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당국으로서는 당장 신용불량자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카드사의 한도 축소 등의 영향으로 잠재 신용불량자가 수면 위로 올라올 시점에 있는 반면 여러 신용회복 지원제도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
◇배드뱅크, 기대되는 효과=금융권은 배드뱅크의 효과에 대해 강한 ‘긍정’을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이 “지난해 10개 금융기관이 참여해 추진했던 공동채권추심 프로그램 대신에 이같은 형태의 배드뱅크를 실행했어야 했다”고 말할 정도다.
정부 역시 배드뱅크 설립으로 4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구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서도 “원금감면은 없고 대신 성실한 상환자에 대해서만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히는 등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11월에 산업은행과 LG투자증권을 중심으로 10개 금융기관이 협약을 맺어 실행했던 다중채무자 공동추심프로그램보다 진일보했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채권을 매각할 때마다 회계처리를 하고 여신 서류를 이관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사라졌고 일방적인 매각으로 인한 민원발생이나 매각가격에 대한 논란 발생 여지를 없앴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공동추심프로그램 협약에 참여한 채권금융기관들은 매각 이익이 너무 적다며 은행연합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배드뱅크 설립안은 참여 금융기관에 8%의 현금을 먼저 제공하고 출자 비율만큼 추가 수익배분이 가능하는 점 덕에 논란 자체를 불식시켰다.
채무자 역시 원금의 3%를 지불하면 신용불량자라는 고삐에서 벗어나고 나머지 금액을 5~6%의 금리로 장기 상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목표한 40만명의 신용불량 구제라는 실적을 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배드뱅크 설립까지는 여러 걸림돌이 있을 듯하다.
◇난제는 아직 남아=먼저 자본확충이 문제다. 배드뱅크의 자본은 자산관리공사,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넘겨받는 대출금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투자자로부터 조달할 금액이다.
배드뱅크는 외부투자자로부터 대출채권 당 5%를 조달해야 한다. 재정경제부는 이 재원을 5000억원 정도로 보고 자산관리공사의 채권발행자금으로 수천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결론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공적자금 추가 조성이라는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다중 채무자는 대부분 각 금융기관 마다 연체 기간과 금액이 다르다는 것 또한 장애다. 이 경우 대출채권의 가치가 달라지는 만큼 곧바로 출자금액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3개월 연체 채권 5년 연체 채권의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판단할 근거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또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정상 거래자로, 다른 금융기관에서는 신용불량자로 등록됐을 경우 채권 가격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모든 신용불량자의 채무를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배드뱅크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울러 신협, 새마을금고, 대부업자 등 실제로 신용불량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소형 금융기관이 협약에 참여할 것인가도 문제다. 이들이 배드뱅크에 부실 채권을 출자할 경우 자산 감축과 함께 손익에 크게 영향을 미쳐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큰 그림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데 문제는 세부적인 운영원칙”이라며 “실무진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제 틀은 촘촘, 기관간 협조 긴밀해야=배드뱅크의 출범이 공식화함에 따라 신용불량자 구제 제도는 훨씬 실효성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각 금융기관의 조력과 배드뱅크, 공동추심 프로그램,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지원과 아울러 ‘개인채무자회생법’의 통과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우선 소액 단독 채무자 문제는 국민, 하나은행 등 은행권을 중심으로 대환대출과 채무재조정을 하고 카드사 등 여타 금융기관도 동참의사를 속속 밝히고 있다.
또 신용회복지원회는 배드뱅크와 업무영역이 다른 3억원 이하 다중채무자의 구제로, 개인회생제도는 3억원 초과 채무자를 담당하는 등 다각도의 회생책이 시동을 걸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배드뱅크의 설립과 함께 업무가 중첩될 경우 효율이 떨어지는 만큼 긴밀한 협조체제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동추심 프로그램과 배드뱅크 비교>
한계희 기자 gh01@fntimes.com