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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증권사 직접 대출 나서나…비은행금융기관 여신지원 카드 ‘만지작’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기사입력 : 2020-04-02 18:09

이주열 “회사채 시장 등 신용경색 가능성 배제 못해”
한은 영리기업 여신지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유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한국은행

[한국금융신문 한아란 기자] 한국은행이 회사채 시장안정을 위해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대출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은이 영리기업 여신지원 카드를 꺼낸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이후 처음이다.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 대출을 통해 금융시장 경색을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오후 간부 회의를 열어 기업어음(CP)·회사채 동향 등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한 뒤 “앞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전개와 국제금융시장의 상황 변화에 따라 회사채 시장 등 국내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한국은행으로서는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한은은 기본적으로는 은행 또는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시장안정을 지원한다”면서도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는 회사채 시장안정을 위해 한은법 제80조에 의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회사채 시장과 단기 자금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시장 불안이 심화할 경우 비은행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회사채 등을 담보로 직접 대출을 해 신용경색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다만 법에서 정한 한국은행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거나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은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회사채 등 채권시장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자금 조달이 막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요구)에 대응을 위해 기업어음(CP) 등 단기채권을 시장에 대거 쏟아내면서 단기자금시장이 불안을 겪기도 했다.

자금 수요가 집중되는 분기 말 이슈는 해소됐지만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으로 유동성 수요가 지속되면서 채권시장의 불안심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은법 제80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크게 위축되는 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업 등 영리기업에 여신을 제공할 수 있다.

한은이 제80조를 적용해 영리기업 여신지원에 나선 사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종합금융사 업무정지와 콜시장 경색에 따른 유동성 지원을 위해 한국증권금융(2조원)과 신용관리기금(1조원)에 대해 진행한 대출이 유일하다. 특정 기업 지원을 위해 이 조항을 적용한 사례는 없었다.

주요국 중앙은행법도 영리기업에 대한 여신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시 대형 금융기관의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체로 전이될 위험을 막기 위해 베어스턴스 AIG, 시티 등 금융기관에 긴급여신을 제공한 바 있으나 2010년 금융 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제정 이후에는 특정 금융기관에 대한 여신도 제한하고 있다.

한편 이 총재는 회사채 만기도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시장의 자체수요와 채권안정펀드 매입 등으로 차환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20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는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전날 1차 조성분 약 3조원이 납입됐으며 이날부터 매입을 시작했다.

한은은 첫 전액공급방식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한은은 이날 시중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91일물 RP 매입 입찰을 실시해 응찰액 5조2500억원을 모두 낙찰했다.

올해 4~12월 중 일반기업 발행 회사채 만기도래 규모는 20조6000억원(AA등급 이상 14조4000억원, A등급 이하 6조2000억원), CP 만기도래 규모는 15조4000억원(A1등급 10조7000억원, A2등급 이하 4조7000억원) 등 총 36조원이다. 이 중 2분기에는 회사채 8조9000억원, CP 11조4000억원 규모의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다.

한은은 “우량등급 회사채·CP는 시장의 자체수요와 20조원의 채안펀드 조성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차환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비우량등급 회사채·CP는 8조4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과 3조9000억원 규모의 산업은행·기업은행 매입 프로그램이 차환발행을 상당 부분 지원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량등급 회사채(AA등급 이상)·CP(A1등급)의 올해 중 만기도래분은 25조1000억원, 비우량등급 회사채·CP의 만기도래분은 11조원이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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