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정책결정 라인과 갈등도 대우해체에 한 몫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이하 김 회장)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 한 변호사는 그의 혐의가 모두 입증될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다고 한다.
얼마 전 있었던 대우그룹의 전 임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이미 김 회장의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었으므로 김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처리를 놓고 논란이 분분한 것은 우선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며 대우그룹의 해체가 보통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법처리 또한 보통사람과는 다른 요인들을 고려해야 하고 단순히 그의 혐의를 조사하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 김 회장 본인은 물론 누구도 그가 무죄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은 모두 인정하는 것이고 해외로 재산을 빼돌렸느냐 하는 것은 쟁점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우그룹의 해체가 무리한 차입에 따른 자연사였느냐 아니면 정책당국이 서둘러 추진한 타살이었느냐 하는 점이다. 또 대우사태가 우리 경제, 우리기업의 경영 행태에 어떤 교훈을 주었느냐도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김우중 회장은 아주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광적이라고 할 정도의 일 벌레다. 국내에 있을 때는 보통 새벽 5시경부터 사람을 만나며 아침식사 전에 20~30분 간격으로 4~5차례의 미팅을 가진다.
외국의 기업인, 대학교수, 정치인, 전경련 임원, 국내의 중요인사들과의 만남을 그런 식으로 해치운다. 식사 후에도 계속 사람을 만나고 오후에는 출장을 나간다든지 지방에 내려가기도 한다. 그는 보통 1년에 230일 전후 해외에 머물렀다.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해외에 나가서도 지시할 일이 있으면 한국시간이 새벽 3시건, 4시건 개의치 않고 담당임원들에게 전화를 건다.
위암수술을 한 탓인지 그는 식사도 아주 소식으로 했으며 좋은 옷, 좋은 넥타이 등에 관심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골프, 등산 등 취미활동도 전무했다. 깨어 있는 시간중 99%는 경제, 경영, 금리, 수출 등 이야기 뿐이었다. 경제이야기 빼고 그가 하는 말은 ‘재떨이 좀 가져와” 정도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말은 이해가 안된다. 만약 빼돌렸다면 개인의 재산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로비자금, 해외법인에 대한 경영지원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국내시장에서 삼성, 현대 등과 경쟁하기 보다 남이 진출하지 못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모두가 유럽의 명차인 벤즈, BMW 등을 부러워하지만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 정도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자면 막대한 투자와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더러 설사 만든다 해도 선발주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우차가 팔릴만한 시장을 찾는데 더 주력했다. 중남미, 아프리카, 동유럽 등지를 수도 없이 돌아다녔다.
그의 세일즈 활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에서 돌아다니는 차의 거의 50%가 대우차이고 동유럽국가들에도 상당한 거점을 확보했다.
심지어 카리브 해의 섬나라들에서도 대우차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세계경영은 “꼭 세계 일류 제품이 아니더라도 니치마켓을 찾아 많이 팔면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세계 일류제품으로 성공했지만 모든 기업의 전략이 세계 일류일 수는 없는 것이다.
김 회장이 만든 해외법인, 공장, 연락사무소 등의 숫자가 거의 600개에 이른다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전 세계를 헤집고 돌아다녔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한국 정도의 나라가 생산하는 제품은 시장만 잘 찾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보았고 스스로를 세일즈맨으로 자처했다.
해외거점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해외부채도 늘어나면서 재정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어 런던에 만든 회사가 BFC(British Finance Center)이다.
이 회사는 한국으로부터 아무런 감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회계장부가 베일에 가려 있다는 말들을 한다. 또 전체 자금의 입출금은 김 회장 혼자 알고 있으니 재산은닉이나 비자금조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자금부족에 허덕이던 대우의 회장이 회사를 살리지 않고 개인 돈을 만들었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BFC같은 조직을 만든 것은 국내에서 자금흐름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고 하니 해외차입은 해외에서 그냥 관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당연히 외환관리법 위반이다. 아무리 법규가 기업 활동에 제약이 된다 해도 법을 어긴 사실을 덮어줄 수는 없다.
환란 이후 대기업들은 극심한 자금압박에 시달렸다. 부채가 많은 데다 환율이 올라 해외차입금 상환부담이 늘고 금리가 30%로 뛰니 신규차입은 거의 불가능하고 이자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그래서 “대우처럼 빚이 많은 기업이 망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당시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은 400~450% 정도로 모두 비슷했다. 대우가 특별히 부채비율이 높다고 볼 수 없었다.
당시 다른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는 등 축소경영을 했는데 “대우는 차입을 더 늘여 확장 일변도로 나간 것이 잘못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차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신용을 평가해서 대출해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대우는 회계장부를 조작해 기업 가치를 높여 은행대출을 더 받았다. 이 부분은 김 회장이 간여한 것이고 법원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을 것 같다.
