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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정책해설–정부는 왜?] 일본의 칼

김상철

기사입력 : 2019-07-17 18:54

[김상철의 정책해설–정부는 왜?] 일본의 칼
G20 정상회의는 이를테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의 정상 20명이 참석하는 회의다. 보통 1년에 한 번 열린다. 2018년 G20 정상회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1월30일과 12월1일 이틀 동안 열렸다. 내년 G20 정상회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11월21일과 22일 이틀 동안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올해 정상회의는 일본 오사카에서 6월28일과 29일 열렸다. 해마다 보통 연말쯤 해서 열리던 회의가 올해만은 6월에 열렸다. 개최국인 일본이 강력히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7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왼편에 중국 국가주석 오른편에 미국 대통령을 세운 채, 정상들 한 가운데 서있는 장면을 연출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G20 효과를 기대했을 아베 총리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더 인상적인 장면이 한국의 DMZ에서 연출됐던 것이다. 기껏 애써서 6월로 정상회의 일정을 잡은 게 헛수고가 되는 상황이었다. 뭔가 획기적인 이벤트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놓았다. 피해자 1인당 1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리고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를 허용했다. 일본 아베 총리가 구체적인 대응 조치 검토를 지시한건 대법원 판결 한 달 뒤였다. 일본의 부총리는 아예 구체적으로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 정지나 비자 발급 정지를 포함한 여러 보복 조치가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갈등이 고조되면서 걱정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대법원 판결이후 대책반을 총리 산하에 만들었지만 해법을 만들지 못했다. 결국 국무총리와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섰다. 각료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대통령과 편하게 속내를 얘기할 수 있는 두 사람은 따로 대통령과 자리를 만들어 문제를 풀기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얘기에 대통령은 법률가로서의 입장을 밝혔다. 행정부 입장이 사법부 입장과 다를 수 없다는 것, 대법원의 판결로 결정된 일에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무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일본의 보복에 대응해 준비해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행 방안을 만든 적은 없다. 설마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1965년 청구권 협정에 기초한 외교협의와 중재위 설치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중재위 설치와 관련된 답변 시한인 6월18일을 하루 넘긴 19일,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사실은 발표 며칠 전, 일본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했지만 일본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방안이었다. 일본 정부가 이미 거절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정부는 이를 발표했고, 이미 일본 정부가 거절한 방안을 한국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모습에 일본은 격앙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최종안은 경제산업성이 5월 중에 마무리해놓은 상태였고 아베총리는 적절한 발표 시기만 찾고 있던 중이었다. 외교적 교섭을 해야 하는 외무성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라는 이름도 생소한 품목이다. 수입 규모는 4억 달러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과 디스플레이 산업에는 필수적인 소재라고 한다. 정부는 일본이 G20 정상회의를 마치자마자 규제 조치를 내놓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은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규제조치 발표가 나온 뒤 정부는 당황했다.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해명을 하기 위해 청와대부터 직접 나섰다. 부총리는 라디오로, 청와대 정책실장은 TV로 달려갔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부가 제재 품목 예상 리스트를 작성해 둔 사실을 공개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업계에서 예상해 청와대에 전달한 리스트다. 일본은 다음달 1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발표한다고 한다. 백색국가 제도는 일본이 우방국가에 대해 개별 품목 수출 허가를 면제해 주는 것으로,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빠지면 일본은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해 수출 규제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이제 경제 분쟁으로 확대됐다. 대통령은 피해가 정말 발생한다면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어떤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보복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보복이든 우리 피해가 더 크다. 정부는 일단 부품 소재 산업을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올바른 방향이긴 하지만 당장의 대응책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 제소,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WTO 위반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미국이 중재에 나선다면 일이 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미국이 나서서 누구 편을 들 수도 없다.

당분간 정상 차원에서의 타협도 힘들다. 우리가 먼저 만나자고 해도 일본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G20 회의 때도 우리는 만나자고 했지만 일본이 거절했다.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 같은 것도 없다. 청와대는 일본의 조치에 대해 애초 보도 자료에서는 정치적 보복이라고 규정했다가 보복적 성격의 조치로 수정했다. 반도체는 2018년 1267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전체 수출의 20.9%를 차지한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이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前 인하대 겸임교수/前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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