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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돈 모이는 홍콩, 돈 불리는 싱가포르…한국은?

김희일 기자

heuyil@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24 00:00

화교 네트워크가 만든 아시아의 돈길
연결과 심리의 생태계…갈 길 먼 한국

▲ 김희일 증권부장

▲ 김희일 증권부장

[한국금융신문 김희일 기자] 코스피가 한때 8000이라는 상징적 고지를 밟았다. 증권사 창구와 ETF 시장으로 뭉칫돈이 몰리고 개인 투자자의 자본시장 참여도 일상이 됐다.

그러나 축포를 터뜨리기 전에 물어볼 것이 있다. “그래서 한국 자본시장은 무엇을 가장 잘하는가?”

주가지수가 9000, 1만을 찍는 것과 자본시장이 국가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숫자가 커졌다고 시장의 근육까지 단단해진 것은 아니다.

아시아를 보면 더욱 선명하다. 홍콩은 돈을 모으고, 싱가포르는 돈을 관리하고, 대만은 돈을 산업으로 연결했다.

세 곳의 모델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돈과 사람, 정보와 기업을 국경 너머로 연결하는 네트워크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산업 기반이다. 화교 상인들이 오랜 세월 홍콩과 동남아, 대만을 잇는 상업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그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화교라는 혈연이나 민족 자체가 아니라 자본이 필요한 곳으로 움직이는 ‘돈길’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의 성공을 화교 네트워크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금융제도와 법치, 산업정책, 개방성, 기업가정신이 함께 작동했다. 다만 국경을 넘어 돈과 사람, 정보와 기업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중요한 자산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홍콩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배후 시장과 세계의 자본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성장했다. 세계의 돈이 중국 기업과 만나고, 중국 기업은 홍콩을 통해 해외자본을 조달했다.

싱가포르는 돈을 관리하는 데 강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패밀리오피스, 사모펀드와 장기자금이 모이고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금융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금융허브의 경쟁력은 돈을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돈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대만은 돈을 산업의 성장으로 연결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제조업이 성장하고,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기술개발과 생산시설 확대로 다시 투입했다. 기업의 성장은 협력업체와 인재, 금융회사, 투자자, 글로벌 자본을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로 확장됐다. 돈이 산업의 피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세계와 연결된 기업, 막대한 금융자산과 연기금·퇴직연금이라는 장기자금, 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 등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산업 기반을 모두 갖췄다. 그런데 돈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국민이 모은 자금은 부동산과 해외 주식으로 향하고, 국내 자본시장에서 기업의 성장자금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투자는 빠르게 늘지만 해외 장기자금이 한국 기업에 오래 머물 길은 상대적으로 좁다.

한국에는 돈이 많다. 그런데 돈길은 좁다. 이것이 코스피 8000 이후 한국 자본시장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다.

거래가 늘었다고 자본시장의 경쟁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경쟁력은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이 성장할 때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그 성장의 과실이 다시 국민의 자산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그것이 자본시장의 본래 역할이다.

한국에는 그 선순환을 만들 재료가 충분하다. 문제는 금융자산과 장기자금, 산업 경쟁력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는 단순한 거래 중개를 넘어 기업의 성장 과정에 자본을 공급하는 투자은행으로 진화해야 한다. 운용사는 상품 판매를 넘어 국민의 장기자산을 키워야 한다. 연기금과 퇴직연금도 미래 산업과 기업의 성장에 투자하는 장기자본으로 역할을 넓힐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정책보다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성장자금을 조달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해외자본이 한국 기업에 장기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

자본은 애국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신뢰와 수익률,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따라 움직인다. 국내 자본의 해외투자를 막을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간 한국 자본과 세계의 자본이 다시 한국 기업과 연결될 길을 만들어야 한다.

코스피 8000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험대다. 홍콩은 세계의 돈을 모았다. 싱가포르는 그 돈을 관리했다. 대만은 그 돈을 산업의 피로 바꿨다. 한국도 이제 선택해야 한다. 8000이라는 숫자를 자랑하는 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기업에는 성장의 자금을 공급하고, 국민에게는 자산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며, 해외자본에는 오래 머물 이유를 만들어주는 시장으로 바꿀 것인가.

옛말에 거안사위(居安思危)라고 했다.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자본시장이 무엇을 더 갖출지 고민해야 할 때다.

코스피 8000은 전광판의 숫자일 뿐이다. 진짜 경쟁력은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있다. 돈이 기업으로 흘러가 성장의 자본이 되고, 그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와 자산이 되며, 다시 세계의 자본을 불러들이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다. 돈이 제대로 흐르는 길이다.

이제 한국도 돈의 크기가 아니라 돈길의 힘을 증명해야 한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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