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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의 단상] 이창용의 남은 시간, 변명으로 낭비할 건가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1-31 05:00 최종수정 : 2026-05-18 20:41

기대 인플레이션과 체감 물가 모두 놓친 통화정책
시장이 원하는 건 금통위 숫자 아닌 ‘신뢰의 시그널’
80일의 카운트다운, 존재감 되살릴 마지막 '결기'를

[김의석의 단상] 이창용의 남은 시간, 변명으로 낭비할 건가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임기 종료를 앞둔 이창용닫기이창용기사 모아보기 한국은행 총재의 행보가 눈에 띄게 잦아졌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과의 회의, 통계 지표 점검, 기자간담회까지 숨 가쁜 일정이 이어진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금융시장은 이미 그의 퇴임을 기정사실로 두고 ‘이창용 이후’를 계산하고 있다. 두 달 남짓 시간이 남았지만, 총재의 정책 영향력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시선은 싸늘하지만, 공적 성과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2022년 고물가 국면에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 확산을 막았고, 고금리·고환율·부동산 조정이 맞물린 복합 위기 속에서도 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급격한 충격 대신 점진적 긴축을 택한 판단은 당시로서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잠재성장률 하락과 구조개혁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내부 통계 체계를 정비한 점도 긍정적이다. 단순한 성적표로만 보면 ‘실패’라는 평가는 가혹하다.

문제는 그의 언어에서 더 이상 정책 방향이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금융시장은 결과보다 ‘신호’에 민감하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단순히 지표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기대를 조정하고 신뢰의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자회견이 끝나도 금리선물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총재의 발언은 미래를 향한 예측이 아니라, 지나간 일에 대한 사후 해설로 들리기 때문이다.

‘쿨한 국민’ 발언은 이러한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산 가격 정체와 실질소득 제약 속에서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MZ세대의 절박함을 간과한 인식이었다. 이 한마디로 시장은 총재의 판단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후 총재의 언어는 정책적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개인의 ‘변명’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창용 총재는 임기 내내 ‘시장 방관자’라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금융통화위원회도 다르지 않다. 시장이 금리 인하 신호를 기대했던 지난해 하반기, 한은은 “물가·성장·가계부채·환율 모두 중요하다”는 설명만 반복했다.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흐릿했다. 정교한 회의록에도 불구하고 정책 방향은 불투명했고, 금통위는 ‘판단 기구’가 아니라 ‘설명 기구’로 비쳐졌다.

중앙은행의 신뢰는 정밀한 계산보다 일관된 태도에서 나온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은 ‘신중한 균형’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방향 없는 신중함은 전달되지 않는 메시지다.

사상 첫 빅스텝부터 디지털 통화 주권까지, 이창용 총재의 주요 결단과 정책적 여정을 담은 타임라인.

사상 첫 빅스텝부터 디지털 통화 주권까지, 이창용 총재의 주요 결단과 정책적 여정을 담은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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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은 그 혼선의 단면이다. 외환시장 개입은 이어지지만 명확한 기준은 보이지 않는다. 달러 유출이 계속돼도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이 ‘기준선’처럼 굳어 있다. 시장은 이를 정책 의지의 척도로 해석한다. 개입의 명분이 불투명할수록 시장은 당국의 한계를 시험한다. 환율 방어는 외환보유액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고환율은 곧 체감 물가로 이어진다. 수입 원자재, 식료품, 에너지 가격 상승은 가계 부담을 키우지만, 한국은행은 여전히 ‘달러 강세라는 글로벌 요인’ 같은 통계적 해석에 머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단이 아니라 책임이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결국 하나다. 한국은행은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한국은행은 독립성과 함께 정책 책임성을 부여받은 기관이다. 정치로부터 자유롭되, 시장에 대해서는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보다 신중하되, 민간보다 늦지 않은” 속도감이 중앙은행 리더십의 핵심인데, 지금의 한은은 그 균형을 잃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금리 조정이 아니다. 통화정책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물가 안정과 환율 안정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어떤 조건에서 단호하게 개입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통화정책의 본질은 예측이 아니라 신뢰 유지에 있다. 시장은 정답보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보고 움직인다.

이창용 총재의 임기는 4월 20일 끝난다. 남은 시간은 짧지만, 반전의 기회는 있다. ‘이후’를 준비하는 유일한 길은 지금이라도 무너진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권위는 정교한 회의록이 아니라, 단호하고 분명한 결단에서 나온다.

통화정책은 화려한 설명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신뢰는 말이 아닌 반복된 행동의 산물이다. 한국은행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은 다시 총재의 발언을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남은 80일은 정책이 아니라 권위가 소진되는 허무한 시간이 될 뿐이다.

금융시장의 시계는 언제나 정책보다 빠르다. 이창용의 마지막 숙제는 사후적 해설을 넘어 선제적인 ‘선택의 의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결단할 의지가 있다면, 그 시간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건 논리적 소명이 아니라, 시장의 기대를 선제적으로 견인할 정책 시그널이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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