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금융권, 정부 및 금융기관에 따르면 은행들은 현재 법제처 심의 중인 전자금융거래법안중 일부 조항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까지 논의를 거쳐 마련된 법안에는 은행권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은행권은 그동안 전자금융거래법안 수정을 위해 여러 차례 공청회와 세미나를 가졌다. 최근에는 지난 2일 금융정보화추진분과위원회 주관으로 ‘전자금융거래법안의 제정·시행이 전자금융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세미나에 참석, 은행권 요구사항을 밝히기도 했다.
은행권 법안 수정 요구사항은 크게 5가지 정도다.
◇ 이용자 보호대상 범위 = 은행권은 전자금융거래법안에 명시된 법 적용에 따른 보호대상 범위가 너무 넓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법안 제2조 7항에 따르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이용자에 대해 전자금융거래를 위해 금융기관 및 전자금융업자와 체결한 계약에 따라 전자금융거래를 이용하는 자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는 개인과 기업을 모두 포함하는 이용자 전체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높은 금액을 전자금융 거래에 사용하는 기업은 은행과의 별도 특약에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법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개인에 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전자금융거래법과 유사한 법률인 EFT(Electronic Fund Transfer Act)등을 제정해 사용하고 있는 미국, 호주, 영국의 경우는 적용대상을 사업자, 기업이 아닌 개인소비자(또는 자연인)에 국한시켜 금융기관과 소비자의 면책 범위를 규제하고 있다.
◇ 도덕적 해이 우려 = 법안은 이용자의 고의 과실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에 무과실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덕적 해이가 야기돼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즉, 고객 PC나 키보드 단에서 해킹을 당한 경우도 이를 입증할 책임이 전적으로 은행에게 부여돼 있어 이용자가 악의적으로 부정거래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무과실 혹은 일방적 입증 책임에 대해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은행권은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방안으로 거래 지시에 포함된 계좌번호, 비밀번호, 이용자번호 등을 확인하고 처리한 경우는 면책돼야 된다고 제안했다. 은행 시스템 이전의 사고도 면책 사유로 들었다. 이밖에 인터넷 뱅킹 등에 있어 한도를 낮추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단 이용자가 높은 금액으로 전자금융 거래를 원할 경우 한시적 유효기간을 요청해 사용할 수 있게 해 예외를 두는 것도 제시됐다.
◇ 전자금융보조업자 책임 문제 = 법안 제10조 1항에 따르면 전자금융거래 관련 전자금융보조업자의 고의, 과실은 금융기관 및 전자금융업자의 고의, 과실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이 법안에서 전자금융보조업자는 밴(부가통신망) 업체 등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금융기관과 전자금융보조업자는 상호 제휴 및 계약 등에 의해 법률적으로 대등한 전략적 파트너인데 이를 종속적인 관계로 보고 금융기관이 우선적으로 손해 배상케 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금융기관의 리스크 증가로 인해 손해 변제능력 감소와 소규모 IT업체와의 계약 체결 회피로 인한 중소 IT벤처 도산, 대형 SI업체의 책임회피 등이 우려된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제10조 1항을 삭제하고 성격이 다른 금융기관과 전자화폐, PG(지불결제대행) 등의 전자금융업체, 전자금융보조업체 등에 대한 규정은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자화폐를 비롯한 전자금융업체·보조업체들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호주, 영국 등에서는 금융기관의 자금이체와 전자화폐 등의 규정이 서로 다르게 만들어져 있다.
◇ 그 외에 = 은행권은 그 외에도 간단한 요건만으로 전자금융업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전자금융업자가 난립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오히려 전자금융 활성화 취지와 반대로 이용자들에게 전자금융 사용에 불안감을 갖게 해 활성화를 저해할 수도 있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법안에 따르면 전자금융업자를 통한 금융거래 내역은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관한법률상의 비밀보장 대상이 아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타 금융업과의 형평상 금융실명법의 적용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법안 처리 진행상황 = 현재 전자금융거래법안은 법제처 심의중에 있으며 최종 법제처장 결재만 남겨 놓은 채 대부분 마무리 된 상태다. 금주 중으로 차관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내년 1월 중 상정될 것으로 재정경제부는 예상하고 있다.
재경부 한 관계자는 “은행권에서 요구하고 있는 사항들은 정부가 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가 됐다”며 “그러나 이 사항들이 반영이 됐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 법안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각 부처가 함께 논의했기 때문에 여러 의견을 수렴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재정경제부 손을 떠난 상태”라고 말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은행권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것은 없는 상태”라며 “향후 국회 상정된 후 국회차원에서 공청회 등이 이뤄질 경우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법안을 마련할 때 해외 사례를 비롯해 좀더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신혜권 기자 hkshi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