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전투기(KF-21) '보라매'가 비행하는 모습.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KAI)
KAI는 항공기 설계부터 엔진·항전장비 등 구성품 통합, 시험평가까지 개발 전 과정을 총괄하는 국내 유일 완제기 체계종합업체다. 전투기·훈련기·헬기를 독자 개발해 양산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서 KAI뿐이어서 방산 수출 붐의 수혜주로 꼽혀 왔지만, 재무제표 숫자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3년간 현금 2조3319억 빠져나가
가장 큰 부담은 현금흐름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회사가 본업을 통해 실제로 벌어들이거나 지출한 현금을 보여주는 지표로, 장부상 이익과 달리 돈이 실제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KAI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23년 마이너스(-) 7004억 원, 2024년 -7282억 원, 2025년 -9033억 원으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3년간 빠져나간 현금만 2조3319억 원이다. 올해 상반기도 -3800억 원으로, 전년 동기(-6073억 원)보다 적자 폭은 줄었지만 유출은 멈추지 않았다.원인은 재고다. 재고자산은 2023년 말 1조7365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3조9926억 원으로 2.3배가 됐다. 이 가운데 제작 중인 기체 등 재공품이 2조1557억 원을 차지한다. 양산 물량을 납품하기 전까지 원재료와 생산비용이 먼저 묶이는 구조다.
빈자리는 차입으로 메웠다. 총차입금(사채 포함)은 2024년 말 1조357억 원에서 지난해 말 2조1470억 원, 올해 6월 말 2조9801억 원으로 1년 반 만에 2.9배가 됐다. 올해 1분기 말(2조7700억 원)과 비교해도 한 분기 새 2101억 원 늘었다. 단기차입금은 지난해 말 4928억 원에서 6월 말 7328억 원으로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2024년 말 364.66%에서 올해 6월 말 484.20%로 119.54%p 뛰었다. 이는 KF-21과 LAH 양산을 위한 재고 투자 확대 등에 따른 영향이다.
증권가에서도 차입 부담이 당장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안타증권은 KAI의 올해 말 총차입금이 3조2350억 원으로 6월 말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다올투자증권은 올해도 영업활동현금흐름이 -1조5117억 원으로 적자를 이어가고, 연말 부채비율은 582.4%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도 지난해 4.4배에서 올해 2.5배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곳간 채울 수주는 목표치 6%만 채워
현금 유출을 되돌리려면 신규 계약이 들어와야 한다. 문제는 수주 흐름이 더디다는 것이다. KAI가 지난 7월 공개한 2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신규 수주는 6295억 원으로 회사가 제시한 올해 수주 가이던스(목표치) 10조4383억 원 대비 6.0%에 머물렀다. 2분기만 떼어 보면 3194억 원으로 전년 동기(3조1622억 원)보다 89.9% 줄었다. KAI는 이에 대해 “지난해 2분기 KF-21 최초 양산 잔여 계약과 필리핀 FA-50 계약이 몰린 데 따른 기저효과이며, 국내·수출 부문 주요 수주는 하반기 중 순차적으로 체결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수주잔고도 줄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별도 기준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 27조3437억 원에서 6월 말 25조7502억 원으로 1조5935억 원 감소했다. 국내방산은 10조9868억 원에서 10조2355억 원으로, 완제기수출은 5조5232억 원에서 5조257억 원으로 줄었다. 기체부품도 10조500억 원에서 9조8076억 원으로, 위성사업도 7837억 원에서 6814억 원으로 감소하는 등 4개 부문 모두 뒷걸음질쳤다. 새 일감이 들어오는 속도보다 기존 잔고를 소진하는 속도가 빨랐다는 의미다.
KAI가 제시한 연말 수주잔고 목표는 31조7357억 원으로, 이를 맞추려면 하반기에만 6조 원 가까운 순증이 필요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가이던스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연간 신규 수주를 8조5000억 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회사 목표보다 약 1조9000억 원 적은 규모다.
