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한 감축량 확보를 넘어, 해당 실적을 얼마나 정밀하게 측정·검증하고 국가 차원에서 적법하게 허가·이전·회계 처리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국제 탄소시장의 주도권이 '단순 감축 프로젝트 확보'에서 '국가 단위 탄소관리 시스템 구축'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탄소크레딧을 단편적인 상품으로 접근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감축 데이터 산출부터 검증, 발행, 국가 허가, 국제 이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반영, 최종 소각·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실시간 추적하는 통합 인프라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탄소크레딧도 ‘국가 허가’ 필수
시장 구조 재편의 배경에는 파리협정 제6조에 기반한 국제 탄소시장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 예컨대 A국에서 발생한 100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한국이 이전 받아 자국의 NDC 달성에 활용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만약 A국 역시 해당 100만 톤을 자국의 감축 성과로 이중 계산한다면, 실제 감축량은 100만 톤임에도 장부상으로는 200만 톤이 반영되는 '이중계산(Double Counting)' 오류가 발생한다.따라서 감축 실적을 국제적으로 이전·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발행국의 명확한 국가 허가(Authorization)와 상응조정(Corresponding Adjustment), NDC 회계 연동 절차가 필수적이다.
특히 '사업 승인(Approval)'과 '국가 허가(Authorization)'의 개념적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사업 승인은 감축 프로젝트나 참여자가 관련 규정 및 절차적 요건을 충족했는지 검증하는 행위다. 반면 국가 허가는 해당 감축 성과를 타국의 NDC 달성이나 국제적 목적으로 이전·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단계다.
탄소감축 사업이 승인되었다고 해서 국제 이전이 자동으로 허가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탄소크레딧이 발행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국제적으로 이전 가능한 'ITMO(국제적 감축이전 실적)' 자격이 부여되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도적 격차와 상태 변화를 국가 탄소관리 시스템 내에서 체계적으로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탄소크레딧은 생애주기 관리대상 자산
탄소크레딧 관리의 패러다임 역시 고도화되는 추세다. 하나의 감축 실적은 국제감축사업 착수를 시작으로 △디지털 측정·보고·검증(d-MRV) △독립적 제3자 검증 △탄소크레딧 발행 및 등록부(Registry) 등재 △사업 및 참여자 승인 △국가 허가 △국제 이전 및 ITMO 추적 △상응조정 △NDC 회계 반영 △최종 사용 및 소각·폐기 등의 단계적 생애주기를 거친다. 관련 데이터의 장기적인 이력 보존도 수반되어야 한다.탄소등록부(Carbon Registry)가 핵심 인프라지만, 이것만으로 국가 탄소관리 시스템이 완비되는 것은 아니다. 등록부는 크레딧의 발행·보유·이전·폐기 상태를 기록하는 원장(Ledger) 기능에 집중되어 있으며, 감축량을 직접 데이터화하거나 독립적 검증을 대체할 수는 없다. 국가 차원의 국제사용 승인이나 상응조정, NDC 회계 연동 전체를 단독 수행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따라서 차세대 국가 탄소관리 시스템은 d-MRV, 검증기관, 탄소등록부, 국가 허가 체계, 파리협정 제6조 국제이전, NDC 회계 및 감사 추적(Audit Trail)이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탄소시장 경쟁력의 본질은 ‘데이터와 신뢰’
탄소시장에서 데이터 품질이 가지는 가치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실질적인 감축 정량화를 위해 위성 영상, IoT 센서, 산림 조사 데이터, 에너지 소비량, 현장 계측 데이터 등 다차원 정보가 동원된다. 디지털 MRV(d-MRV) 시스템의 역할이 한층 강조되는 이유다.데이터의 왜곡은 부실한 탄소크레딧 양산으로 이어지며, 이는 국가 등록부와 회계 시스템 전반의 신뢰도를 훼손한다. 결국 데이터의 정밀도가 탄소크레딧의 자산 가치를 좌우하는 셈이다.
탄소크레딧은 금이나 원유처럼 실물 확인이 가능한 원자재가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해당 크레딧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기반하여 산출되었는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발행·이전·폐기되었는지를 오직 데이터와 검증 기록을 통해 판단한다.
