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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자본, 30년의 산업" 류영재 대표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주목한 이유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25 09:58

"5년의 자본, 30년의 산업" 류영재 대표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주목한 이유
[한국금융신문 곽호룡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단순한 주주 간 지분 경쟁이 아니라 ‘5년의 자본’과 ‘30년의 산업’이 충돌하는 문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음달 9일 열리는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장기투자와 경제안보 관점에서 경영권 분쟁을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최근 SNS에 ‘미국이 버린 교과서, 우리는 왜 주워서 외우나’는 자신의 카럼을 소개하며 단기 재무논리가 기업과 산업의 장기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홈플러스에서 현실이 된 ‘단기자본’의 문제

이 같은 문제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나타난 사례로 류 대표는 홈플러스 사태를 꼽았다. 앞서 MBK는 2015년 기존 차입을 포함해 약 7조2000억원 규모로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점포 매각과 재임차를 이어갔고, 홈플러스는 2025년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류 대표는 “높은 금융부담과 자산유동화가 영업기반을 잠식한다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고 평가했다.

류 대표는 금융자본과 장기산업의 시간표 차이를 ‘5년의 시계, 30년의 산업’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부채 활용과 자산 매각, 배당, 재매각 등은 사모펀드의 정당한 금융기법이라면서도 회수기간과 수익구조가 대규모 장치산업과 결합하면 “설비 보전과 증설, 환경·안전 투자, 인적 투자, 기술 축적이 단기 현금흐름에 밀릴 위험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류 대표가 지적한 투자평가 방식의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전통적인 투자평가 지표만으로 혁신 투자를 평가하면 미래 산업을 만드는 투자가 오히려 저평가될 수 있다고 봤다. NPV(순현재가치), IRR(내부수익률), 투자회수기간 등 전통적 투자평가 지표가 미래 현금흐름 추정을 전제로 하는 만큼,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시장창출형 혁신을 기존 사업이나 효율 개선형 투자와 같은 잣대로 비교하면 불리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무적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기업이 새로운 시장보다 비용 절감과 효율 개선에 집중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혁신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자본가의 딜레마(The Capitalist's Dilemma)’를 인용했다.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대응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던 당시 재무·관리 중심 의사결정과 R&D 조직 위축의 연관성을 지적한 분석도 거론했다.

다만 이에 대한 학계의 반론도 있다. 신주 발행 등을 통해 다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 주주에게 나간 자금만으로 장기투자 여력이 위축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류 대표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미국 기업 전체의 평균과 산업별 현실은 구분해야 한다며 “자본은 환원했다가 다시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어도 한 번 끊긴 생산 생태계와 숙련은 되사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대형마트와 다르다

류 대표는 이 같은 논리가 고려아연에 더 중요한 이유로 제련업의 특수성을 꼽았다. 그는 제련업은 대형마트와 달리 장기간 축적된 산업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련소는 대형마트와 또 다르다”며 “제련업의 경쟁력은 토지와 건물이 아니라 안정적 조업, 축적된 공정기술, 숙련인력, 원료 조달과 판매망의 결합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이어 “고려아연은 국내 유일의 안티모니 생산기업이며 중국의 수출통제 이후 안티모니의 방산·반도체 공급망 전략성은 한층 커졌다”고 밝혔다.

류 대표는 미국과 영국의 제조업 쇠퇴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찾았다. 영국 제조업 쇠퇴 역시 장기투자 부족과 단기 수익을 중시한 금융 논리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케임브리지대 마이클 키슨 교수와 옥스퍼드대 조너선 미치 교수가 영국 제조업 쇠퇴 과정에서 만성적 과소투자와 단기 수익을 우선한 금융 논리를 지적한 연구를 소개했다. 미국 기업전략이 ‘유보하고 재투자하라’에서 ‘다운사이징하고 분배하라’로 이동하면서 장기적인 생산·혁신 역량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한 윌리엄 라조닉 매사추세츠대 교수의 분석도 제시했다.

이 때문에 류 대표는 전략산업의 지배권 이동을 경제안보 관점에서 살펴볼 제도도 제안했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사례로 들면서도 외국인 투자를 대상으로 하는 CFIUS를 고려아연 사태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국내외 자본을 불문하고 국가핵심기술과 전략광물, 핵심 공급망을 보유한 기업의 지배권이 일정 수준 이상 이동하면 경제안보 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독립적 심사기구와 공개된 기준 등 안전장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30년의 자본’은 국민연금에서 시작해야

장기 산업투자를 뒷받침할 자본의 역할도 강조했다. 류 대표는 “5년의 시계를 가진 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30년의 시계를 가진 자본”이라며 그 출발점으로 국민연금을 꼽았다.

고려아연의 주요 주주인 동시에 MBK 등 사모펀드의 출자자이기도 한 국민연금이 출자자로서는 운용사의 회수 방식에 장기 산업의 기준을 요구하고, 주주로서는 경영진과 인수자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류 대표는 “국민의 노후자금은 본래 가장 긴 시계를 가진 돈”이라며 “그 돈이 가장 긴 시계로 투자하게 만드는 것이 책임투자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전략 제조업의 가치를 단기 이익과 주주환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급망을 지킬 능력과 기술인력, 장기 투자를 버틸 재무구조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자본은 국경을 넘지만 설비와 기술인력, 공급망이 빚어내는 산업역량은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며 “미국과 영국이 너무 늦게 깨달은 이 사실을 우리가 같은 경로를 따라 동일한 비용을 치르고 배울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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