벌에 모였던 2만여명 은행원들은 1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 동안을 10년만에 찾아온 혹한속에서 합동 성탄미사를 드리며 국민 주택은행간의 합병 저지를 내걸고 농성을 벌였다.
당시 농성장 사수대 대장에서 지금은 구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병환닫기

이같이 2000년말 총파업은 국민은행 직원들에게는 금융권 최초 최대의 전면 총파업을 이뤄냈다는 잊지 못할 자부심이자 며칠만 더 파업이 진행됐으면 합병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반면 역설적으로 국민 주택 직원들은 총파업 당시 함께 고생했던 기억이 합병후 ‘화학적 통합’을 이루는데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합병이 추진된다는 소식이후 서로 상대은행을 비하하고 폄하하는 험담이 난무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지만 총파업 당시 함께 고생하면서 그런 악감정들이 많이 사라졌다”
총파업에 참여했던 한 국민은행 직원의 회고담이다.
피해의식 상실감은 남아 있어
합병 1년이 경과했지만 국민은행 직원들은 아직도 합병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
구 주택은행 출신 직원들은 주택은행 간판을 내리고 국민은행 간판아래서 근무하는데 대한 상실감을 토로하고 있다.
“아들 녀석이 아빠는 주택은행이 망해서 국민은행으로 간거냐는 질문에 할말을 잃었었다”는 한 직원의 말은 구 주택은행 직원들의 정서의 일말을 대변해 준다.
또 많은 고객들은 주택은행이 문을 닫고 국민은행에 흡수합병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 일선 영업점 근무 직원들의 설명이다.
반면 구 국민은행 출신 직원들은 주요 요직을 구 주택은행 출신들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는 막연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은행측은 실제 조직 개편작업에서 주택은행쪽의 인적 편중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지난해말에 단행된 3917명의 대규모 승진인사에서도 인적 비중이 높은 구 국민은행 출신 직원들의 승진규모가 단연 월등했다는 것.
인사업무를 담당했던 한 고위 임원은 “김정태 행장은 절대 팔이 안으로 굽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디 출신이냐가 아닌 누가 능력이 있느냐가 유일한 인사 잣대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은행이 살아야 직원도 있는 것
합병추진 당시 가장 강경한 합병반대론자중 하나였던 구 국민은행 김병환 노조위원장은 “합병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며 “은행이 살아야 직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김정태 행장이나 임원들보다 노조 간부들이나 직원들이 은행생활을 더 오래 할 수 밖에 없다. 발목을 잡는 노조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 국민은행이라는 거대은행이 성공하기 위한 감시자와 조언자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일선 영업점 직원들의 정서 역시 더 이상 반목이나 질시는 성장의 걸림돌일 뿐이라는 것.
“대형은행이라는 게 좋은 점이 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 때문인지 이전보다 고객들이 많이 몰린다”
국민은행 강남지역 지점에서 근무하는 K과장의 설명이다.
또 그는 “1채널이니 2채널이니 하는 건 잊고 지낸다. 통합된 후 업무부담은 정말 많이 늘었지만 모두 같이 고생하는 동료들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주택 출신이니 국민 출신이니 나누는 것이 무의미해졌다”고 덧붙였다.
(사진설명 : 2000년 국민 주택 총파업은 역설적으로 양 은행 직원간 화학적 통합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