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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회중 Biz K-One 사장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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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5-03-13 22:36

인생은 새옹지마…포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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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바로 권회중 Biz K-One 사장〈사진〉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가.

증권업계에서 국제인수업무에 독보적인 존재였던 유능한 증권맨이 한순간 시련으로 모든 것을 잃고 자포자기 상태까지 직면했다가 지금은 세 개의 회사를 소유한 사업가로 재탄생했으니 말이다.

권 사장이 증권업에 첫 인연을 맺게 된 건 지난 1980년 다이와증권 서울사무소였다. 다이와증권 서울사무소에서 자료조사 및 본사영업 지원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이듬해인 1981년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다이와증권의 정규 직원으로 발령받으며 권 사장의 증권신화는 시작됐다.

이곳에서 국제인수부를 담당하며 크라이슬러 및 맥도널드 등 굴지의 미국기업들의 동경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등 그의 주가는 한층 고조됐다. 특히 1985년에는 국내 최초의 CB(삼성전자)를 발행하는 데 참여하며 명성을 날렸다.

7∼8년여 동안 다이와증권 생활을 마치고 1989년 귀국, 쌍용투자증권에 입사했다. 입사 후 국제영업부 및 법인영업부 명동지점장 등을 거쳐 1995년 동경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그러던 1997년 1월 권 사장에게 시련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런 시련은 결국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쌍용시절 임원승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실적을 챙기려는 욕심이 과해서 그런 사고까지 당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무리하게 실적을 올리려다 그만 큰 액수의 미수가 발생, 그의 증권인생에 오점을 남기며 증권가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고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증권 영업직원들도 대박을 꿈꾸며 실적쌓기에만 전념하는 게 사실입니다. 대박이란 결코 한 순간 얻어지는 게 아니고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성찰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증권가를 떠난 그는 한 동안 여의도를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증권업 자체를 증오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도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제주도에서 만난 한 사람. 다른 외국계 증권사에서 외환딜러로 한껏 몸값을 날리던 선배도 한 차례 시련을 맞으며 화려했던 모든 생활을 접고 제주도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던 것.

그 선배는 “이렇게 조용히 사는 것도 재미가 있고 누구 하나 부러운 사람이 없다”며 권 사장에게 식당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이후 그 식당에서 자고 먹으며 배우기를 한 달. 그곳에서 독립해 제주공항 근처에 자리를 잡고 식당을 시작, 매상을 크게 올리며 성공대열에 가세했다.

“음식장사건 무슨 일이건 정성이 가장 큰 관건입니다. 사람들은 정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모이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4개월여 동안 제주에서 적잖은 돈을 벌고 이후 고향인 인천으로 올라와 인근 부천에 똑같은 식당을 차렸다. 개업 후 1∼2개월 후 IMF가 급습했지만 다른 식당이 불황에 타격을 받은 것과는 달리 꽤 쏠쏠한 매상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진그룹 재무통이었다가 한진건설로 자리를 옮겨 영종도공항 건설현장에 파견됐던 지인 한 분을 그 식당에서 만났다. 그 분의 소개로 건설현장의 노무자 대상 식당일을 하기 시작했다. 2년여 건설기간 동안 식당일을 하면서 꽤 돈을 벌었다.

이후 2002년 식당일을 하면서 모은 자금을 밑천으로 식료품 제조업을 할까 생각하던 차에 삼파장 램프를 생산하던 중국의 한 조명공장을 인수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그 공장을 인수했다. 또 램프에 들어가는 소켓을 공급하는 하청공장도 추가로 설립했다. 여기서 생산되는 램프가 필립스 등 굴지의 기업에 납품되는 한편 국내에도 들어오게 되면서 권 사장은 이를 조달하기 위한 무역회사도 설립했다.

이 무역회사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생산한 램프를 국내에 조달할 목적으로 설립했지만 이후 조명기기는 부수적인 아이템이 됐고 주 아이템으로 철강을 수입해 되수출하는 업무를 확장했다. 미국 및 동유럽에서 철강을 수입해 중국 및 일본 동남아로 공급하는 업무였다. 이 철강은 톤당 200달러인데 연간 수 백만톤을 중개하며 사업이 급속도로 번창하고 있다.

“증권사에 다닐 땐 일에 미쳐 앞인지 뒤인지도 모르게 뛰기만 했습니다. 특히 일본에 가서는 국제인수부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일본어는 기본이고 모든 문서가 영어로 돼 있어 두 외국어 때문에 적잖은 고생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핸디캡을 극복하며 일본인들에게 지기 싫어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하며 공부하곤 했습니다. 때론 텔렉스실에서 밤이 새는줄도 모르고 일을 한 적도 있었죠. 이것이 지금 큰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영어로 된 주문 공급 문서에는 자신이 있거든요.”

권 사장의 ‘새옹지마’는 결코 한 순간의 대박이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끊임없이 갈고 닦은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권 사장은 “이런 일련의 시련들이 손해만 본 건 아닙니다. 여기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교훈은 지금 사업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jh@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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