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뭣하러 하나. 1년이면 나가야 하는데”
국민은행 임원인사 직전 한 팀장(옛 부장급) 인사가 한 발언이다. 이런 생각에 아예 부행장 승진 계획서도 내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내심 부행장 한번 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IMF 외환위기 이후 변화된 은행임원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IMF 이전 은행 임원은 대단한 자리로 은행의 ‘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은행임원 되기가 쉽지 않고 많은 공적이 필요한데도 이제는 임원들이 위 아래 눈치나 보는 자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많다.
또한 IMF 이후 지배구조 개혁의 일환으로 이사회를 강화하고, 사외이사 선임등을 강제화했지만 이사회가 아직도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주주와 직원을 대표한 ‘전문 대리인’에 불과한 행장과 집행임원들이 수립한 계획을 반대하는 일도 별로 없고, 괜히 튀어봐야 1년에 몇 번만 회의참석하고 수천만에 이르는 수당과 명예 직함을 받는 이사회 멤버들로서는 한계가 여전하다.
게다가 외국자본이 1대 또는 2대 주주인 경우가 많아 행장이 주요 사업계획을 결정할 때 대표로 파견된 임원이나 사외이사와 협의하면 그만이다.
이들간에 합의가 끝났다면 더 이상 문제삼을 이유도 없어진다는 게 사외이사들이 ‘얼굴마담‘으로 전락하는 주요 요인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행장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무소불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대주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더 이상 신경쓸 게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주총 의결을 받아야 하는 등기 이사도 대폭 줄였고 임원들도 대부분 1년 계약직이므로 아래 눈치 볼 것도 없다.
이에 따라 사업을 꾸려 나가는 데 행장의 결정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임원들은 행장 눈치보기 바쁘다. 임기 중간에 행장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장이 훌륭한 경영자라면 이러한 우려는 작아지지만 은행의 덩치가 점점 커져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만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예로 18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은행의 외화자산은 10조원에 달해 군소 지방은행 규모보다 크다. 지역 본부장들이 관할하는 총자산도 웬만한 시중은행 덩치와 맞먹는다.
이에 따라 은행장이 올바른 인사 및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견제와 조정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사회등 제도적인 장치는 어느 정도 갖췄지만 아직 내실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은행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갖춘 뉴브리지 캐피탈의 제일은행은 좋은 비교거리가 된다. 분기마다 국내외에서 정기 이사회를 개최하는 제일은행 임원들은 이사회 준비가 한마디로 곤욕이다. 자료의 충실도가 높아야 함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이사회에서 직접 보고해야 한다. 이사들이 한가지 한가지 따지고 들때 적절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으면 물러날 각오를 해야 한다.
행장도 주주와 이사회를 대신하는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호리에 전행장은 부임하자 마자 종합기획부장 자리를 없애고 대신 그 역할을 떠맡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IMF이후 우리은행들이 사외이사제 도입등 외형상 선진국형 경영구조를 갖추기는 했으나 제도보다 관행이 우선하는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특수성등으로 이같은 제도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리스크가 증대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은행팀>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