그러나 당시 거액의 은행대출은 감독당국의 묵시적, 간접적 승인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시스템에는 조기경보를 울릴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은행들도 실사없이 장부심사만 했으니 몇 조원의 추가대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대우의 부실과 함께 은행의 부실로 이어져 결국 외국인들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대우를 비롯해 16개 재벌 그룹이 무너지면서 8개 은행중 7개가 외국계이거나 외국인이 대주주인 형태가 되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공적자금을 은행에 줄 것이 아니고 투신사에 주어 우리 투신사들이 은행을 지원토록 했다면 은행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IMF의 눈치만 살피면서 은행 구조조정을 한 결과 은행을 모두 뺏긴 셈이 된 것이다.
대우그룹해체의 결정타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발행한도를 대폭 축소한 정부의 조치였다. 은행차입이 어려워진 대우가 기댈 곳은 제2금융권이었다. 회사채와 CP를 대거 발행했다. 그러나 정부가 한도를 축소하자 만기상환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왜 정부는 이런 조치를 취했을까하는 의문이 나온다. 김우중 회장은 당시의 정책라인들이 자신을 밉게 보고 있다는 탄식을 자주 했다. 이런 갈등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모르나 정부의 이런 조치가 없었다 해도 대우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대우는 정부에 의한 타살이 아니라 자연사 혹은 병사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타살과 병사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약을 주지 않고 방치하면 환자는 죽는다. 이 경우 자연사 혹은 병사라고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 못해 중병에 걸린 사람을 왜 의사가 책임져야 하나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환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고 그의 죽음이 가족이나 이웃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면 의사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닐까.
독일 자동차의 간판격인 폴크스바겐이 부도상태에 빠졌을 때 독일정부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해주어 살려냈다. 지금도 폴크스바겐의 지분중 20%는 정부소유다. 미국의 크라이슬러 자동차도 부도직전에 미국상원이 특별결의를 통해 금융지원을 해주었다. 꼭 자동차 회사만이 아니다 대형은행의 파산도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정부가 자주 개입을 한다. 프랑스의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격인 톰슨사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자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경영에 실패하고 빚이 많다고 모두가 잡아들이고 해체하고 하지는 않는다.
대우의 경영이 부실했다고 해서 계열사들이 모두 엉터리였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룹 해체 후 워크아웃을 한 결과 대우계열사들은 모두 경쟁력 있는 회사로 살아났다. 대우증권, 대우건설 등은 모두 업계의 선두주자들이다. 워크아웃은 기술지원을 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금융지원을 해주는 기업회생장치다.
그렇다면 대우의 경우 금융지원을 더 해주었다면 환란이라는 일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IMF가 보고 있는데 어떻게 정부가 도와주나”라는 주장도 있으나 IMF의 대주주격인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정부도 과거에 모두 그렇게 부실기업들을 살려낸 바 있다.
따라서 남의 눈이 무서워서 못살려낸 것이 아니고 살려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나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의적 타살은 아니지만 병세를 악화시켜 병사하게 한 혐의는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우의 해체는 김우중 회장의 범법행위, 김 회장과 당시 정책결정 라인과의 갈등, 우리 금융시스템의 허술함 등이 서로 맞물리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제 김 회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정상참작이 가능할 것인지 문제된다. 김우중 회장은 분명히 한국경제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 수십만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해 한국제품을 수출했으며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공로가 있으니 감형해야 한다느니 사면해야 한다느니 하는 것은 너무 낮은 차원의 논쟁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우리사회의 포용력을 생각하고 싶다. 세상이 달라져 우리는 경제사범이 아닌 보안법을 어긴 송두율씨 같은 사람도 실형을 살리지 않는다. 6.25 남침을 자행해 수백만 민족을 죽게 한 김일성의 사망시 조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 간 사람도 있다. 해방전후사를 정리하면서 사회주의 계열인사들도 건국의 공헌자로 표창하기도 한다. 우리사회의 포용력은 이렇게 커진 것이다.
이런 사실들과 비교할 때 김 회장을 꼭 5년 혹은 무제한 감옥에 가두어 두는 것이 우리사회에 정의를 세우는 일인지 묻고 싶다. 죄와 벌의 형평을 논한다면 그는 이미 벌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온갖 병에 시달리는 70세 가까운 기업인이 아프리카의 수단, 모로코 등지를 전전하는 것도 이미 징벌이다. 수 년 전 일부 노조인사들은 그가 프랑스의 호화빌라에 산다며 체포조를 만들어 가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호화니 사치니 하는 말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수단이나 나이지리아 등은 고생할 일만 있는 나라이지 관광지도 되지 못한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은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벌이 꼭 응징적이고 가혹해야만 속이 풀리는 것일까. 우리사회의 포용력은 북쪽을 향해서만 열려 있고 내부 인사들에게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일까. 김우중 회장에게 시민권을 준 프랑스 정부, 고문직을 맡기고 있는 여러 기업들, 신도시 개발을 의뢰한 베트남 정부,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김 회장을 극찬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김 회장의 상담역인 하버드대학의 마틴 펠트스타인 교수 등은 모두 우리만큼 똑똑하지 않아서 어수룩하게 당하고 있는 것일까.
김우중 회장 사건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의 범법 사실은 밉지만 그가 가진 풍부한 경험은 우리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자산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한국은 법질서가 엄격히 지켜지는 나라지만 기업활동에 따르는 실수는 포용할 줄도 안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다. 사면이나 감형 형식으로 해결하기 보다 그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