이미 확보한 수출 물량의 납기도 밀리고 있다. 폴란드 FA-50PL 36대는 AESA 레이더와 AIM-9X 미사일 통합 시험 일정으로 초도 인도가 2027년 중반, 전량 납품은 2029년 초로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주요 경쟁 사업에서도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4월 9613억 원 규모의 UH-60 헬기 성능개량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대한항공이 선정됐고, 같은 달 천리안위성 5호 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도 LIG D&A에 내줬다. KAI는 이 같은 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달에는 한화시스템과 손잡고 도전한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에서 LIG D&A·대한항공 컨소시엄에 밀렸고, 스웨덴 사브와 협력한 항공통제기 2차 사업도 대한항공이 파트너로 참여한 미국 L3해리스 기종으로 결정됐다. 항공기 독자 개발 역량을 갖춘 KAI가 특수임무기 개조와 위성 등 인접 시장에서 연달아 밀리면서 수주 공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출 늘었는데 이익은 줄어
수익성도 뒷걸음질쳤다. 연결 매출은 2023년 3조8193억 원, 2024년 3조6337억 원, 2025년 3조6964억 원으로 3년째 3조원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증가율은 1.7%였다.올해 상반기 매출은 KF-21과 상륙공격헬기·소해헬기 등 체계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2조260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 늘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1320억 원에서 1156억 원으로 12.5% 줄었고, 영업이익률은 8.6%에서 5.1%로 떨어졌다.
2분기만 보면 영업이익은 484억 원으로 43.1% 감소했고 영업이익률은 10.3%에서 4.1%로 6.1%p 하락했다. 같은 기간 매출총이익률이 18.7%에서 10.7%로 8.0%p 떨어져 원가 단에서 수익성이 깎인 것으로 나타났다. KAI는 “회전익 계열 납품 일정 조정이 2분기 실적에 일부 영향을 미쳤고, 하반기 KF-21 국내 납품이 시작되면 양산 매출이 본격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는 2분기 실적 부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LAH(소형무장헬기) 납품 차질을 꼽는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2분기 LAH는 6대 납품이 예정돼 있었지만 엔진 결함으로 인도가 보류되면서 실제 납품은 1대에 그쳤다. 현대차증권은 엔진 공급 차질로 3분기 LAH 납품이 아예 없었던 것으로 추정했고, 대신증권은 LAH 인도 지연이 올해 매출 가이던스(5조7306억 원) 달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유안타증권은 전투기 사업 특유의 높은 해외 부품 의존도와 까다로운 인증 기준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실적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 사업 마진도 과거만 못하다. 미래에셋증권은 폴란드·말레이시아향 FA-50 사업 마진이 한 자릿수 중후반으로 이전 수출 사업보다 낮다고 짚었다.
KF-21 이후 '다음 먹거리' 찾아야
중장기 과제도 남아 있다. KF-21 체계개발을 마무리하고 양산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동안 쌓은 개발 인력과 기술을 이어갈 후속 대형 과제가 필요하다. 개발 사업 사이 공백이 길어지면 숙련 인력이 이탈할 수 있어서다. KAI는 “소형 무인전투기와 회전익 유무인 복합체계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KF-21의 수출 경쟁력에도 약점이 지적된다. 미래에셋증권은 경쟁 기종과 비교한 KF-21의 약점으로 실전 운용 이력이 없다는 점, 미국 무기수출 규제(ITAR)를 받는 GE F414 엔진에 종속된 점, 자체 공대지·공대공 미사일 부재, 부족한 글로벌 후속군수지원망 등을 꼽았다.
경영 연속성도 숙제다. KAI는 지난해 7월 강구영 전 사장이 사임한 뒤 약 8개월 동안 정식 사장 없이 운영되다 올해 3월 18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김종출 사장을 선임했다. 김 사장은 다음 날 취임식에서 인공지능(AI) 파일럿 등 소프트웨어와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MUM-T), 무인기 등으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유도무기체계와 우주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증권가의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다. 이달 들어 유안타증권은 KAI 목표주가를 23만6000원에서 18만2000원으로, 현대차증권은 20만2000원에서 15만1000원으로, 다올투자증권은 23만 원에서 21만 원으로 각각 내렸다. 유안타증권은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를 4852억 원에서 3924억 원으로 19.1% 낮췄다.
결국 하반기 대형 계약이 수주 목표 달성과 현금흐름 개선을 동시에 풀 열쇠다. KF-21 양산 매출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불어난 재고와 차입금 부담을 얼마나 관리하느냐에 따라 새 경영진의 첫해 성적표가 갈릴 전망이다.
정진아 한국금융신문 기자 urzinni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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