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nk Moon, 135×135cm, 한지에 수묵채색, 2024
류재춘 작가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한국 수묵의 정신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먹과 한지라는 전통적인 재료에 강렬한 현대적 색채와 대담한 조형을 결합한다. 여기에 미디어아트와 디지털 기술, AI 등 새로운 매체까지 끌어들인다. 전통 수묵을 박제된 양식으로 바라보기보다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회화 언어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한국 수묵의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인 색채와 조형언어로 확장해 온 류재춘 작가가 오는 8일부터 11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Hall 2에서 열리는 ‘제5회 제주국제아트페어(JIAF 2026)’에 초대작가로 참여한다.
류 작가는 이번 아트페어에서 달과 산, 자연의 에너지를 담은 대표 작품들을 선보인다. 출품작은 깊이 있는 먹의 번짐과 힘찬 필선 위에 레드, 옐로, 블루 등 강렬한 현대적 색채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회의 VIP 프리뷰는 8일 진행되며, 류 작가는 B-15 부스에서 대표작들과 함께 관람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역시 ‘달’이다. 류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달’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 희망과 치유, 평화와 소망을 상징하는 조형적 언어다. 거대한 달과 먹으로 표현된 산이 서로 맞닿는 장면은 한국 산수화의 정서를 품으면서도 강렬한 색면과 대담한 구성으로 새로운 시각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먹과 색,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다
류재춘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은 ‘먹과 색의 만남’에 있다.한국 수묵화에서 먹은 단순한 검은색 물감이 아니다. 농담과 번짐, 속도와 여백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매체다. 한 획의 농담에는 작가의 호흡이 들어가고, 번짐에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성이 개입한다. 비어 있는 여백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화면의 일부가 된다.
류 작가는 이 전통적인 수묵의 문법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 강렬한 색을 밀어 넣는다. 레드와 옐로, 블루 같은 현대적인 색채가 먹과 만나면서 화면은 전통 산수화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생동감을 얻는다.
특히 원형 화면을 활용한 작품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먹과 색이 번지고 흩어지는 발묵과 점묘적인 표현, 여백과 밀도의 대비가 화면을 구성한다. 수묵 특유의 우연성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형광빛에 가까운 현대적 색감을 더해 전통 수묵의 표현 영역을 넓힌다.
이는 단순히 수묵화에 색을 입힌 것과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색의 사용 자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조형언어가 한 화면 안에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먹은 깊이를 만든다. 색은 표면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여백은 숨 쉴 공간을 만들고, 강렬한 색면은 화면의 맥박을 높인다. 이 네 요소가 충돌하면서 류재춘 특유의 화면이 만들어진다.
류 작가의 작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통과 현대의 절충’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류 작가는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다.
류 작가는 “달은 오래전부터 제 작품 안에서 사람들의 소망과 치유, 평화를 상징해 왔다”며 “먹이 지닌 한국적인 정신성과 자유로운 현대적 색채가 만나는 작품을 통해 전통 수묵이 지금 이 시대에도 얼마나 새롭고 국제적인 예술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달’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류재춘 작품에서 달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미술에서 특정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은 단순한 소재상의 취향을 넘어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 됐다는 의미다. 류 작가에게 달은 그런 존재다.달은 밤을 밝히지만 태양처럼 모든 것을 압도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 조용히 존재하면서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래서인지 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인간의 감정과 기억, 소망을 담아온 상징이었다.
류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 달을 희망과 치유, 평화와 소망의 이미지로 확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달이 특정 국가나 문화에만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적 산수의 맥락에서 출발했지만 달이라는 소재가 전달하는 감정은 국경을 넘는다.
이번 제주국제아트페어가 류 작가에게 중요한 이유도 이 지점이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미술 관계자와 컬렉터들에게 한국 수묵의 정신과 현대적인 감각이 결합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K-수묵’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류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한국적인 그림’이 아니다. 한국에서 출발했지만 세계의 관객이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려 한다.

Moon and Waves Yellow 135×135cm, 한지에 수묵채색, 2025
‘한국화’에서 ‘K-수묵’으로
한국 미술의 세계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는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동시대적인 언어로 바꿀 것인가였다.한복이나 한옥처럼 외형적으로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대미술에서는 소재보다 작품을 관통하는 미학과 사고방식이 더욱 중요하다.수묵 역시 마찬가지다.
먹과 한지를 사용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동시대 한국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산수를 그대로 반복한다면 역사적 가치는 있을 수 있지만 현대미술의 언어로 확장하기는 어렵다.
류재춘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전통의 핵심에 접근하려 한다는 데 있다. 먹의 농담과 번짐, 여백, 필선 등 수묵이 가진 본질적인 조형성을 유지하면서 화면 구성과 색채에서는 과감하게 동시대성을 받아들인다.
