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결혼·가난한 집주인
정부는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젊은층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한겨울이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에 맞춰 결혼을 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평균 결혼비용이 남자는 8078만 원, 여자는 2936만 원이라고 한다. 2009년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신혼부부 38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1억 7542만 원으로 나왔다. 1억 1000만 원이든 1억 7000만 원이든 직장생활이 길지 않은 예비 신혼부부가 자력으로 마련하기에는 큰돈이다.
결국 결혼을 하려면 누군가의 힘을 빌리거나 어느 정도 돈이 모일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방법 밖에 없다. 부모가 지원해 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엔 대출의 힘이라도 빌려야 한다. 허니문푸어(honey poor), 신혼의 단꿈이 빚 위에서 영글어가는 것이다.
결혼하고 살다보면 집에 대한 욕심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과거 대출 끌어다가 일단 사기만 하면 집값이 올랐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꾸준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이제는 그 욕심이 부메랑이 돼 대출이자 갚느라 생활고를 겪고 있다. 하우스푸어(house poor)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1070만 5000가구 중 108만 4000가구, 즉 열 집에 한 집꼴로 하우스푸어라고 분석했다. 하우스푸어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246만 원인데 그중에서 102만 원을 대출원리금으로 내고 있다고 한다.
◇ 자녀교육 ‘올인’하다가 빚지고
경쟁적인 사교육비 지출로 빚을 지는 가계도 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매년 자녀 한 명을 양육하고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조사하고 있는데, 2010년에는 이 비용이 총 2억 7514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이사하는 수요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물론 교육열기가 높은 지역은 주거비용이 비싸다. 이른바 ‘8학군’으로 불리는 강남구의 평균 전세가격은 1224만 원으로 금천구와 도봉구의 2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집값만 비싸겠는가. 유명 학원에 보내려면 부모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으로도 모자라 또 빚을 내 에듀푸어(edu poor)가 돼야 한다. 맹모삼천지교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결혼하고 집을 사고 자녀를 가르치고 졸업시켜 짝을 맺어주고 나면 부모에게는 빚만 남아 실버푸어(silver poor)로 전락해 본인들의 안락한 노후를 꿈꾸기는 어렵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5%에 달해 OECD 평균 13.3%를 3배 이상 웃돌 정도로 심각하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가 주택정책과 교육정책과 노후복지정책 등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어느 천 년에 될지 알 수 없는 일, 각자 ‘푸어’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무리한 대출을 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김창경 기자 ck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