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수료인하 역풍, 예탁금, 신용융자인하 추진
월가에서 촉발된 ‘상위 1%논쟁’으로 금융권이 수수료인하 압박을 받는 가운데 그 바람이 증권사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여론에 뭇매를 맞고 은행, 카드사 등은 이미 이체, 가맹점 등 수수료인하를 검토중인 상황. 최근엔 그 불똥이 증권사 쪽으로 튀며 수수료인하 한파에 금융업계도 그 영향권에 진입한 모습이다.
타깃은 신용융자 연체이자율,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주식매매 수수료, 펀드 판매보수 등이다. 이번 수수료체계개편은 금융감독원이 지난 9월 24일에 발표한 바가 있다.
당시 개선안의 핵심은 수수료의 손질. 특히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실적에 기여했던 투자자예탁금, 자문형랩, 신용공여 등이 도마에 올랐다. 항목별로 보면 먼저 투자자예탁금의 금리에 메스를 댈 방침이다. 증권사가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받는 예탁금이자를 돈의 주인인 고객에게 훨씬 적게 돌려준다는 판단이다. 증권사 예탁금운용수익은 2.32~2.90%선. 고객에게는 예탁금별로 0%~1.92%의 이용료를 지급한다. 부실위험이 거의 없는 예탁금의 특성상 증권사가 앉아서 약 1~2% 수익을 챙긴다는 논리다.
자문형랩도 주요 5개사의 자문형랩 수수료(연 1.9%~2.9%) 가운데 선취수수료 비중이 50%를 넘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고금리논란을 낳았던 신용공여 연체이자율도 대폭 손질할 방침이다. 현재 연체이자율은 연 12~19% (평균 16%)수준. 빌린 주식을 담보로 잡아 실제 부실화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대폭적인 인하를 유도할 방침이다.
◇ 온라인거래수수료 노마진, 똑같은 잣대 억울
현재 수수료인하의 주체는 증권사다. 금융당국은 수수료를 자율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수수료동결’을 선택하기가 쉽지않다. 수수료산출의 근거를 금융당국에 제출하고 이 요율이 합리적인 수준인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불합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당국과 재협의 뒤 다시 요율을 조정해야 하는 등 사실상 반강제적 성격을 띤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수수료형태를 결정할지 어디까지나 증권사의 몫”이라며 “하지만 산출근거가 미흡하거나 불합리할 경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적정수수수료 산출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유무형의 수수료인하 압박에 나서자 증권사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적정인하폭과 관련 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행계획서를 제출하고 빠르면 이달중으로 수수료인하 발표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은행, 카드 등 타업종과 달리 증권사의 경우 수수료를 꾸준히 인하하며 투자자의 부담을 덜어줬다는 점이다. 이미 노마진수준인 거래수수료가 대표적이다. 대신증권이 지난 5월 기존의 최저수수료를 무너뜨린 제휴은행계좌 브랜드인 크레온을 내놓으며 제2차 수수료인하경쟁이 뒤따랐다. SK증권이 디씨로로 선물최저수수료를 내놓은데 이어 한화증권이 스마트C 로 수수료인하경쟁에 동참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아예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곳도 있다. LIG투자증권은 지난 5월부터 1년을, 유진투자증권은 6개월 수수료가 공짜다.
최근에는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이 지난 27일 증권사로부터 받는 거래 수수료를 연말까지 면제하기로 결정하자 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등도 인하규모만큼을 수수료에 100% 반영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출혈경쟁일 정도로 수수료인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등 타업종과 똑같은 잣대를 대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겉으로 자율이지 속으론 강제와 다름없다”며 “온라인거래수수료의 경우 역마진이 나는 상황인데, 이같은 업계의 현실은 무시하고 한쪽면만 부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수수료인하가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증권사들의 수익성악화도 우려된다. 신한금융투자 손미지 연구원은 “이미 브로커리지부문은 수수료 낮추려고 해도 원가비용을 감안하면 인하폭이 없는 상황”이 “거래수수료가 노마진임에도 불구하고 신규고객창출에 따른 예탁금이용료, 신용융자수수료 등으로 커버했는데, 이번 조치로 수익원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메리츠종금증권 박선호 연구원은 “수수료가 낮아지면 수익이 줄어드는 것 맞는데, 아직 인하요율이 발표가 안되 그 파급효과는 아직 미지수”라며 “하지만 수익원다변화를 꾀한 대형사보다 신용포지션의 비중이 높은 중소형사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