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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잡학사전] ‘신’이라 불린 골프 천재, 보비 존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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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02 23:26

골프 역사에 천재가 있었을까? ‘천재는 1 퍼센트의 재능과 99퍼센트의 땀으로 이루어진다.’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벤 호건과 같은 골프 영웅들은 모두 99%의 땀으로 만들어진 천재들이었다.

그들은 연습장에서 흘린 땀으로 최고의 골퍼가 되었다.

그런데 진정한 천재라 하면 99퍼센트의 재능과 1퍼센트의 노력으로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연습을 하지 않아도 타고난 재능으로 한 세대의 최고가 된 골프 천재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보비 존스(1902~1971)이다.

스윙 레슨도 없이 자기만의 스윙을 만든 선수

변호사 로버트 P. 존스의 아들 바비 존스는 어릴 적 딱딱한 음식을 먹지도 못하는 병약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부친의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5번 우드가 그의 첫 번째 클럽이었다.

존스는 친구와 그걸로 이스트레이크까지 울퉁불퉁한 길을 볼을 치면서 왔다갔다하는 놀이를 했다. 그리고 5살 때 애틀랜타 근교 이스트레이크CC에서 골프를 접하면서 인생이 바뀐다.

당시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골프를 사랑하는 주말골퍼였고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골프를 가르쳤다. 스코트랜드에서 이민 온 헤드프로 스튜어트 메이든이 존스의 선생이었는데 그는 스윙 이론이나 테크닉을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립 잡는 방법을 가르친 후 공을 있는 힘껏 강하게 치라고만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존스는 선생이나 클럽 고수들의 스윙을 흉내 내어 따라 하면서 자기의 스윙을 만들어 갔다.

무엇보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9살에 16살의 경쟁자를 제치고 애틀랜타 주니어 타이틀을 차지했고, 14살에는 이스트레이크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해 조지아주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다.

‘딕시랜드(미국 남부)에서 온 뉴 키드’는 금방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골프와 공부, 모두를 성공적으로 해낸 천재

하지만 존스의 아버지는 골프보다 학교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골프가 치고 싶으면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빨리 끝내야 했다.

6세 때 동네 골프시합에 나간 이후 28세인 1930년 아마추어 선수로 은퇴할 때까지 골프 때문에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존스는 조지아텍 공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애틀란타 최고 명문대학인 에모리 대학의 법대에 들어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수재였다.

명문 대학을 세 곳이나 졸업한 보비 존스가 골프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방학뿐이었다.

존스는 1923년 21세 때 US 오픈에서 우승한 후 첫 번째 메이저 우승컵을 받아 아버지에게 선물했다.

이후 존스는 US 오픈 4회, 디 오픈 3회, US 아마추어 5회, 브리티시 아마추어 1회 우승하여 프로 메이저 7승, 아마추어 메이저 6승을 달성했다.

1930년 한 해에 디 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 US 오픈, US 아마추어를 모두 석권하는 당시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을 때도 그는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랜드 슬램 이후 28살이 되던 해 깜짝 은퇴를 선언했다.

남들보다 노력은 덜한 것 같지만, 놀라울 만한 재능으로 ‘골프 천재’라 불린 존스 선수. 평생을 아마추어 선수로 남긴 했으나 이후 그는 고향 인근 오거스타에 오거스타내셔널을 뉴욕의 금융인 출신인 클리포드 로버츠와 함께 설립했다.

코스 설계는 당시 사이프러스포인트를 만들었던 알리스터 매킨지에게 의뢰했다. 좋은 코스를 연 뒤에 자신이 알던 친구들을 초청한 대회를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오거스타내셔널 인비테이셔널’, 즉 지금의 마스터스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세영 FromGolf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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