국제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본질은 '탄소 1톤'이라는 물량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그 바탕에 축적된 증거(Evidence), 데이터(Data), 검증(Verification), 허가(Authorization), 등록부(Registry), 그리고 감사 추적성(Audit Trail)에 대한 글로벌 신뢰가 함께 거래되는 것이다.
‘단순 거래소’ 넘어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 인프라 시급
탄소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순한 탄소거래소 개설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K-ETS)와 해외 국제감축사업, d-MRV, 탄소등록부, 파리협정 제6조 메커니즘, 국가 허가, NDC 회계 및 국제 거래 체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한국의 2030 NDC 목표 달성 과정에서 해외 국제감축은 핵심 이행 수단 중 하나로 할당되어 있다. 해외 감축 프로젝트를 확보하는 전략과 더불어, 해당 감축 성과를 정밀하게 계량·검증하고 국제 이전에 따른 국가 회계 처리까지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적 기반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탄소시장 후발주자가 선발국의 기조와 경로를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 제언도 힘을 얻고 있다. 국제 탄소시장의 경쟁 축이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d-MRV 데이터·등록부·국가 허가·국제이전·회계'를 다각도로 통합하는 시스템 경쟁으로 전환되는 만큼, 한국 역시 차세대 탄소관리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단계 도약(Leapfrogging)' 전략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도 필요하다. 블록체인은 정부의 법적 권한이나 d-MRV, 등록부 고유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종 기관 및 시스템 간에 발생하는 데이터 변경 이력을 위·변조 없이 연동하여 감사 추적성과 추적 가능성, 데이터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상호운용성 기반 기술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 흐름에 맞춰 차세대 국가 탄소관리 인프라 구축을 선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곳이 기후테크 전문기업 KIUDA이다. 이 회사는 단편적인 탄소크레딧 발행이나 거래 중개를 넘어 감축 데이터 생성부터 검증, 등록, 국가 승인, 국제이전, NDC 회계 연동, 최종 소각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로 잇는 통합 엔드투엔드(End-to-End) 시스템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리챠드윤 KIUDA 대표는 “글로벌 탄소시장의 승부처는 더 이상 단순한 감축량 확보에 있지 않다”며 “데이터 생성부터 국제 회계와 소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정밀하게 입증할 수 있는 '통합형 국가 탄소관리 시스템' 구축이 선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글로벌 탄소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선발국들의 과거 방식을 추종하기보다 블록체인과 d-MRV 기반의 차세대 탄소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일시에 격차를 뒤집는 도약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성형AI 활용
탄소 ‘감축국’서 ‘관리국’으로 패러다임 전환
앞으로 국가별 탄소 경쟁력은 △프로젝트 경쟁력 △시스템 경쟁력 △신뢰 경쟁력 등 3대 축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프로젝트 경쟁력이 우수한 감축 사업을 발굴·선점하는 역량이라면, 시스템 경쟁력은 발생한 감축 실적을 오류 없이 측정·검증·등록·허가·이전·회계 처리하는 체계적 역량을 의미한다. 한 발 더 나가 해당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감축 성과에 대해 글로벌 시장과 투자자가 평가해주면 신뢰 경쟁력이 쌓이게 된다.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현물 시장이 정착되면 탄소크레딧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헤징, 자산운용 등 탄소금융(Carbon Finance) 영역으로 급격히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탄소금융의 성숙 역시 검증된 기초자산과 투명한 거래·회계 인프라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국제 탄소시장의 패러다임은 이제 '탄소 1톤을 얼마나 저렴하게 감축하는가'의 단편적 수치 경쟁을 넘어섰다. 해당 1톤의 감축량을 누구보다 정확히 측정하고, 투명하게 검증하며, 적법하게 허가·이전하고, 최종 소멸까지 완벽히 추적·관리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글로벌 표준으로 정립되고 있다.
한국도 이제는 단순한 '탄소 감축국'을 넘어 탄소 자산을 정밀하게 통제하고 국제 시장에서 능동적으로 거래하는 '탄소 관리국'으로 체질개선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국가 간 탄소관리 인프라 구축 경쟁에서의 대응 속도가 향후 글로벌 탄소시장에서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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