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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저질 장사치’와 ‘착취 재벌’…富는 惡인가

정경환 기자

hoan@fntimes.com

기사입력 : 2026-10-19 00:00 최종수정 : 2026-10-19 02:13

▲ 정경환 생활경제부장

▲ 정경환 생활경제부장

[한국금융신문 정경환 기자] 필요할 때는 손을 내밀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손가락질부터 하는 정치가 있다. 투자와 고용을 늘려 달라고 할 때는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기업 전체를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기업은 경제를 움직이는 동반자인가, 아니면 언제든 두들겨도(?) 되는 동네북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저질 장사치”라며 강하게 비판한 데 이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과거 자신이 했던 ‘재벌이 대한민국을 착취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밝혔다.

두 사안의 맥락은 다르다. 스타벅스의 마케팅은 5·18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키는 부적절한 표현으로 비판받았고, 재벌을 둘러싼 논쟁은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과 시장 지배력 문제를 포함한다.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고 재벌의 폐해를 바로잡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과 기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언어가 기업과 부의 존재 자체를 죄악시하는 인식으로 확대된다면, 비판의 대상과 근거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간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고 소비자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정부는 제도를 만들고 시장질서를 관리한다. 기업은 자본을 투입하고 위험을 감수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며, 시장에서 이윤을 얻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과 투자, 세수와 기술혁신이 나온다. 기업의 이윤 추구는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다.

기업은 정부가 필요할 때만 불러 쓰는 존재가 아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투자를 독려하고 일자리를 요청하면서, 평소에는 기업 활동을 잠재적인 악으로 취급한다면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 동시에 정부에도 기업이 예측 가능한 규칙 아래 투자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 기업의 잘못에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정당한 기업 활동과 이윤 추구는 존중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물론 이윤을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기업 활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독과점으로 경쟁을 막거나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등 부당하게 얻은 이익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당한 경제활동으로 부를 이루는 일과 불공정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 그 차이를 지우고 부자와 기업을 하나의 도덕적 범주에 가두는 순간, 시장경제를 바라보는 눈은 흐려진다.

기업의 이윤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부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기업이 이윤을 남기고 성장하면 그 과실은 주주와 노동자, 협력업체와 소비자 등 다양한 경제주체에게 돌아간다. 개인이 정당한 노력과 투자로 부를 축적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결과를 구분하지 않은 채 부의 존재 자체를 문제삼는다면, 기업에 대한 비판은 어느새 부에 대한 적대감으로 번질 수 있다.

특히 정치권의 언어는 정책의 방향과 사회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동시에 법과 원칙에 따라 시장질서를 관리해야 하는 자리다. 재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 재벌을 본질적으로 착취자로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이미 공정하지 못하다. 기업의 규모나 소유 형태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와 증거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부기관장의 기업관이 실제 법 집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는 별도로, 적어도 공정성에 대해 불필요한 의구심을 키우는 언어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도 부(富)는 타도 대상이다. 집값 상승을 투기와 탐욕만으로 설명하면 공급 부족과 인허가, 금융 여건, 세제, 주거 수요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을 놓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규제해야 하지만, 시장 참여자의 경제적 유인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은 오히려 시장의 왜곡을 키울 수 있다. 부와 이윤을 바라보는 도덕적 판단이 경제의 작동 원리에 대한 분석을 대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치가 가난한 국민을 돕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가난한 국민을 돕는 일과 부자를 적으로 만드는 일이 궤를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와 기회 확대를 통해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정책은 필요하다. 동시에 기업이 성장하고 개인이 자산을 축적하며 더 많은 사람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부를 창출할 동력을 약화하면서 분배할 몫만 늘릴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분배를 위해서라도 부를 창출하는 경제의 활력이 필요하다.

부가 악이라면 빈(貧)은 선(善)인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땀 흘려 일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정당한 노력으로 부를 쌓아가는 것이 비난받을 일인가.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다만, 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규칙 아래 축적됐는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중요하다.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이 부를 죄악시하는 것일 수는 없다.

기업을 비판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손쉬운 선택일 수는 있다. 그런데 쉬운 선택은 본질을 비켜가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기업을 향한 거친 수사가 아니라 불공정 행위를 정확히 가려내는 법과 제도 그리고 투자와 혁신을 촉진하는 예측 가능한 정책이다.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는 사회와 기업의 존재 자체를 잘못으로 여기는 사회는 분명 다르다.

정경환 한국금융신문 기자 ho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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