류 작가는 한 걸음 더 나가 미디어아트와 디지털 기술, AI 같은 새로운 기술과의 접목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초대 전시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그는 디지털 기술이 미술의 생산과 유통, 감상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 시대에 전통 회화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새로운 작품을 풀어가려고 한다.
과거의 수묵화가 붓과 먹, 한지라는 물질적 도구를 통해 자연을 표현했다면, 오늘날의 작가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같은 정신을 확장할 수 있다. 매체가 바뀐다고 해서 예술의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다. 류 작가가 말하는 ‘K-수묵’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전통을 그대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속에 담긴 정신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번역해 세계와 소통하는 것이다.
제주에서 만나는 ‘한국의 달’
류 작가의 이번 JIAF 2026 출품작 가운데는 ‘Pink Moon’과 ‘Moon and Waves Yellow’, ‘Moon and Waves Orange’ 등이 포함돼 있다. ‘Pink Moon’은 2024년 작품으로 135×135㎝ 크기의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제작됐다. ‘Moon and Waves Yellow’와 ‘Moon and Waves Orange’는 각각 2025년 작품으로 역시 135×135㎝ 크기의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완성됐다.작품명만 보더라도 류 작가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드러난다. 달과 파도, 그리고 색이다.
제주라는 장소는 이 작업과 묘한 궁합을 이룬다. 제주국제아트페어가 열리는 제주 자체가 바다와 산, 바람과 빛이라는 자연적 요소가 강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류 작가의 자연은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풍경화와는 거리가 있다. 산과 달, 파도는 구체적인 자연을 재현하기 위한 소재라기 보다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며 느낀 에너지를 화면에 옮기기 위한 조형적 장치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산은 특정 산의 모습이 아닌 ‘산’이라는 존재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달 역시 실제 천체의 모습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희망과 소망을 시각화한다.
이런 점에서 류재춘의 작품은 풍경화이면서 풍경화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을 그렸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Moon and Waves Orange , 135×135cm, 한지에 수묵채색, 2025
컬렉터에게는 ‘한국적' 낯선 경험
아트페어에서 작품은 미술관 전시와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
Moon and Waves Orange , 135×135cm, 한지에 수묵채색, 2025
미술관에서는 작품의 역사적 맥락과 미학적 의미가 중요하지만, 아트페어에서는 작품을 처음 마주하는 컬렉터가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류재춘의 작품은 이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한지와 먹이라는 익숙한 전통적 재료가 강렬한 색과 만나면서 첫인상부터 분명하다. 동시에 화면 안에는 수묵 특유의 번짐과 여백이 존재한다.
한국 미술을 잘 아는 관객에게는 익숙한 미학적 뿌리를 보여주고, 해외 관객에게는 낯선 색채와 구성으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번 제5회 제주국제아트페어는 ‘Pick your Art, Pick your Jeju’를 슬로건으로 걸고 국내외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류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한국 수묵이 동시대 미술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 ‘K-아트’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던져볼 만하다.
대중문화에서 K-팝과 K-드라마가 세계 시장을 두드렸다면 미술에서는 한국 고유의 미학을 동시대적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K-수묵’이라는 개념은 흥미롭다. 전통 수묵을 과거의 장르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과 AI까지 포괄하는 확장된 미술언어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류재춘 작가가 작업실에서 작품에 마지막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 가장 현대적인 방식
현대미술에서 전통은 종종 ‘과거’와 동의어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류재춘의 작업은 전통이 반드시 과거형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전통은 새로운 해석을 만날 때 생명력을 얻는다.먹의 번짐은 디지털 시대에도 번진다. 한지의 질감은 화면이 바뀌어도 여전히 물질성을 이야기한다. 달과 산이라는 오래된 소재 역시 작가의 시선에 따라 전혀 새로운 이미지가 될 수 있다.
류재춘이 시도하는 것은 결국 전통의 보존이 아니라 전통의 현재화다.
이번 제주국제아트페어에서 그가 선보일 작품들은 그래서 단순히 ‘한국적인 그림’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한국 수묵이 세계 미술과 어떤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달은 오래됐다. 산도 오래됐다. 먹과 한지는 더 오래됐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오늘의 것이다.
류재춘의 화면에서 거대한 달과 먹빛 산이 만나고, 그 사이로 강렬한 색채가 파고든다. 전통과 현대가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긴장이다. 그 긴장 속에서 수묵은 과거의 장르가 아니라 새로운 현재형 회화로 다시 태어난다.
제주에서 만나는 류재춘의 달은 그래서 단순히 밝은 달이 아니다. 한국 수묵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비추는 하나의 ‘신호탄’에 가깝다. 류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던지려고 하는 메시지도 그것이다. “전통 수묵은 과연 지금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가.”
그는 한국 수묵의 정신과 현대적 감각이 결합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소개하면서 K-수묵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생각이다. 관람객들은 그가 내놓는 답을 그의 말보다 작품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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