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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는 끝났다…2026년, 금투 CEO를 가르는 건 ‘판단의 무게’”

김희일 기자

heuyil@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1-20 17:42

AI·신뢰·모험자본 사이에서 ‘결정의 무게’를 견디다

2026년은 선언의 해가 아니다. 고뇌 끝에 내린 CEO의 선택이 실적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신뢰로 이어져 생존을 가르는 해가 될 것이다. 여의도증권가 정경. 사진=한국금융신문DB

2026년은 선언의 해가 아니다. 고뇌 끝에 내린 CEO의 선택이 실적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신뢰로 이어져 생존을 가르는 해가 될 것이다. 여의도증권가 정경. 사진=한국금융신문DB

[한국금융신문 김희일 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에도 증권·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책상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쌓여 있다. 그러나 올해 이 숫자들은 목표라기보다 CEO의 선택이 남긴 흔적에 가깝다. 얼마를 벌 것인가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금융투자업계는 빠르게 달려왔다. AI 전환, 디지털 인프라 구축, 대체투자 확대, 모험자본 공급까지. ‘해야 할 일’은 명확했고 방향도 분명했다. 하지만 2026년은 다르다. 구호의 시기에서 판단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AI는 이제 기본값…고민은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

2026년을 맞은 CEO들에게 AI는 더 이상 혁신의 상징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깔렸고, 이미 쓰이고 있으며, 이제는 성과를 요구받는 인프라가 됐다.

트레이딩 자동화, 리서치 요약, PB 상담 챗봇, 로보어드바이저 운용까지 AI는 증권·자산운용 업무 전반에 스며들었다.

문제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의사 결정의 경계다.

AI가 제안한 포트폴리오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때 인간의 개입은 언제 작동해야 하는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책임의 최종 귀속은 누구인지. 이 모든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CEO의 판단 영역이 되고 있다.

실제 일부 금융사에서는 AI가 제시한 리밸런싱 시점과 실제 집행 시점 사이의 판단 차이가 성과를 갈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증권사 대표는 “AI는 속도를 주지만, 결정의 무게를 줄여주지는 않는다”며 “자동화가 확대될수록 CEO의 책임은 오히려 더 커진다”고 말했다. 자동화는 늘었지만, 책임은 분산되지 않았다.

“수익보다 무서운 건 신뢰의 이탈”

2026년 신년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는 ‘고객’과 ‘신뢰’였다. 이는 미사여구가 아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최근 금융소비자 행동 분석을 보면, 고객 이탈의 결정적 계기는 수익률 자체보다 예상치 못한 손실,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는 인식,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부족으로 나타난다.

특히 모바일 기반 거래 환경에서는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는 고객이 늘고 있다. CEO들이 내부통제와 소비자 보호를 ‘규제 대응’이 아닌 경영의 핵심 축으로 끌어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자산운용사 CEO는 “2026년의 경쟁력은 상품보다 설명이고, 마케팅보다 사후 관리”라며 “신뢰는 비용이 아니라 가장 값싼 보험”이라고 강조했다.

“모험자본은 사명…하지만 무작정은 아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 속에서 모험자본 공급은 증권사·자산운용사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았다. IPO 주관, 벤처·스타트업 투자, 인프라 금융까지 업의 외연도 빠르게 넓어졌다.

그러나 CEO들의 고민은 보다 현실적이다. 과연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모험자본은 성장의 기회이자 동시에 재무 부담이다. 회수 시점은 길어지고, 시장 환경이 바뀔 경우 그 책임은 고스란히 경영진 몫으로 돌아온다. 모험자본은 전략이지만, 실패는 이제 개인의 이름으로 남는다.

특히 책무구조도 시행 이후 투자 실패는 더 이상 ‘환경 탓’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2026년의 모험자본 전략은 과거와 결이 다르다. 공격성보다 지속 가능성, 규모보다 구조, 단기 성과보다 회수 가능성이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성장은 멈출 수 없고, 자본은 더 비싸졌다”

고금리·고환율 환경은 CEO들에게 또 다른 숙제를 던진다. 성장은 필요하지만, 자본의 비용은 분명히 올라갔다.

IMA·발행어음 등을 통해 조달 여력은 커졌지만, 주주들은 자본 효율을 요구하고 시장은 ROE와 리스크 관리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한다.

무작정 덩치를 키우는 전략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2026년 CEO들의 화두는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얼마나 단단하냐’에 있다.

“AI 이후에도 남는 건 결국 사람과 판단”

AI 시대에도, 아니 AI 시대이기 때문에 CEO들은 다시 사람을 본다.

기술을 쓰는 능력보다 기술을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 판단하는 역량이 중요해졌다.

운용역, 트레이더, PB의 역할은 재정의되고 있고, 데이터 인력과 전통 금융 인력의 균형 역시 CEO의 몫이다. 성과를 내는 조직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판단의 기준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2026년, CEO의 고뇌는 약점이 아니다

2026년 새해 들어 증권·자산운용사 CEO들의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 깊다. 그러나 이 고뇌는 불확실성의 신호가 아니라 책임 경영의 결과다.

AI를 어디까지 믿을지, 신뢰를 어떻게 지킬지, 모험자본을 어떤 속도로 공급할지, 위기에서 무엇을 먼저 선택할지. 이 모든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장은 결국 위기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로 그 CEO를 기억한다는 점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2026년은 선언의 해가 아니다. 고뇌 끝에 내린 CEO의 선택이 실적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신뢰로 이어져 생존을 가르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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