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택 이사장이 이끄는 기술보증기금은 자체 기술평가시스템(KTRS)을 토대로 코스타리카형 기술평가시스템(CTRS)을 개발하고 기술보증제도(CRTG)를 함께 설계했다. 과거 해외사업이 기술평가모형 현지화와 평가인력 양성에 무게를 뒀다면 코스타리카에서는 평가 결과를 보증과 실제 금융지원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CTRS 평가, 기술보증 프로그램으로
코스타리카가 기술금융 모델을 도입한 배경에는 혁신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한계가 자리한다. 미주개발은행(IDB)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코스타리카 전체 기업의 약 98%를 차지하고 민간 고용의 절반가량을 담당하지만 기술과 지식 등 무형자산의 가치가 기존 신용평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혁신·성장을 위한 금융 접근에는 제약이 있었다.기술기업은 지식과 소프트웨어, 데이터, 디자인, 지식재산 등에서 기업가치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이나 설비 등 물적 담보와 과거 재무실적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금융심사만으로는 향후 성장 가능성까지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보와 IDB, 코스타리카 개발금융시스템(SBD)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KTRS를 현지 산업·금융환경에 맞게 바꾼 CTRS를 개발했다. 기업의 기존 경영 성과뿐 아니라 기술 역량과 시장성, 성장 가능성 등을 함께 평가해 금융 판단에 활용하는 구조다.
현지에서는 평가 결과를 금융과 연결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됐다. SBD 운영위원회는 기보·IDB와의 협력을 토대로 기술보증 프로그램(PAT)을 승인했다. PAT는 CTRS 평가를 핵심 요소로 활용하고 국가개발기금(FONADE)이 보증 재원을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현지 공개 자료에 따르면 신용공급이나 벤처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손실의 최대 75%를 보증할 수 있다. 기업 한 곳당 최대 100만 달러 규모의 금융 또는 투자에 보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제 보증 규모는 기술평가 결과와 보증비율, 위험관리 한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시범평가 마치고 운영체계 구체화
기보는 지난해 2월부터 IDB와 코스타리카형 기술평가·기술보증 도입을 위한 기술지원 컨설팅을 진행해 왔다. 한국의 KTRS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코스타리카 산업구조와 금융환경을 반영한 별도 평가모형을 설계했다.제도 설계 과정에서는 현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시범평가를 진행해 평가모형을 점검했다. 기술평가 매뉴얼과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고 현지 실무자 대상 교육도 병행했다. 평가모형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기관이 자체적으로 평가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하는 과정이다.
지난달 8~10일에는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IDB·SBD 등과 정책확산 세미나와 실무 워크숍을 열었다. 정부와 금융기관, 학계·연구기관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여해 CTRS 개발 과정과 시범평가 결과를 공유하고 기술평가 프로세스의 디지털화와 제도 운영방안 등을 논의했다.
기보와 SBD는 기술금융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CTRS와 CRTG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경험 공유와 전문가·직원 교류, 공동연구, 신규 협력사업 발굴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기술보증 프로그램이 승인됐다고 곧바로 현지 기업에 자금이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기보에 따르면 현지 관계기관이 세부 운영기준과 평가인력을 확보하고 관련 절차·시스템을 마련한 뒤 실제 금융지원에 활용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시행시점도 현지 후속 절차에 따라 결정된다.
태국·페루 전수 경험, 코스타리카서 고도화
기보의 기술평가 해외전수는 코스타리카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공적개발원조(ODA) 수원국 등의 요청에 따라 KTRS를 각국 경제·금융환경에 맞게 현지화하는 컨설팅과 평가인력 역량강화 사업을 진행해 왔다.대표적인 사례가 태국이다. 기보는 2015년부터 3년간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을 통해 태국 신용보증공사(TCG), 국가과학기술개발원(NSTDA) 등과 태국형 기술평가시스템(TTRS)을 개발하고 평가 노하우를 전수했다.
이후 현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거쳤고 TTRS를 활용해 우수기술기업 약 100개를 선정해 금융지원하는 단계까지 이어졌다. 기술평가모형의 현지화가 실제 기업 선별과 금융지원에 활용된 사례다.
페루에서도 KSP를 통해 현지 중소기업의 기술성과 혁신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기술평가체계와 기술보증·인증제도 구축을 지원했다. 국가별 산업·금융환경에 따라 KTRS의 평가항목과 운영방식을 조정해 현지화하는 방식이었다.
코스타리카 사업은 기존 해외전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평가와 기술보증, 금융지원을 하나의 운영체계 안에서 연결하는 방향으로 협력모델을 구체화한 사례다. CTRS 평가 결과를 별도의 기술보증제도와 연결하고 SBD의 기술보증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 금융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운영구조를 함께 설계했다.
기보 관계자는 "최근에는 단순한 기술평가모형의 현지화를 넘어 기술평가 결과를 기술보증 및 실제 금융지원과 연계하는 방향으로 협력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코스타리카 사업이 이러한 발전된 협력모델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글로벌전략실 개편…국제협력 기능 강화
기보의 국제협력 사업은 글로벌전략실 글로벌운영팀이 담당한다. 국내외 유관기관과 협력해 해외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중남미와 아세안 국가를 대상으로 기술금융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국제회의와 해외기관 교류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이다.올해는 조직 체계도 손봤다. 기보는 지난 1월 담당 조직을 글로벌전략실로 개편해 해외사업에 대한 전략적 기획과 국제협력 기능을 강화했다. 국제금융기구와 연계한 협력사업 수요가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 정비다.
해외 현지 지원 기반도 확대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지점을 개소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실리콘밸리지점을 열었다. 이를 통해 국내 혁신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동시에 현지 유관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기보는 글로벌전략실을 중심으로 기술금융 제도의 해외협력과 국내 혁신기업의 해외진출 지원을 함께 추진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향후에도 국제금융기구 협력 수요와 해외사업 확대 추이를 고려해 글로벌 협력체계의 전문성과 조직 운영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IDB와 후속 협력…기술금융 확산 모색
권형택 이사장은 지난 7월 취임 당시 AI·딥테크 등 미래전략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해 한국이 '글로벌 벤처 4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보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보증뿐 아니라 기술사업화와 기술거래 등 혁신기업의 성장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코스타리카 사업에서는 IDB가 현지 정책수요와 금융환경을 연결하고 기보가 기술평가·보증 경험을 제공하면서 SBD 등 현지 기관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설계했다.
IDB의 관련 기술협력 사업도 코스타리카 중소기업의 혁신 가능성을 평가할 CTRS 개발과 기술보증제도 설계, 시범사업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단순 정책자문보다 현지 기관이 자체적으로 기술평가를 수행하고 이를 금융수단과 연결할 수 있도록 제도와 운영체계를 함께 마련하는 방식이다.
기보는 코스타리카 사업을 계기로 IDB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해외 관계기관을 대상으로 기술평가와 기술보증을 결합한 후속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현재는 관계기관 간 협의와 사업 형성 단계여서 구체적인 다음 국가나 사업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
우선 코스타리카에서 설계한 제도를 실제 금융지원으로 연결하기 위한 운영 기반을 갖추는 작업이 남아 있다. CTRS를 활용할 평가인력과 업무절차, 관련 시스템 등을 마련한 뒤 기술보증과 금융지원에 실제 활용할 예정이다.
지다혜 한국금융신문 기자 dahyej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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