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당국의 규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위험예방 안돼
파악되지 않는 위험신호도 산출할 수 있는 방안 강구 해야
‘하인리히 법칙(1:29:300)’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간략히 소개하면, 1930년대 초 미국 보험회사 직원이던 하인리히가 노동재해 5천건을 분석한 결과, 중상 이상의 재해(severe loss) 1건이 발생하기 전, 동일 원인의 경상재해가 29건 발생하고, 운이 좋아 재해는 피했지만 동일 원인의 잠재적 사건이 300건 발생한다는 법칙이다. 이는 대형사건 전에 항상 어떤 신호가 존재하며 그 신호를 파악하여 조치를 취함으로써 대형사건을 예방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금융환경에서 하인리히 법칙의 의미와 연관하여 은행의 대처방향을 생각해보자.
하인리히 법칙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던져준다. 우리 회사는 위험 신호를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위험을 예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신호를 산출하는 방안을 수립하여 그에 따른 결과(신호)를 활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산출된 신호를 무시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의 문제가 포함되기에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감독당국과 은행의 리스크관리부서에서 수행하는 업무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은행의 건전성에 위협이 되는 위험 신호를 산출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감독당국은 최저 규제자본 비율(소위 BIS비율)의 산출을 통하여 은행 건전성의 위험 신호를 파악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은행의 건전성과 안정성에 대한 위험 신호를 확보하는데 불충분하여 신용 편중리스크, 유동성리스크 등을 고려하는 Pillar 2를 통해 더 많은 위험 신호를 확보하려 한다. 은행의 리스크관리부서는 VaR모형에 기초한 경제적 자본 산출, 핵심리스크지표(KRI) 등 많은 신호를 산출하여 위험 신호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은행이 여러 위험 신호를 산출하여 활용하는 것이 감독당국의 규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는 규제에 따라 어떤 위험 신호를 산출은 하지만 그 활용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기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운영리스크 관리방법 중 핵심리스크지표(KRI)가 있는데, 이 역시 사건에 앞서 위험 신호를 주는 것이다. 여러 은행에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은행 간 KRI 활용에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 차이의 시작은 바로 위험 신호를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 유무였다. 어떻게 신호를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결국 위험 신호에 대한 조치 활동을 이끌어 내기에 리스크관리부서에서는 규제에 대응하는 수준 이상의 활용에 대한 고민을 힘들겠지만 해야만 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언급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어떤 신호가 존재하는 데 그 신호를 산출하는 방안을 아직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최근의 금융위기를 통해 세계의 금융 감독당국들은 강력한 유동성리스크 관리 규제를 수립하여 시행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금융위기 전에 산출하던 은행의 유동성 지표가 실질적인 위험 신호 역할을 하지 못하였기에 유동성리스크를 파악하여 손실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유동성 위험 신호 산출 방안을 수립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국내 감독당국 역시 2009년 9월에 유동성리스크 관리기준을 발표했고, 추가적으로 외화유동성 리스크 관리 기준을 11월에 발표했다. 국내 감독당국의 유동성 관리기준은 1년 전 세계 은행들에 대한 건전성 기준을 수립하는 바젤위원회의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관리 기준을 통해 유동성 위험 신호 산출 방안에 대한 은행들의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이치 뱅크 등 외국 선진은행의 경우, 감독당국의 유동성 관리 기준(유동성 위험 신호 산출 방안)이 나오기 전부터 유동성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는 신호를 발굴(?)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젤위원회의 유동성 규제 안은 유동성리스크 측정, 스트레스 테스트 및 비상자금조달계획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큰 틀은 이미 선진은행들에서 감독당국의 관리 기준 발표전에 발굴한 유동성 위험 신호 방안과 유사한 것이다. 물론 해외 은행들 역시 해당 감독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겠지만 파악되지 않는 위험에 대해 어떤 신호가 존재하는 데 그 신호를 찾기 위한 발굴작업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해외 은행들의 금융환경과 국내 금융환경의 차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은행이 파악되지 않는 어떤 위험 신호를 산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유동성리스크 뿐만 아니라 복잡해지는 금융환경(복잡한 상품의 개발, 국제적인 거래 업무 등) 속에서 은행은 어떠한 위험에 대해 신호를 주지만 파악되지 않는 것에 대한 산출 방안을 발굴해야 한다. 이러한 발굴 역할이 리스크관리부서가 노력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현재 구체적으로 유동성 위험의 신호 산출을 위해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유동성 관리의 상세 기준에 대한 국내 은행들의 준비는 어떠한가? 유동성 관리 기준의 발표 전에 은행 내부에서 유동성 관련 실질적인 위험 신호를 산출하기 위한 노력이 미비했기에 은행들의 준비는 감독당국에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감독 규제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은행의 심각한 손실을 예방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위험 신호를 주는 방안을 수립하는 단계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그 신호의 활용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 한 은행이 리스크관리 부행장의 주도로 감독당국, 학계, 증권사 은행담당 애널리스트, 컨설팅사로 구성된 리스크관련 소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리스크관리 관련 이슈를 논의하는 모임을 갖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