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봉 은행법학회장은 한국금융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융기본권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금융기본권을 단순히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이나 채무조정 강화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보는 금융기본권은 금융제도 안에 누적된 구조적 불균형을 다시 점검하고, 금융 접근성 차이가 소득·자산 양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바로잡기 위한 법·경제적 과제에 가깝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지난해 6월 출범 이후 생산적 금융, 포용금융, 공정금융을 핵심 금융정책 방향으로 제시한 가운데 금융기본권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생산적 금융이 자금을 성장산업과 혁신기업으로 흐르게 하는 문제라면, 포용금융은 금융 접근성의 격차를 줄이는 문제다. 금융기본권은 이 두 흐름을 권리와 제도의 언어로 재정리하는 작업이다.
김 학회장은 “우리가 무심코 경험하는 많은 제도를 금융기본권의 관점에서 재검토함으로써 불필요하고 잘못된 불균형을 시정하고 합리화하는 것, 이것이 금융기본권을 통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는 사회의 미래상”이라고 강조했다.
학계부터 정부·공공 부문 활동까지···금융법학 전문가
김 학회장은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자 제12대 은행법학회장이다. 2024년부터 2025년 말까지 은행법학회장으로 임기를 마친 뒤 올해 1월부터 2027년 말까지 2년 임기의 연임을 시작했다.국내 대표적인 금융경제학자이자 금융법학자로 꼽히는 그는 은행법학회장 외에도 금융법학회 이사, 금융국제화포럼 회장 등을 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행하는 ‘Journal of Financial Literacy and Wellbeing’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부·공공 부문 활동도 폭넓다. 김 회장은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역임했고, 금융위원회 금융교육협의회 자문위원,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정책자문단, 대법원 양형연구회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은행법학회는 2004년 11월 출범한 은행법연구회를 모태로 한다. 이후 2008년 3월 은행법학회로 전환돼 현재에 이르렀다. 회원은 법학자, 변호사, 경제학자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가상자산법 입법방향, 금융의 사회적 책임과 내부통제, 인구구조와 기후변화에 대한 금융법의 대응, 생산적 금융·포용금융·공정금융의 법·경제적 과제, 금융기본권 등으로 논의가 넓어졌다.
이는 단순히 은행법 조문을 해석하는 학회를 넘어, 금융산업의 공공성과 성장전략, 금융소비자 보호,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 다루는 정책 연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기본권은 시혜 아닌 권리
금융기본권은 아직 법률상 명확히 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금융서비스 접근을 단순한 시장 거래가 아니라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문제의식이다.김자봉 학회장은 첫 임기 때부터 헌법학회, 행정법학회, 민사법학회 등과 공동학술대회를 통해 금융기본권에 대해 논의하고 공론화해왔다. 지난 17일에도 은행법학회는 금융기본권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김 학회장은 금융기본권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면서, 그 뿌리를 법정 이자제한에서 찾았다.
그는 “금융기본권의 대표적인 정책수단은 법정 이자제한”이라며 “역사상 최초의 법정이자한도는 BC 18세기 함무라비법전”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기본권 논의가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금융거래의 한계를 설정해온 오랜 제도적 전통과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금융기본권이 단순히 저신용자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자는 주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 학회장의 논리는 금융 접근성의 차이가 결국 성장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 차이가 누적되면서 계층 간 자산 격차를 확대한다는 데 있다.
금융이 발전하더라도 중산층과 서민의 금융접근성이 제한되면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금융기본권은 금융발전의 수혜가 일부 고신용자와 대기업, 금융기관에만 집중되는 구조를 다시 점검하자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해외 사례로는 EU와 영국의 '기본계좌'가 있다.
기본계좌는 최근 EU와 영국 등에서 도입된 대표적인 금융기본권 수단으로, 노숙자·이주민·신용불량자·도산절차 경험 기업 등에도 압류되지 않는 최소한 지급결제서비스 이용권리다.
현대사회에서 계좌와 지급결제서비스는 사실상 경제생활의 출발점이다. 임금을 받고, 공과금을 납부하고, 복지급여를 수령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모든 과정이 금융계좌와 결제망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기본계좌는 복지정책 이전의 사회 인프라에 가깝다. 금융거래 이력이 좋지 않거나 채무 문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급결제망에서 배제되면 경제적 재기 자체가 어려워진다.
김 학회장이 금융기본권을 헌법적 가치와 연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 접근이 차단되면 단순히 대출을 못 받는 수준을 넘어, 노동·소비·주거·복지 등 생활 전반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도확률만 보는 이자율 구조, 제도 실패 가능성”
금융기본권 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도덕적 해이와 성실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이다.장기연체자 채무조정, 이자 감면, 원금 탕감, 저신용자 지원 등이 확대될 경우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차주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은행권 역시 포용금융과 금융기본권이 과도하게 추진될 경우 리스크 관리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본다.
김 학회장은 이 지점에서 금융기본권을 ‘혜택’이 아니라 ‘제도 교정’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기본권은 잘못된 제도적 편향을 시정함으로써 합리적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지 상대적 박탈감과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핵심은 위험을 바라보는 기준이다.
현재 금융시장에서 이자율은 대체로 개별 차주의 부도확률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저신용 개인이나 중소기업은 부도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높은 금리를 부담한다. 반면 고신용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은 부도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한다.
그러나 여기에 '시스템 위험'이라는 또 다른 기준이 빠져 있다는 것이 학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저신용 개인과 중소기업 등은 부도확률은 높지만 이들의 개별적 파산이 시스템 위험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며 “반면 고신용 대기업과 금융기관 등은 부도확률은 낮지만 파급력이 커서 시스템위험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도 재벌대기업 및 이들과 연계된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모든 국민이 부도의 화마에 휩쓸린 사건”이라고 짚었다.
저신용자는 개별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높은 가격을 부담하지만, 대형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 위험은 사회 전체가 떠안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러한 이자율 구조가 기본적으로 바젤 체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바젤 규제가 모든 사회적 위험과 공공성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닌 만큼, 금융기본권의 관점에서 이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기본권 논의가 단순한 서민금융 확대가 아니라 금융규제 체계의 위험 인식 자체를 재검토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포용금융은 성장정책···“금융은 성장의 결과 아닌 원인”
김 학회장은 포용금융도 복지나 시혜가 아니라 성장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봤다.그는 “포용금융은 상위 10%가 전체 순자산의 60% 수준을 보유하는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주체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용금융은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개선에 동시에 기여하는 효과를 가진다”며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듯이 포용금융은 모두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비전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포용금융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금융이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원인”이라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금융은 경제가 성장한 뒤 축적된 자금이 배분되는 후행적 영역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누가 얼마나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지, 즉 금융 접근성 자체가 경제의 성장 경로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는 “접근 가능한 금융의 양과 가격조건 모든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면 상세하게 살펴보고 개선함으로써 모두의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정부의 법제화 노력도 필요하고, 기업 간·기업과 근로자 간 성과공유 등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voice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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